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호된 채무 위기… 올 6월 다시 빚 상환해야
국제통화기금에 사정해 새로 빚 얻어야 할 형편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유럽은 지금 ‘유럽의 문제아’ 그리스를 돌볼 여유가 없다. 파리와 브뤼셀에서 이슬람국가(IS)가 저지른 집단 학살 테러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지금도 난민이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온통 신경을 쏟고 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국이 오는 6월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할지 말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이런 상황에서 빚에 쪼들리는 그리스에 새로운 부채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상기시키고 있다. 경제가 나아질 조짐이 거의 없는 가운데 이 나라는 오는 6월과 7월 빚 100억 유로(약13조 원)를 갚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거액이 그리스에 있을 리 없다.

100억 유로 갚을 능력 없어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채권단과 협상해 3차 구제금융 형식으로 빌려와야 한다. 새 빚을 일으켜 헌 빚을 갚는 것이다. 몇 년 전 그리스처럼 동료 유럽 국가들에 의해 긴급 구제받았던 다른 유로존(유로화 사용국가) 국가 네 곳은 지금 비교적 잘 회복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는 그렇지 못하다. 유럽이 그리스가 폭삭 망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만 그리스가 현재 겪는 어려움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린다.

그리스는 1981년에 가입한 유럽연합(EU)에서 주도적인 국가가 아니다. 하지만 EU에서 유럽문명의 뿌리인 그리스의 위상은 무시할 수 없다. 유로화를 나타내는 기호 “ε”는 그리스 글자 입실론에서 따온 것이다. 가운데 두 줄은 유로화의 안정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2009년 하반기 그리스는 나쁜 의미에서 EU의 초점이 됐다. 그 해 그리스 역대 정부들이 부채 수준을 잘못 보고해 왔으며 지출을 마구잡이로 해왔다는 사실이 불거졌다. 국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의 130%인 2990억 유로(약370조 원)로까지 불어나 있었고, 그리스로서는 그것을 갚을 길이 없었다. 2011년판 EU 집행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는 세금을 600억 유로만큼 걷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EU의 통화정책에 묶여 있는 그리스는 독자적으로 돈을 찍어 성장을 자극할 수 없다.

2010년 5월, EU 집행위,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의 이른바 트로이카(3총사)는 그리스에 긴급 구제금융 1100억 유로를 제공했다. 그러면서 ▲세금을 올리고 ▲지출을 대폭 삭감하며 ▲비대해진 공공부문을 대폭 축소하라는 엄격한 긴축 조건을 달았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2011년 여름 그리스는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고 채권자들은 두 번째 구제금융 1300억 유로에 합의했다. 2007년 이래 그리스 경제는 25% 위축됐다. 전체 기업의 4분의 1이 폐업했고, 2009년 이래 임금이 38% 내려갔다.

월평균 연금은 2009년의 1350유로(약170만 원)에서 833유로(약 107만 원)로 낮아졌다. 게다가 모든 연금 수령자의 근 절반이 빈곤선인 665유로(약86만 원) 미만의 연금을 받는다. 2008년에서 2011년 사이 우울증 발생률은 3.3%에서 8.2%로 높아졌다. 117만 명인 근로인구 가운데 4분의 1이 실업상태다.

그러던 중 지난해 1월 그리스 사람들은 급진 좌익 정당인 시리자당의 지도자 치프라스를 선거를 통해 총리에 올렸다. 치프라스는 ▲긴축을 뒤집겠다 ▲채권자들과 구제금융 조건을 재협상하겠다 ▲부패와 탈세를 척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선거에서 이겼다. 대중은 그에게 희망을 걸었다. 애국심을 곁들인 치프라스의 호소는 정파를 가리지 않고 먹혀들었다. 지난해 7월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국민 61%는 더 큰 긴축을 부과할 구제 금융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치프라스는 TV에 출연해 유권자들에게 “여러분의 선택은 나더러 실행 가능한 해법을 찾아보라는 명령”이라고 화답했다. 8월 치프라스는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850억 유로를 받아들였다. 이번에는 ▲지출 제한 ▲세금 인상 ▲국유재산 매각이라는 더 가혹한 조건이 붙었다.

어쩌다‘유럽 문제아’로

치프라스가 트로이카의 요구에 굴복한 데 대해 젊은 사람들이 특히 환멸을 표시했다. 9월에 실시된 조기총선에서 투표율은 1974년 독재종식 이래 가장 낮은 56%였다. 아테네의 유력 싱크탱크인 ‘경제·산업연구재단’은 지난 13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올해 경기침체가 심화될 것이며 하반기에 약간 성장을 이루겠지만 그리스 경제가 추가로 1% 위축되리라고 예측했다. 영국에서 2년간 공부하고 아테네로 돌아온 스테파노스 로우코폴루스(32)는 “다음 달 연금을 받을지, 세금이 신설되고 봉급이 또 깎이며 연금이 추가로 삭감될지 아무도 모른다”며 “새로 가정을 꾸리려 생각 중인 젊은 부부라면 덜렁 아이를 낳으려 들겠는가?”라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이처럼 많은 그리스인들이 희망 없이 살아가는 가운데 그리스가 빚 100억 유로를 상환해야 할 기한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지난 4월 1일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는 지난 3월 불법적으로 녹음된 IMF 내부 전화통화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통화에서 IMF 간부들은 그리스의 유럽 채권자들이 부채 감면에 동의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겠는가를 놓고 논의하는 가운데 또 다른 비상사태를 예언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대화는 지난해 그리스에 제공키로 합의된 구제금융 850억 유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정치적 교착상태를 암시했다. IMF는 EU가 그리스에 상당한 부채감면을 제공하기를 원한다. EU, 특히 독일은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이 다른 유로존 국가들에게 선례가 될 수 있다며 난색을 표시한다.

위키리크스의 녹취록이 공개되자 그리스 총리실은 그리스가 금융지원을 받는 데 필요한 긴축 조건들을 이행했는데도 그것을 검토하는 작업을 미루고 있다며 IMF를 탓했다. 치프라스는 IMF가 “정치적으로 유럽을 동요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발끈해져 “그리스는 계속 졸졸 따라다니면서 사태가 처리되기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지난 14일 그녀는 만약 유럽이 그리스에게 모종의 부채 감면을 해주지 않는다면 IMF는 구제금융 참여를 재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일은 만약 IMF가 기여를 중단하면 독일도 그러겠다고 밝혔다. 현재의 난국을 감안하면 지난해 비상사태, 즉 그리스가 부채상환 불능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인들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난민 수용에 보였던 관대함을 그리스에 대해서도 베풀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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