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범죄와의 전쟁’ 공약 …‘6개월 내 범죄 근절’ 호언
마국 ‘트럼프’와는 다른 차원 … 워싱턴 정가도 우려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지난 5월 9일 실시된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71)이 쟁쟁한 유력후보들을 물리치고 당선됐다. 외신은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대통령이 되면 6개월 안에 범죄를 근절하겠다”고 내걸었던 선거공약 ▲ 다바오 시장으로 있으면서 보여준 범죄척결과 관련한 무자비한 추진력 ▲ ‘범죄와의 전쟁'을 원하는 국민의 열망을 꼽았다. 이 세 가지 요인이 어우러져 그가 압도적으로 당선됐다는 것이다.

22년간 다바오 시장을 맡아 온 두테르테는 막말과 기행(奇行)의 사나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매춘부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지난 4월 지지자 모임에서는 1989년 다바오 교도소 폭동 당시 재소자들에게 집단 성폭행 당한 후 살해된 호주 여자 선교사를 두고 “그녀는 정말 예뻤는데, 내가 먼저 했어야 했는데”라며 입에 담기 어려운 성적 조롱을 늘어놔 국내외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법 위해 법 무시하는
권위주의 성향 뚜렷

이런 망나니를 필리핀 국민이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그가 범죄에 찌든 국가를 청소하고 고질적인 부패를 근절할 수 있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두테르테는 ‘이단아’시장으로 활동하며 국민에게 강렬한 인상을 줬다. 특히 범죄에 대한 무자비한 태도로 ‘징벌자', ‘두테르테 해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두테르테 해리는 미국 영화 ‘더티 해리'에서 범죄자를 가차 없이 응징하는 주인공 더티 해리 형사의 이름을 변형해 붙인 별명이다. 두테르테는 마지막 유세에서 “내가 대통령궁에 가게 된다면 다바오 시장으로서 했던 일들을 똑같이 할 것"이라며 “범죄자 10만 명을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모든 범죄자를 마닐라 만에 빠뜨려 물고기 밥이 되게 하겠다"며 “약물에 취한 사람은 누구든, 어떤 자든 죄다 죽일 것이고 더 이상의 인내심은 없다. 내게 중간지대는 없으며 당신이 나를 죽이거나 내가 당신을 죽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범죄자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두테르테 시장 취임 전 다바오시는 전쟁지역과 같은 무법 상태로 알려져 있었으나 지난해 여론조사에서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안전한 도시로 꼽혔다. 인권운동가들은 두테르테 시장이 범죄자들을 처형하기 위해 ‘죽음의 부대', 즉 암살단을 용병으로 고용했다고 주장하며 그의 정치적 전략을 비난하지만 그는 동요하지 않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3년 필리핀의 살인사건 비율은 아시아 1위, 세계 11위였다. 필리핀에는 50만 개 이상의 등록되지 않은 불법 총기가 있으며 마약 거래도 급증하고 있다.

이렇게 치안이 불안해서 두테르테를 지지했지만 그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해서 그렇지 두테르테는 정말이지 위험한 인물’이라고 필리핀 정치를 오래 관찰해 온 서방 전문가가 즉각 경고하고 나섰다. 동남아시아의 정치폭력과 회교 성전(聖戰)을 전공하는 영국 포츠머스대학 톰 스미스 교수는 5월 10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고문 ‘트럼프와 두테르테를 비교하지 말라-그 필리핀 지도자가 훨씬 더 나쁘다’에서 세계 언론이 기사의 가독성을 높일 목적으로 두테르테를 트럼프와 곧잘 비교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막말을 빼고는 공통점이 없다면서 서방은 두테르테에 관해 걱정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두테르테의 국내외 정책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세부내용을 알지 못한 데다 검증까지 거치지 않았으므로 두테르테의 존재는 사람들이 걱정할 이유가 된다. 입이 험하고 대중영합적이라는 점에서 두테르테는 분명 트럼프와 닮았지만 그의 환경과 필리핀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스미스 교수에 따르면 기존체제에 반대하는 간판스타로서 두테르테의 출마가 가능했던 것은 언론의 감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민다나오섬 최대 도시 다바오의 시장을 22년간 지냈고 하원의원으로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랬다. 트럼프는 정치 문외한인 반면 두데르테는 전혀 사실이 아닌데도 그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꾼다. 그는 훈련받은 변호사이며 그와 그의 가족은 막강한 정치적 가문으로 커가고 있다.

세계에서 경제 성장 속도가 네번째로 빠름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경제는 그 정치와 마찬가지로 소수 엘리트 가문이 지배한다. 현저한 불평등과 만연한 빈곤은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두테르테가 ‘마닐라의 교양 있고 진보적인 미국 아첨꾼’으로 그럭저럭 행세해 온 것에 대한 대중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두테르테는 거창한 정강을 내걸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떻게 ‘6개월 안에 범죄와 부패를 척결할지’에 대해서는 종종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왔다. 필리핀의 논평가, 기자, 뉴스 앵커는 그에게 도전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보였다고 스미스는 관찰한다. 그들은 대신 “여자 4명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 초점을 맞췄다.

대통령 취임하면 어떤
정책 추진할지 미지수

두테르테는 강력한 지도력을 인정받아 대통령 후보가 됐다. 하지만 필리핀 국민들 사이에는 아직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부패로 얼룩졌던 그의 통치기간(1965~1986) 가운데에는 10년에 걸친 계엄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법치에 관한 한 두테르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법을 무시하는 등 비슷하게 자의적인 철권을 휘두르지 않을까 명백히 우려한다. 트럼프가 미국에 계엄을 선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우려는 국제 수준에서 드러난다. 여자와 성폭행에 대한 두테르테의 발언을 감안하면 일본의 2차대전 범죄에 대한 보상을 모색하는 필리핀 여성들이 새 대통령에게서 동지의식을 발견할 가능성은 없다.

워싱턴에서도 우려가 없을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전략의 일환으로 요구되는 새 미군기지의 개발은 필리핀의 지원에 의존한다. 두테르테는 대미 관계에 있어 필리핀에 더 나은 거래를 위해 싸울 자격이 있다. 하지만 그는 남중국해의 분쟁 섬들을 둔 중국과의 거래가 ‘미국의 태평양 완충지역’으로 사용되는 것보다 더 이로울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시사했다. 이 예측 불가능한 새 지도자, 그리고 그가 부상(浮上)한 시점은 트럼프가 그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세계를 걱정시킬 것이 분명하다며 두테르테를 트럼프와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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