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여 있지만 업계는 ‘미래 후계자’로 낙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2016년에도 여풍이 계속 불 것으로 보인다. 각계 분야에서 여성이 리더 자리에 오르는 일이 계속 늘고 있다. 그동안 여성들의 사회 활동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란 의미의 ‘유리천장’에 가로막히는 일이 많았다.

능력과 자격을 갖춰도 고위직으로의 승진이 차단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대통령, 여성 CEO, 여성 임원 등 유리천장을 깬 주인공들이 늘어나면서 ‘여풍당당(女風堂堂)’이란 신조어도 나타났다. 이에 [일요서울]은 여성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주인공들을 살펴봤다. 이번호 주인공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딸 서민정씨다.

고학력·사회 경험으로 남부럽지 않는 스펙 쌓아
회장 등극은 시간문제, 아버지 젊어 경영수업부터

1991년생인 그는 지난해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한 컨설팅 회사에 입사, 근무 중이다.
아버지 서경배 회장과 대학 동문이고, 재계에서는 조양호 한진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호텔경영) 부사장, 고 허일섭 회장의 차남 허은철(식품공학) 녹십자 사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규호(호텔경영)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의 장남 구형모(경제학) LG전자 대리 등과도 동문이다.

그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2006년 지주회사 전환을 앞두고 경영권 승계를 표상하는 지분을 증여받았다. 따라서 그는 지주회사 아모레퍼시픽그룹의 2대주주일 뿐만 아니라 유량 비상장 자회사 에뛰드와 이니스프리의 2대 주주이다. 또한 어머니 신윤경 여사를 통해 농심홀딩스의 지분도 일부 보유하고 있다.

후계구도 염두, 지분승계 진행

이렇다 보니 재계 일각에서는 민정씨가 경영학을 공부했고, 아모레퍼시픽 등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물론 화장품 등의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그를 서경배 회장의 ‘미래 후계자’로 지목한다.

여기에 그녀가 현재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는 것도 후계구도를 위한 사전작업이란 분석이 많다. 이미 많은 재벌가 자녀들이 컨설팅 업계에 몸담은 후 부모의 회사에 입사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민정 씨가 현재 근무중인 곳으로 알려진 베인앤컴퍼니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씨, 구본걸 LF 대표의 조카인 구민정씨 등 3명이 이 회사에서 일한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인 조현상 효성 부사장과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장녀인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기획팀장은 베인앤컴퍼니 서울지사 출신이다.
오너 2·3세들의 컨설팅 업계 근무는 대기업과 컨설팅사의 ‘공생(共生) 전략’으로 평가된다. 대기업들로선 2·3세들이 밑바닥 직장 생활을 경험하면서 전략적 관점에서 경영 수업을 받는 데 컨설팅사가 적격(適格)이라는 입장이다. 경쟁사 취업은 곤란한 데다 20대 나이에 부모가 오너로 있는 기업에 입사했다가는 ‘갑(甲)질 문화’에 젖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컨설팅 실무를 하면서 경영진을 자주 만나다 보면 자연히 경영수업도 받게 돼 ‘경영 사관학교’ 역할을 하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슬하에 2녀를 두고 있다. 둘째는 아직 어리다. 
또 아모레퍼시픽은 서경배 회장이 아직 50대로 젊다는 점, 민정 씨의 나이 역시 어리다는 점 등을 들어 2세 경영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서경배 회장은 지난해 7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경영권 승계에 대해서는 따로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며 “아직 제가 50대 초반이고 저 또한 갈 길이 멀기 때문”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측 관계자는 향후 경영승계와 경영수업 계획과 관련해 “나이가 어리다”는 말로 ‘시기상조’임을 강조했다. 현재로선 서민정 씨의 향후 입사 계획 등 아무것도 계획된 것이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할머니 윤독정 여사, 머릿기름…초석 마련

사실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는 ‘여중군자’라고 불렸던 윤독정 여사의 ‘머릿기름’에서 시작됐다.
서민정씨의 할머니이자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장남 서성환 선대회장의 어머니인 고 윤 여사는 1930년대 개성에서 동백기름을 직접 만들어 팔았다. 당시 동백기름은 여성들의 머리 손질용으로 인기가 높았다. 냄새가 나지 않고 잘 마르지 않으며 윤기를 오래 지속하면서도 때가 잘 끼지 않아 좋은 머릿기름의 특성을 고루 갖췄다. 그만큼 만들기 어렵고 비쌌다. 윤 여사는 독자적인 기술로 동백기름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제품은 남다른 품질로 입소문이 났고 신뢰를 얻었다.

이런 어미니를 곁에서 지켜보고 도우면서 자란 서성환 회장이 45년 태평양화학공업(현 아모레퍼시픽)을 세웠다.  서성환 회장은 ‘기술과 품질로 고객에게 인정받는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경영의 기본으로 삼았고 이 일이 사업의 모태가 되어 현재의 아모레퍼시픽이 만들어졌다.
또 화장품의 특성상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강점 요인이 있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여성 총수의 등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시대적 흐름에 맞고 여성의 ‘꼼꼼함’이 경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유신 서강대 교수(경영학부)는 “현재는 여성의 정치적 힘과 의사결정에서의 힘이 과거보다 분명히 커졌기 때문에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재계는 민정 씨가 서경배 회장의 뒤를 이어 총수에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알려지지 않은 만큼 앞으로의 소식이 더욱 기대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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