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여행 코드가 변하고 있다. 그간 파주 여행의 중심이었던 임진강과 통일전망대가 아닌 국제북타운협회에 등록돼 있는 압도적 규모의 출판단지와 다양한 콘셉트의 북카페들이 그 변화의 대상이다. 갈대 샛강과 습지를 배경처럼 두르고 있는 출판단지는 저마다 개성 넘치는 건축물들 덕분에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은 아우라를 뽐낸다. 사계절, 책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열리는 북시티 파주를 다녀왔다.

자유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어렵지 않게 파주출판도시로 향하는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자유로변에 출판문화공동체가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물었다. 왜 이곳에 출판도시를 기획하느냐고. 이에 출판공동체들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서 이 도시를 구축한다고.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답변이었다. 파주는 그렇게 북시티라는 한 권의 크고 아름다운 책을 자유로변에 펼쳤다.

파주출판단지는 영국 웨일즈의 에이온와이와 벨기에의 레뒤, 네덜란드의 브레드보트와 같은 유명한 책마을과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는 책을 판매하는 것뿐 아니라 출판기획에서부터 편집, 인쇄, 유통까지 책을 만드는 전 과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출판사마다 예술미 넘치는 건축물로 이국적인 멋을 더해 200여 개의 출판사가 저마다 색다른 분위기의 건축물에 입주해 있다. 갈대 샛강을 따라 펼쳐진 여유로운 자연과 더불어 봄소풍을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책방이자 건축 전시장인 파주를 누려보자.

지혜의 숲,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40만 평이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중심에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가 있다. 센터자체의 규모가 워낙 방대하기도 하지만 행정적으로도 출판도시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이곳은 출판도시의 랜드마크로 불린다.

이미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간 센터 내 ‘지혜의 숲’에 들어서면 8m 높이의 책장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약 50만 권의 책들이 시선을 압도한다.

지혜의 숲 1관은 국내의 학자와 지식인, 전문가들이 기증한 도서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증자가 평생 읽어온 소중한 책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그들의 삶을 대변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2관은 출판사 기증도서로 분야별 분류가 아닌 출판사별 분류로 진열돼 있으며 한국의 출판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2관은 넉넉한 공간에 비치된 책상에 앉아 원하는 책들을 읽을 수 있는데,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보이는 통유리와 카페테리아가 어우러져 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종이의 고향이라는 뜻의 지지향 게스트하우스도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2층에는 아름다운 가게와 함께 헌책방이 운영되고 있으며 헌책방 앞의 야외 테라스에서는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출판도시 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답게 객실마다 TV 대신 수준 높은 문학작품들이 비치돼 있고 객실 문에는 번호 대신 국내 작가들의 이름이 표기돼 있다.

만약 김홍신 작가의 팬이라면 김홍신의 방에서 그의 작품을 읽으며 쉬어갈 수 있다는 것이 지지향 게스트하우스만의 장점이다. 그저 책만 읽다 돌아가는 도서관이 아닌 책과 사람과 생태가 어우러진 이곳은 책이라는 예술작품과 건축이 어우러진 이른바, 문화 공동체이다.

세상의 모든 피노키오, 피노키오 뮤지엄

1883년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을 모티브로 한 피노키오 뮤지엄. 말썽꾸러기 꼬마를 떠올리게 만드는 피노키오가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130년이 넘었다.

제페토 할아버지의 손에서 탄생한 목제 인형의 다양한 모험과 함께 거짓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명작 동화의 주인공 피노키오. 1200여 점의 다양한 컬렉션으로 만나는 피노키오는 각 나라별로 그 생김새와 의상이 달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동화 속에서만 존재하던 피노키오는 직접 만들어 보는 목각 피노키오 인형으로 한결 가깝게 다가온다.

세계적인 팝 아트 작가인 짐 다인을 비롯해 중견 작가들의 작품 속에 숨 쉬는 피노키오 그림과 조각, 인형, 희귀 서적 그리고 팝업 북 등은 성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하다.

특히 도슨트 프로그램을 통해 피노키오의 숨은 이야기와 교훈을 들으며 전시장을 돌아볼 수 있어 더욱 유익하다. 체코의 전통 마리오네트 인형극장 개관을 준비하고 있어 국내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체코 전통 인형극 관람도 가능할 예정이다.

기억의 공간, 열화당 책박물관

인문정신에 뿌리를 둔 출판사 열화당이 1971년 서울에서 첫 출발을 했다. 열화당은 70년대부터 미술과 시각매체, 한국전통문화 분야에 뛰어들었다.

지난 사십 년의 결실이 담겨 있는 열화당 책박물관에는 힘들고 더딘 작업 끝에 빛을 본 소중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출판을 통해 우리 시대 인문학의 한 획을 그었던 뛰어난 저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박물관에는 소장가치가 높은 고서와 세계 각국의 양서 4만여 권이 전시돼 있다.

도서관과 책방을 결합한 형태인 이 박물관은 예술전문 출판사의 특성을 잘 살려냈다고 평가받는다. 미술, 사진, 디자인, 건축, 전통문화 등 문화예술 서적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 꾸준히 기증본들이 더해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1전시실에는 1970년 이후 출간된 도서, 2전시실에는 1970년 이전에 출간된 고서들이 비치돼 있어 시대별 분류가 가능하다.

1층에 마련된 중앙 전시대에서는 시기마다 출판물과 관련된 기획전, 특별전이 열린다. 외부에 조성된 박물관 앞마당에서는 북카페를 연장해 야외 공연과 야간 행사가 열려 운치를 더한다.


아주 특별한 헌책, 문발리 헌책방골목

갈대 샛강의 운치가 흐르는 곳에 카페와 소극장을 더한 헌책방이 문을 열었다. 비좁고 어둡다는 헌책방에 대한 편견을 깬 여유로운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는 곳. 나무를 이용한 책장들은 헌책도 이렇게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쾌적한 분위기다.

상업적인 의미보다 책을 순환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이곳은 한 사람이 보고 묻어두는 책이 아닌 여러 사람이 돌려가며 볼 수 있는 책 정거장 기능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고. 물론 누구나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헌책을 기증할 수도 있고 정해진 방침에 따라 보상을 받기도 한다.

이색적인 것은 책뿐 아니라 사진, 편지, 일기와 같은 개인의 추억들도 수집하고 있다는 점. 즉 누구나 기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시 낭송회와 북토크쇼, 보이차 교실 등이 수시로 열리고 있으니 방문 전에 일정을 확인하면 헌책 구입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또 희귀본과 초판본 위주로 구비돼 있어 특별한 고서를 만날 수 있으며 일정 분량 이상 기증할 경우 개인 기념 서가를 제공하기도 한다.

맞춤 활자의 품위, 활판공방

납 활자 인쇄본을 이용해 책을 만든다는 것. 요즘 우리 주변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 아닐까.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 ‘직지심체요철’을 가진 민족임에도 오늘날에는 활판을 구경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아날로그 시대에 책을 만들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인 활판. 1960년대 후반의 전성기를 지나 대량 고속 인쇄가 가능해진 오늘도 이곳 사람들은 장인정신으로 활자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사라져가고 있는 금속활자의 하나인 납활자인쇄 출판을 부활시키기 위해 문을 연 활판공방. 비록 모든 작업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2008년부터 작년까지 총 35권이라는 적지 않은 수의 책을 간행하는 쾌거를 이루어낸 바 있다.

작고한 문인들의 대표작을 비롯해 현재 활동 중인 문학인의 자선 작품을 전통 한지에 납활자로 소량만 인쇄한 이 책들의 수명이 1000년 이상이라고 하니 맞춤형 책 한 권이 전하는 품격을 가늠할 수 있다. 활판인쇄, 훈민정음 해례 목판인쇄, 오침 전통 제본으로 천자문 만들기, 민화 그리기 등 활판인쇄와 융합한 다양한 미술교실도 운영 중이다.

특히 본인이 직접 조판한 명함을 20장씩 인쇄할 수 있는 ‘나만의 명함’ 체험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기계인쇄를 매니큐어에, 활판인쇄를 봉숭아물에 비유하고 싶다는 박한수 대표의 표현 한마디가 활판공방의 정신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주변볼거리] 까사미아 앤 까사밀

   
 
까사미아 아울렛 파주점은 신사동에 이은 까사미아의 두 번째 아울렛 매장으로 400평 규모의 4층 건물에 까사미아의 아기자기한 생활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365일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아울렛 매장과 다이닝 카페 ‘까사밀’, 세컨드 브랜드 ‘데일리까사미아’가 함께 위치하고 있다.

전시제품과 소량제품, 샘플제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이곳은 쇼핑과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효율적인 공간이다.

까사밀에서 맛보는 이탈리아 음식 또한 이곳의 매력을 더하고 있는데, 수많은 메뉴 중 특히 오징어 먹물 도우에 불고기와 크림소스를 얹어 풍미를 더한 로만 아시아 비프 피자가 눈에 띈다.

그릴에 구운 소 안심과 먹음직스러운 버섯이 풍성하게 들어간 비프&머쉬룸 샐러드도 인기 있는 식전 메뉴다. 넉넉한 해산물이 토마토와 만나 깊이 있는 소스를 만들어낸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도 베스트 메뉴 중 하나다.

<프리랜서 김소연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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