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보면 강진 땅은 또렷하게 바지 모양을 하고 있다. 가랑이가 살짝 벌어진 움푹한 곳까지 흘러드는 바다는 어느 부잣집 앞마당의 커다란 우물 마냥 육지를 통통하게 살찌우고, 봄이 오면 갖가지 봄꽃이 피어 색동바지로 옷을 갈아입는다. 주머니 속에 한가득 달콤함을 숨긴 채, 그렇게.
유홍준 교수는 그의 저서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첫 페이지를 강진과 해남으로 장식했다. 그는 이 지역을 ‘남도 답사의 1번지’라 칭하며 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내고 있다.
또한 과거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이 지역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고백하고 그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한 때 문화재청의 수장까지 지낸 그는 이 지역에 남도의 향토적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고 얘기 한다.
지금껏 남들이 배 아파할 만한 부귀영화 한 번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그래서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에서본 적도 없는 강진과 해남. 과연 그 속에 드리운 정서는 무엇일까? 못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일. 몇 번의 봄날, 그 이유를 찾으러 강진으로 떠나곤 했다.
다산 정약용과 영랑 김윤식을 만나는 길, 그곳에는 알록달록한 봄이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천년을 지켜온 고려청자와 하멜이 남겨놓은 서양식 담벼락에는 낯설지만 포근한 우리네 정이 녹아 있었다. 돌아보니 숨겨진 보물을 엿보듯 다닌 시간들이다. 그래서 강진의 또 다른 봄날이 기다려진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떠나와 18년이나 머물던 곳이 강진이다. 사의재라는 주막에서 거처하기도 하고 보은산방이라는 암자에서 머물기도 하던 그가 만덕산 자락에 거처를 마련하고 진정한 ‘다산’을 완성한 곳이 다산초당이다. 10년을 머물며 목민심서를 비롯한 수백 권의 책을 썼고 조선의 실학을 집대성한 곳. 결국 이곳에서의 성과가 조선에 실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거진 수풀에 둘러싸인 지금의 초당은 그래서 더욱 외로워 보인다. 유배의 시련 속에서 홀로 이어가야 했던 산중 생활의 고통이 눈앞에 놓여 있는 것 같고 우주만큼이나 광활하고 깊은 지식의 본거지에 남은 건 달랑 그의 영정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다산은 초당에서의 외로움을 인근 백련사에 머물던 혜장선사와의 시간을 통해 달래곤 했다. 초당에서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800m의 오솔길. 산새 소리 들으며 두런두런 걷기에 그만인 그 길에도 다산의 눈물이 드리워 있다. 뽀얀 하늘빛 바다 너머로 푸른 병풍을 두른 월출산의 장엄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
하지만 그 풍경마저 무색할 만한 쓸쓸함이 주변에 맴도는 천일각. 이 누각은 강진군에서 1975년 다산을 기리며 세웠다.
바다 끝 어딘지도 모를 곳, 흑산도에 유배 중인 형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또 두고 온 가족과 돌아가신 정조대왕이 보고플 때면 이곳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스산한 마음을 달래곤 하지 않았을까. 그럴 때면 다산은 다시 그 길을 걸어 백련사로 향했을 것이다.
그 쓸쓸함은 혜장선사를 만나 차 한 잔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순간에야 비로소 녹아내릴 수 있었으리니. 그렇게 다산과 혜장을 이어주던 통로는 다행히도 그리 길지 않았다. 야생차밭을 지나 어느새 길게 뻗은 나무들 틈으로 백련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변볼거리>
다산기념관 만남, 생애, 환생, 흔적 등의 테마에 맞춰 영정, 다산연보, 가계도, 학통, 다산의 일생, 다산의 업적과 유물들이 패널과 조형물로 입체감 있게 전시되고 있다. 다산이라는 큰 스승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볼 수 있다. 백련사 |
가우도와 마량항
바지 모양의 강진 지도에서 다산초당과 백련사는 왼쪽 다리 부분에 위치하고 마량항은 오른쪽 다리의 발끝에 해당한다. 다산초당에서 마량항으로 가기 위해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검색했다.
강진군의 섬 중 유일한 유인도인 가우도는 해상보도교가 양쪽다리로 연결돼 있어 바다 위를 걷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가우도 입구까지 차를 타고 간 후 출렁다리 위를 걸었다. 가냘프게 보이는 다리 위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양쪽 뺨을 살살 간지럽힌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의 오후, 다리 위를 거니는 기분은 어떨까. 코발트빛 바다가 잔잔히 펼쳐지는 날엔 온종일 다리 위에 머물지도 모르겠다.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마량항에 닿았다. 전국 최초로 어촌어항 복합공간으로 조성된 곳. 서남부 해안 최남단에 위치해 완도의 고금도와 약산도를 눈앞에 둔 이곳은 남도 최고의 미항으로 꼽힐 정도로 훤칠한 풍경을 자랑한다.
‘말을 건네주는 다리’란 뜻을 지니고 있는 마량은 한때 제주를 오가던 관문으로 제주에서 실어온 말을 중간 방목하고 육지로 넘겨주던 목마장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뜻밖에 나타난 돌하르방이 그 사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빨강색의 반원형 모습이 인상적인 고금대교 아래로 마량 주민들의 살림 밑천인 어선들이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정박해 있고 멀리 노란색 등대에는 저녁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불빛이 검붉은 바다 위를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둥근 해가 서서히 등대 뒤로 떨어져갔다. 까막섬을 희미하게 밝혀주던 마지막 태양이 사라지고 까막섬은 두 눈에서 영영 자취를 감춰버렸다. 마량항의 방파제에는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고 인근의 횟집에서는 남은 밤을 즐기는 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날 줄 몰랐다.
<주변볼거리> 마량 놀토 수산시장 고려청자요지 & 청자박물관 |
금곡사 벚꽃길과
병영 한골목
마량항의 아침은 언제나 기분 좋은 상쾌함을 선사한다. 일출도 감상할 수 있고 시원한 아침 공기를 들이키며 어촌마을 풍경을 즐기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어 이른 아침 가볍게 산책을 다녀오기 좋다. 때문에 강진에서 1박을 할 때면 늘 마량을 떠올리게 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강진의 북동쪽에 위치한 병영면으로 향했다. 해안도로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강진읍을 지나 얼마 더 가다보니 화려한 벚꽃 터널이 펼쳐졌다. 금곡사 벚꽃길이라 이름붙은 이 벚꽃길은 거리가 무려 19km에 이른다.
1990년대 약 2년간 강진 군청 직원들이 직접 나무를 식재하여 조성했다는 이 길은 최근 남도의 새로운 벚꽃 명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담한 이차선 도로를 옅은 핑크빛으로 물들이며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 길에 봄의 낭만이 피어났다.
이른 봄 백련사 동백이 남도에 찾아오는 봄소식이라면, 금곡사 벚꽃은 드디어 봄이 무르익어간다는 좀 더 따뜻한 메시지다. 또 한 번 강진의 짙은 꽃향기에 취해가며 굽이굽이 지나쳐 온 벚꽃길을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그 길에 남는다.
높은 성벽과 옛 성문이 보이는 곳에 네덜란드의 풍차가 함께 서 있는 곳. 길 하나를 놓고 마주보고 선 전라병영성지와 하멜기념관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보고 싶은 것은 인근 마을의 오래된 돌담길이었다. 크고 길어서 ‘한골목’이라 이름 붙은 이 골목을 따라 예쁘장한 돌담이 길게 이어진다.
봄이 막 찾아든 시골 골목의 따스한 정감이 넘치는 곳이지만 사람 키보다 더 높은 담장은 집 안의 풍경을 모두 막아섰다. 돌담 위로 얼굴을 내미는 건 오래된 기와지붕과 마당을 지키고 선 나무 가지들 뿐. 웬지 야속하기도 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과거 병영성의 병사들이 말을 타고 이 길을 지나다니곤 했는데 집안이 다 보여 이를 가리기 위해서 높게 쌓았다고.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모습, 그럼에도 이색적이기까지 한 독특한 이 골목의 돌담장은 일명 ‘하멜식 돌담’으로 불린다.
하멜은 17세기 이 마을에 표류해 머물렀고 그가 마을 주민들에게 전수한 서양의 양식으로 쌓았다는 이 돌담은 황토와 돌을 빗살무늬 방식으로 쌓은 것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이라고 한다.
<주변볼거리>
전라병영성지 하멜기념관 |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