▲ <뉴시스>

이라크·터키 등 5개국 국경에 걸쳐 거주
중동의 토박이지만 오랜 세월 더부살이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지구촌의 최대 비극은 중동의 시리아에서 발원한다.
이 나라에서는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쓸었던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 당시 바샤르 알 아사드의 독재정권에 반발하는 무장세력이 들고 일어나 정부군과 지금까지 5년 넘게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수많은 난민이 시리아를 떠나 터키로 갔다. 거기서 그들은 작은 고무보트에 목숨을 의지한 채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로 넘어간다. 거기서 부자나라인 독일과 스웨덴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다. “이제 더 이상 받아주지 않겠다”고 유럽연합이 최근 선언했지만 목숨을 건 난민의 유럽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군과 반대세력 간에 밀고 밀리던 시리아 내전은 얼마 전 미국과 러시아가 간신히 뜯어말려 놓았다. ‘적대행위의 중단’이라는 이름 아래 일단 전투를 중지시킨 상태에서 또 하나의 유엔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평화회담이 열리고 있다. 여기에는 시리아 평화과정의 내·외부 당사자들, 즉 시리아 정부, 잡다한 반대 무장세력, 미국, 러시아,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중국,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란,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아랍연맹, 유럽연합, 유엔이 참여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 끝나가자
과감히 독립 선언

시리아의 운명이 강대국들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지 주목되는 가운데 지난 3월 17일 시리아 내 쿠르드족이 불쑥 “우리가 점령하고 있는 시리아 북부지역을 사실상 연방 지역으로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시리아 정부와 시리아 반정부 세력은 그런 일방적인 영토 선언은 시리아 헌법에 위배되며 선례를 세우는 위험한 움직임이라고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시리아 내 쿠르드족의 주된 정당인 민주동맹당(PYD)은 제네바 평화회담의 당사자에서 배제됐다. 터키가 “테러집단을 회담에 왜 끼워주냐?”며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터키는 PYD와 PYD의 무장조직으로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시리아 내 IS 격퇴전을 주도하는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를 테러조직이라며 배척한다. 그렇지만 YPG는 최근 러시아로부터는 정치적 지지를 획득했다. 러시아는 “제네바 평화회담에 시리아 쿠르드족을 끼워주자”고 주장해왔지만 터키가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쿠르드족은 회담에 초청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쿠르드족은 누구인가. 2500만~3500만 명의 쿠르드족이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아르메니아 5개국의 국경들에 걸친 지역에 거주한다. 그들은 중동에서 4번째로 큰 민족이지만 여태까지 한 번도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쿠르드족은 지역 내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그들은 터키에서 자치를 획득하기 위해 싸워 왔으며,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가 진격하는 것을 막는 데 빼어난 역할을 해왔다. 쿠르드족은 메소포타미아 평원과 고산지대의 토착민들 중 하나다. 그들의 거주지는 현재 터키 남동부, 시리아 북동부, 이라크 북부, 이란 북서부, 아르메니아 남서부 지역이다. 오늘날 쿠르드족은 비록 표준어는 없지만 인종, 문화, 언어를 통해 독특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들은 다수가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수많은 다른 종교와 신념을 신봉한다.

2013년 중반 IS는 시리아 북부에 있는 쿠르드 지역 3곳에 눈독을 들이고 이들 지역을 빼앗으려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IS는 2014년 중반 YPG에 의해 격퇴됐다. 전환점은 IS에 의한 2014년 6월의 대공세였다. 이때 IS는 이라크 북부도시 모술을 공격해 그곳의 이라크군을 쫓아낸 다음 무기를 대거 노획했다. IS의 이라크 진격은 이라크 내 쿠르드족의 참전으로 이어졌다. 이라크 정부로부터 반(半)자치를 보장받는 쿠르드족 지역인 쿠르디스탄은 이라크 정규군이 포기하고 달아난 지역들에 자체 민병대인 페시메르가를 투입했다. 한동안 IS와 페시메르가 사이에는 별다른 전투가 없었지만 2014년 8월 IS가 대규모 기습을 했다. 페시메르가는 패퇴했으며 이 과정에서 종교적 소수파들이 사는 여러 마을이 IS에 의해 무참히 유린됐다.

앞으로 강대국이
과연 인정해줄지 주목

시리아 내 쿠르드족의 사실상 연방지역 선포와 관련해 워싱턴의 쿠르드족 문제 분석가인 무틀루 시비로글구는 “저마다 말로는 쿠르드족을 칭찬하며, 모든 사람이 쿠르드족이 IS와 싸우며 그들이 위대한 전사(戰士)임을 인정하지만, 이것이 외교적 스펙트럼에는 반영되고 있지 않다”고 외신에 말했다. 3월 17일에 나온 쿠르드족의 발표는 쿠르드족이 주장하는 연방 단위가 시리아의 분할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시리아 내전의 여러 당사자들 사이에서 촉발했다.

수십 년에 걸친 아사드 가문의 통치 아래서 오래 핍박 받아온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은 이번에 사실상 연방제를 일방 선포함으로써 내전의 혼란을 틈타 그들의 숙원인 자치라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선 셈이다. 시리아 전역에 널리 퍼져 있던 정부군이 다른 지역의 반란군 격퇴에 집중하기 위해 쿠르드족 지역들에서 철수하자 쿠르드족은 2013년 북부의 자지라, 코바니, 아프린 세 지역에서 그들 자신의 정부를 선포했다. 쿠르드족의 17일자 발표에 대해 시리아 외무부는 “위헌이자 무가치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시리아 주요 반정부 집단인 시리아민족연합도 쿠르드족의 움직임을 일방적인 선언이라고 거부했다. 시리아를 연방으로 재구성하는 방안이 제네바 평화회담에서 정식으로 다뤄질지는 더 지켜보아야 한다. 하지만 오랜 내전을 거치면서 시리아는 지리적으로도 혼란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아사드가 속한 시아파 이슬람의 알라위파(派)에 의해 지배되는 정부는 지중해 연안을 낀 알라위파 본거지인 수도 다마스쿠스, 그리고 다마스쿠스와 여타 도시들을 연결하는 회랑(回廊)들을 통제한다. 쿠르드족은 북동부에서 그들 나름의 자치를 하고 있다. IS는 수니파 본거지인 동부의 많은 부분을 통제한다. 이슬람 소수세력으로서 전전(戰前) 시리아 인구 2300만 명 가운데 약 5%를 차지했던 드루즈파(派) 또한 그들이 거주하는 남부 지역들에서 자치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리아를 스테이크처럼 썰어 나누는 어떤 움직임도 추가적인 폭력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시리아 쿠르드족의 ‘치고 나가기 식’ 사실상 연방제 선언에 강대국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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