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신을 찍을 수도 있겠느냐?”는 질문에 상당수 여배우들은 “작품만 좋으면 언제든지…”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태도가 살짝 바뀌게 마련.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좀더 연기력을 쌓은 후에…”라고 말이다. 때문에 강도 높은 베드신을 요하는 영화는 캐스팅부터 난항을 겪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극의 흐름상 일정부분 노출신이 필요한 작품도 감독과 배우의 줄다리기로 촬영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경우가 있다. 인지도 있는 여배우들은 신비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노출을 꺼리고 감독은 어떻게 해서든 여배우를 설득시켜 카메라 앞에 세워야 하는 상황. 카메라 뒤에 선 감독의 욕심과 침대에 누운 여배우의 마음을 조율하는 것은 충무로의 영원한 숙제일 수도 있다.

최근 영화< 형> 촬영중 노출신 놓고 김규리와 제작진 심한 갈등 빚어<색즉시공>땐 ‘노출 계약’ 화제 … <마법…>땐 여주인공 교체 소동

무등산 타잔 박흥숙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형>을 촬영중인 김규리가 노출신 문제로 제작진과 잠시 마찰을 빚었다. 지난달 초 주인공 박흥숙역의 고주원과 여주인공 장영신역의 김규리가 보리밭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촬영하게 되면서다. 메가폰을 잡은 박우상 감독은 “사랑의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베드신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설명했지만 김규리 측은 “당초 노출신은 없는 것으로 알았다”며 항의했다.그러면서 여배우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노출 불가’를 강하게 주장했던 김규리는 현재 전남 순천에서 촬영에 열중하고 있다. 영화사 측 관계자는 “감독님과 김규리씨가 타협점을 찾아 문제가 원활하게 해결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사실상 멜로적 요소가 가미된 영화에서 노출 장면은 불가피하다. 그러다보니 여배우와 의견 충돌이 생긴 것이다. 얼마전 감독님과 김규리씨가 오랜 시간 서로의 생각을 얘기했다. 앞으로의 노출 장면에 대해서도 쌍방이 상의한 후 적정한 선에서 촬영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뭐 구체적인 조항을 내걸었다거나 대역을 쓰기로 하진 않았다. 모두 김규리씨가 직접 연기한다”고 덧붙였다. 촬영장에서 감독과 여배우가 노출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상황은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최근 충무로에서는 노출에 대한 정도를 계약서에 상세하게 명시하는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섹스코미디라는 장르를 내세운 영화 <색즉시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섹스코미디를 표방했다고 하니 배우들의 강도 높은 노출은 불 보듯 뻔한 일. 때문에 <색즉시공> 제작사 측은 여배우와 ‘노출 계약’을 맺게 됐다.

공공연하게 노출계약을 맺는 것은 국내에서는 이례적인 일. 당시, 이 영화에서 파격적인 베드신으로 화제를 뿌렸던 진재영은 ‘상반신과 뒷모습 전면 노출’ 조항이 담긴 계약서에 사인한 후 촬영에 임했다. <색즉시공>에서는 진재영뿐 아니라 함소원, 윤시후, 신이 등 조연급 여배우들의 베드신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주인공인 하지원만은 ‘어깨선 이하 노출 불가’를 주장하며 감독의 애를 태웠다고 한다. 결국 윤제균 감독은 여주인공의 화끈한 노출을 포기하고 코믹에 포커스를 맞췄다. 여기까지 양보한 윤감독이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킨 신이 있었다. 하지원이 자신의 다리를 힐끔 힐끔 쳐다보는 임창정을 향해 과감하게 다리를 벌려 치맛속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촬영장에서 하지원은 “속옷대신 수영복을 입겠다”, “뒷모습으로 처리하면 안 되느냐?”며 몸을 사렸지만 윤감독의 강한 의지에 못 이겨 속옷을 입고 정면 촬영에 응했다. 이 장면은 관객들의 폭소를 유발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 정사 논란을 일으켰던 영화 <마법의 성>은 가슴 노출 문제로 여주인공이 교체되기도 했다. 당초 여주인공으로 내정됐던 신인 배우 이영진은 “브래지어를 벗어야 한다”는 감독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중도에 촬영을 포기했다. 결국 글래머 스타 김지은이 <마법의 성> 히로인으로 새롭게 등장, 구본승과 함께 정사신을 펼쳐 보였다. 완성도와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역시 가슴 노출 문제로 여배우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여주인공은 가수 겸 배우 엄정화에게 돌아갔고 이 영화는 그녀에게 백상예술 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지난해 여성관객들에 의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 <밀애>도 캐스팅 과정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시 톱스타급 여배우 몇몇에게 캐스팅 제의를 했지만 번번이 베드신 때문에 퇴짜를 맞았다.

결국 전라 카메라 테스트까지 받으며 열의를 보인 김윤진에게 여주인공 서연역이 맡겨졌다. 김윤진 역시 이 영화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쯤되면 ‘성공하고 싶으면 벗으라”는 말이 먹힐 법도 한데, 아직 국내 실정은 그렇지 않다. 아직도 노출 연기를 신인의 몫으로 여기는 인식은 팽배하다. 일부 배우들은 작품의 흐름을 배제하고 계약 단계에서 가슴, 배, 엉덩이 등의 노출 정도를 규제한다. 이런 것들이 감독과 제작자의 애를 태우는 요소다. 영화 제작자와 감독들은 “스타가 출연하는 성인 멜로를 기획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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