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피워본 사람은 안다. 물과 바람 그리고 햇살만으로는 꽃을 피우기 쉽지 않다는 것을. 꽃이 잘 자라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꽃 자체의 간절함이다. 반드시 세상에 나가야 한다는 의지가 없으면 꽃은 쉽게 피지 않는다. 두바이가 사막에 꽃을 피워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런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에 피어난 꽃, 두바이. 그 거대한 꽃을 보는 시간.

현세와 신기루의 극적인 조우, 두바이

중동의 모래바람이 불어대고 더위가 극도의 온도로 치닫기 시작하는 바로 전, 3월. 두바이에 가기로 했다.

내 삶에는 아직 이슬람 문화가 한 부분도 있었던 적이 없지만 어떤 환상과 이미지는 가지고 있었다.

사막에 뜬 초승달, 마법의 양탄자 그리고 눈만 보이는 검은 옷의 여성들. 무엇보다 눈이 부서질 정도의 하얀 태양. 나는 두바이에서 완전히 다른 양식의 건물들을 볼 것이고 동남아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더위의 전초를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중동사막의 일몰과 함께 두바이가 이루어 놓은 거대한 21세기 문명의 서막을 볼 것이다. 두바이 여행은 확실히  인공적으로 건설한 미래의 꿈을 앞서 보는 여행이다.

두바이의 옛 모습 간직한 바스타키야

항상, 이라고 할 정도로 낯선 도시에서는 바람에 집착하는 편이다. 첫바람, 국어사전에 나오지도 않는 그 단어를 나는 새로운 여행을 할 때마다 제일 먼저 깊게 느껴오곤 했다.

겨울을 겨우 보내고 본격적으로 긴 여름을 맞이하는 두바이의 바람은 곧 다가올 광포한 모래폭풍과 살인적인 더위를 조심스럽게 감추고 있었고 겨우 나지막한 습기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맡은 공기 속에는 분명 기름 냄새도 떠다녔을 것이다. 두바이의 물가는 기존에 다른 나라를 여행하던 수준의 것과는 많이 달랐기에 먼저 합리적인 가격의 숙소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두바이가 성수기인 겨울시즌을 보낸 후 여행의 비수기로 접어드는 시점이라 여행자들에게 구원과도 같은 금액의 유스호스텔은 마침 방이 남아 있었다. 도심과 다소 떨어져 있어 가장 낮은 편에 속하는 이 숙소의 가격은 유럽에서는 어지간한 중급 숙소의 가격이었다.

먼저 바스타키야로 가기로 했다. 어딘지 이국적이고 아랍의 향취가 가득한 이름은 나를 먼저 이끌기에 충분했고 앞으로 보게 될 두바이의 엄청난 현재와 미래를 보기 전에 두바이의 예전 모습을 보기 위한 적절한 루트였다.

두바이의 지하철은 무척 쾌적했고 역의 외관부터 남달라 하나의 건축물을 보는 것 같았다. 여성들을 위한 전용칸이 따로 있었으며 비싼 가격의 골드 클래스도 앞쪽에 분리돼 있었지만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두바이의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거의 가난한 이민자들로 에미라티-아랍에미리트 사람을 칭하는 말들은 부유한 경제적 상황을 바탕으로 지하철은 거의 타지 않는다.

두바이의 외국인 비율은 80%를 상회하며 이중 대다수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서남아시아와 필리핀 사람들이다. 3월 말이었지만 지하철에서는 벌써부터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다.

바스타키야는 두바이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다. 1900년대 초반 이란의 바스탁 지역 주민들이 당시의 이슬람 종파간의 갈등으로 이곳에 건너와 정착한 마을로 두바이의 100년 전 옛 주거와 생활양식을 새롭게 정비해 관광지로 만들었다.

골목마다 두바이의 옛 모습과 골목의 정취가 묻어나 있으며 사막의 나라답게 건물들의 외벽들은 사막의 모래 색감이 묻어나는 회황색으로 마감했다. 집들은 확실히 우리네 황토색감과 많이 닮아 있었다. 집을 건축할 때 벽의 소재는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어 통풍에 무척 효과적인 바다의 산호를 사용했다고 한다.

극심한 더위에 대응하기 위해선 세심한 부분에서도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생산해야 했었고 아마도 이것이 현 두바이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산업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과연 과거 두바이의 집들은 처음 보는 양식이었다.

뜨거운 열기와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창문과 대문을 극도로 최소화했으며 불어오는 바람을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해 각 건물마다 맨 윗부분에 특이한 형태의 탑을 세웠다. 일종의 바람탑인 이것은 아랫부분이 집 안쪽으로 뚫려 있어 바람이 이곳을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공기가 아래 구멍을 통해 집 안으로 굴절돼 들어가게 되는 구조로 에어컨이 없던 시절 더위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의 결과물이다.

바스타키야의 골목골목을 돌았다. 골목의 미덕은 천천히 걷는 것에 있기에 무척 천천히 걸었다. 신기하게도 골목 안은 그다지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골목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전시회가 열리는 작은 갤러리가 있었다. 햇살 좋은 골목에 큰 캔버스를 펼쳐놓고 무심한 듯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보였다.

자그마한 광장에서는 한 여인이 키보드로 연주를 하고 있었고 지친 표정의 사내는 골목에 떨어진 꽃잎을 쓸었다. 바스타키아 골목을 나오면서 나는 이곳이 두바이를 마감하는 장소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부터 두바이에서 어떤 마음의 평온함을 느껴버린 것 같았다.

두바이의 박물관

바스타키야의 골목에서 나와 선착장 쪽으로 조금 걷다보니 박물관이 나왔다. 오후 두 시가 넘은 시간 두바이의 해는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눈이 부셨다.

사람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지 않았고 특별히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았다. 감추고 피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숙명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두바이의 7, 8월. 그때 이곳의 태양은 어떨까. 두바이에는 계절이 단 두 가지만 있다고 한다. 해수욕을 할 수 있는 여름과 해수욕을 할 수 없는 여름. 믿기지 않겠지만 해수욕을 할 수 없는 여름은 겨울 시즌이 아닌 바닷물이 너무 뜨거워서 들어갈 수 없는 진짜 여름인 7, 8월 이라고 한다.

그때의 최고 온도는 50도. 태양열도 열이지만 땅에서 다시 올라오는 지열의 온도와 합쳐져 그러한 믿을 수 없는 온도가 나오는 것이다.

뜨거운 사막과 간간이 불어와 도시를 삼키는 모래폭풍 그리고 그 땅에서 반사되는 거대한 열기와 그에 따른 습기. 아랍에미리트 일곱 개의 토후국에 불과했던 두바이는 이런 척박한 땅에서 태어나 현재 세계의 관광 트렌드를 빠르게 리드하고 있는 나라로 거듭났다. 나는 이들에게 경이롭고 존경스러운 마음을 가져본다.


박물관은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두바이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박물관은 1800년대에 지어진 알 파히디 요새를 개조해서 만들었으며 두바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요새 이후에는 정부의 관청, 왕궁 그리고 감옥 등 차례로 용도 변경돼왔다. 박물관은 두바이의 천지개벽을 오랫동안 보아온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부에는 예전 두바이 사람들이 살았던 방식과 양식이 재현돼 있었고 그때 당시 쓰던 여러 가지 물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아라비아의 전통 배인 다우선도 있었고 전통 목선이라는 아브라도 보였다.

두바이가 이런 단순한 생활 패턴 위에서 이루어졌다니 더 놀랄 뿐이다. 사람들은 바스타키야보다도 많았고 주로 단체 관광객들이었다. 박물관 뒤편으로는 두바이 그랜드 모스크가 있었다.

1960년에 파괴되었던 원래의 그랜드 모스크를 1990년대에 다시 지었다고 하는 이 곳은 외부의 모습부터 어떤 엄숙함이 느껴졌다.

내부에는 한꺼번에 1200명의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부지가 있다고 했지만 비신자인 나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아쉬움이라기보다는 경건한 수긍과 같은 것이었다.

전통시장, 올드 수크

수크는 시장을 뜻하는 아랍어다. ‘전통’이라는 수식이 붙은 시장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예전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돈된 시장이었다.

천장이 꽤 높은 나무 지붕 밑에 알록달록한 천들과 당장이라도 양탄자를 탈 것 같은 아라빅 슈즈 그리고 갖가지 생필품들과 두바이의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랍의 색들은 어떤 인공의 색을 가미한 것이 아닌 태초의 색, 그대로 보였다. 사막에서 태어난 색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강렬했다. 아마 사막이라는 단조로운 태생이었기에 그들의 미적 감각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발달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릇과 장신구들의 다양한 색들은 마치 화려한 꽃다발 같았다. 파랑색은 푸른 하늘과 바다를 닮았고 빨강은 불타는 일출과 불이 번지는 일몰을 동시에 닮았다. 흰색과 검정색은 그들이 입는 옷과 같았고 옅은 브라운은 역시 사막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천천히 시장을 둘러보다가 아랍에미리트의 명물이자 대표적인 간식이라는 데이츠를 맛보았다. 말린 대추야자열매로, 불사조라는 학명을 지닌 데이츠는 부의 상징적인 인물로 유명한 만수르의 스테미너 간식으로도 유명하다.

만수르는 현 두바이 왕자이자 앞으로 두바이를 이끌어나갈 인물 일순위로 꼽히고 있는 세이크 함단 빈 모하메드 알 막툼 왕자의 매형이다. 달콤한 맛과 쫄깃한 식감은 우리네 곶감과 비슷한 인상이었으며 말리는 방법과 안에 들어가는 속에 따라 수백 가지의 종류로 나뉜다고 한다.

데이츠는 아라빅 전통커피인 가흐와와 아주 잘 맞는다고 해서 온 시장을 돌아다니며 찾았지만 아쉽게도 맛볼 수 없었다. 상인들은 모두들 열심이었다. 그런 것을 호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면 그것은 그들의 그러한 삶의 한 방식일 뿐이었다. 관광객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또 현지인들은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시장통을 바쁘게 지나갔다.

모든 것이 서구화되고 있거나 그보다 더 앞서 달리고 있는 두바이 사람들의 참모습은 아마 이곳에서 겨우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프리랜서 이곤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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