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이긴 하지만 보조출연자는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에 가깝다. A급은 일주일 스케줄이 빼곡이 들어차 있을 만큼 바쁘다. 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연기가 인상적인데, 이름이 뭐예요” 라는 글들이 줄을 잇는다. 이들은 누구일까? 바로 재연 배우다. 재연 배우란, 말 그대로 현실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재연하는 극에 출연하는 배우를 일컫는다. 수년전부터 방송가에서 생겨난 신종 부류인데, 최근에는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타임머신>, KBS 2<솔로몬의 선택> 등 재연극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재연배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100회를 맞은 MBC <타임머신>은 ‘재연배우 연기상 시상식’을 마련,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남녀 배우를 선정했다.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은 각각 경력 10년의 연극배우 소재익씨와 개그맨 지망생이던 김량경씨가 차지했다.다양한 표정연기로 ‘천의 얼굴’이라는 별명까지 달게 된 소씨는 여장 미용사 ‘앙드레 봉’, 취중에 ‘KFC 할아버지 마네킹’을 사람으로 알고 집에 들고 간 회사원, 어눌한 형사 등 각종 엽기적인 역할을 도맡아 왔으며 <타임머신>에 40여회나 출연한 최다 출연자이기도 하다. 시청자 배우로 처음 출연한 후 연기력을 인정받아 고정 배우가 된 김량경씨는 여자 깡패, 바가지 긁는 마누라 등 코믹한 역할에 주로 출연해 왔다.

<타임머신>이 과거의 실재 사건 중 웃지못할 이야기를 선별해 극화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코믹 연기는 프로그램의 사활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향숙이 예쁘다” 등의 대사로 유명한 연극배우 출신 박노식씨도 <타임머신>의 재연배우로 활동한 바 있다. 일요일 아침의 인기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도 인기 재연배우를 배출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장대지, 이중성, 남소연, 이미선, 원완규 등 단골 출연 배우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글로 도배가 돼 있다.

세 개의 스토리중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진실 혹은 거짓’ 코너에서 주로 슬픈 러브스토리에 등장하는 배우 장대지와 관련해서는 “장대지가 나오면 대부분 거짓”이라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로 시청자의 관심이 상당하다. 일본인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중성은 인터넷에 생겨난 팬카페 회원만해도 3,000여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크리스마스의 연인’ 편에 나왔던 원완규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미 남소연, 이미선 등은 빼어난 미모로 수많은 팬들을 거느릴 정도가 됐다. 재연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리면서 드라마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장대지는 SBS <대박가족>, MBC <다모> 등에 출연한 바 있다.

원완규는 SBS <백수탈출>, 남소연은 MBC 인기 드라마 <대장금> KBS2 <상두야 학교 가자>에 출연했다. 사실 이들의 이름만 들어서 누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이름은 모르더라도 얼굴을 보면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브라운관에 자주 등장한다. 다소 과장되고 희화된 캐릭터로, 혹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적인 투박함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재연 배우’ 들은 새로운 연기자 부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법률을 다루는 SBS <솔로몬의 선택>도 재연 배우들이 코믹한 연기를 가미,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재연 프로그램의 한 제작진은 “최대한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연기자를 기용한다. 시청자들이 일반인으로 착각할 정도가 돼야 재연극의 묘미를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재연 배우의 출연은 보조출연 전문업체들이 군소 기획사들의 무명 배우나 탤런트 지망생 등을 모아 각 방송사에 공급하는 것이 보통. 간혹 프로그램 자체 캐스팅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재연 배우 중에는 연기자 지망생이나 신인 개그맨 등이 상당수이며 소재익씨처럼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력을 쌓아온 연기자들도 많은 수를 차지한다. 일부 프로그램에는 16㎜ 에로영화에 출연 경력이 있는 배우가 등장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출연진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것 같다”, “에로배우가 공중파에 나오니 조금은 당황스럽다”는 등의 항의를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은 “무명 시절 16㎜ 영화에 출연하는 경우가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에로영화를 찍은 사실이 있다는 점이 출연의 결격사유는 아니다”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했다.이처럼 다양한 경력을 가진 재연 배우들이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받는 출연료는 어느 정도일까? 각 방송사에서는 재연 배우들의 출연료에 대한 규정을 마련, 등급에 따라 출연료를 지급하고 있다. 어느 정도 얼굴을 알린 이들의 회당 출연료는 20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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