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영 주중대사, 승무원 먼저 풀어주라조언  

2001412일 오전 730, 중국 하이난도(海南島)의 성도 하이커우(海口) 군사비행장.
미국 항공기 승무원들을 태운 콘티넨털 항공 소속 대형 전세기가 활주로를 가로지르며 이륙했다. 중국 최남단 군사비행시설의 심장부를 뜬 보잉 737기는 곧바로 미국령괌의 앤더슨 기지로 향했다. 근접 비행하던 중국 전투기와 충돌한 뒤 하이난도에 비상착륙한 미 해군 소속 정찰기 EP-3의 승무원 24명이었다. 중국 남해함대의 안방에 불시착했다 당국에 억류된 지 11일 만에 출국조치된 것이다.
 
이는 미·중 정찰기 충돌사건을 계기로 파국으로 치닫던 양국의 외교갈등이 극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물론 승무원 출국조치는 그 자체로 미완의 해법이었다. 기체반환은 물론이고 사고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둘러싼 본안(本案)협상은 여전히 미제로 남은 탓이다.
 
그러나 당시 조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접점없는 대치를 이어가던 미·중 분쟁에 분명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단초가 됐다. 그리고 그 막후에는 당시 홍순영(2014년 작고) 주중 대사를 비롯한 한국 외교관들과 정부의 숨은 중재역이 있었다. 하이난도 인근 공해(公海) 상공을 무대로 미·중의 항공기가 충돌한 이번 사건은 외교적으로 매우 복잡한 함의와 폭발력을 응축한 양국관계 최대의 뇌관이었다. 사고의 원인 규명과 책임을 둘러싼 기술적 논쟁 차원을 넘어 힘의 외교를 앞세워 대외 강경노선을 추구해온 당시 부시 미 행정부와 패권적 야망을 품고 새로운굴기’(떨쳐 일어남)를 시도하려는 중국 지도부의 정책노선이 부딪친 이른바 외교 대 외교의 충돌이었다. 특히 당시 사건은 부시 행정부가 중국이 반대하는 첨단무기를 대만에 판매하려는 민감한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양국관계의 긴장도를 가일층 고조시켰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듯 사건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과 접근방식은 첨예하게 갈렸다. 미국은 조속히 인질을 데려오고 정찰기를 회수하며 중립(中立) 상공에서 위협비행을 용인한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자세를 취했다. 중국은 미국 정부로부터 최대한도의 사과를 이끌어내고 미국 정찰기를 샅샅이 조사할 때까지 붙잡아둔다는 전략이었다.
 
당시 사건은 시간이 흐를수록 양국 간 국제법 논쟁까지 가세하며 자존심이 걸린 감정싸움 양상으로 치달았다. 특히 사과문제를 둘러싸고 양측의 신경전은 출구 없는 평행선 대치로 이어졌다. 당시 베이징(北京)에서 미·중 간 분쟁을 지켜보던 홍순영 주중 대사는 두 고래의 싸움이 시작된느낌을 받았다.
 
한반도 주변질서를 좌우하는 양국의 외교갈등은 한반도 정세 전반에 걸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고 당시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추진에도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쉽게 말해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의 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우려였다.
 
두 강대국이 대립보다는 동반자 관계로 나아갈 때 남북간에 공존과 평화통일이 보장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목표라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러던 차에 홍 대사는 사건발생 5일 만인 46일 중국 안전부장(安全部長·우리나라의 국정원장 격)과 회동했다.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개진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다.
 
당시 홍 대사로서는 강대국 간 분쟁에 주제넘게 나서는 것이 아닌가. 불필요한 모험이 아닌가하는 걱정도 들었다. 본국 정부로부터 훈령도 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자칫 미국의 맹방으로서 미국의 대변인 노릇을 한다고 오해받을 소지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중국의 친구로서 내 생각을 얘기하는 정도의 모험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고 결국 용기 있게 조언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홍 대사는 마주 앉은 안전부장에게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나는 중국의 친구로서, 또 한·중 관계의 발전에 큰 이해관계를 가진 한국의 대사로서 이번 항공기 충돌사건에 관한 의견을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제시하고 한다. 먼저 중국 전투기 조종사의 사망에 위로의 뜻을 표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홍 대사는 크게 세 가지 줄기로 의견을 제시했다. “첫째, 항공기 충돌사고로 인한 분규가 악화돼 양국관계가 위기로 비화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조속한 해결이 요구된다. 둘째, 미국 국회의원 또는 언론의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대중국 비난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국무부의 책임 있는 관리들하고만 대화하라. 셋째, 우선 본안의 해결과 항공승무원 출국허가 문제를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승무원 출국을 먼저 허용하면 본안의 해결은 쉬워지고 또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핵심은 셋째 항목에 놓여 있었다. 승무원 출국과 본안 처리를 분리대응하는 것이 사건해결의 열쇠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이다.
 
홍 대사는 이튿날인 46일 다이빙궈(戴炳國)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당의 외교부장 격)을 만나서도 같은 취지의 언급을 했다. 홍 대사의 제언은 안전부장과 당 대외연락부장을 통해 미국과의 교섭을 책임진 중국 고위층에 전달됐다.
 
그로부터 5일이 지난 11일 중국 정부는 전격적으로 승무원 전원을 출국조치하는 결정을 내렸다. ‘사과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묘한 절충점을 찾은 중국은 일단 승무원들을 먼저 풀어주고 나머지는 추후 협상하는 쪽으로 분리대응을 꾀한 것이다.
 
사과문제는 미국이 조지프 프루어 주중대사를 통해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부장 앞으로 보낸 외교서신에서 정말 미안하다"(very sorry)고 표현하고 중국은 이를 중국어 번역상 사과라고 인정하는 선에서 묘하게 매듭지어졌다. 양국은 승무원 출국 직후 본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23개월간의 교섭 끝에 미국 정찰기를 분해·출국시키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건을 완결지었다. ·중 간 고도로 복잡한 외교전이 전개됐을 사건의 성격을 감안해볼 때 홍 대사의 분리대응의견이 어느 정도 사건해결 과정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물음표였다. 당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승무원 처리와 비행기 반환협상의 분리 전략을 추진했다는 설이 있었고 중국도 사건 초기부터 어느 정도 유사한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는 뒷얘기도 들렸다.
 
그러나 홍 대사의 제언이 미·중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평행선 대치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사건해결의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고 속도를 더해주는 역할을 했음은 분명해 보인다는 게 외교가의 지배적인 평가였다.
 
홍 대사는 사건이 해결된 이후 미·중 양국 정부로부터 정중한 사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 정부는 베이징에 주재하는 여러 국가의 대사들로부터 의견 개진이 있었으나 홍 대사의 의견 개진이 제일 정중하고 무게 있었다고 평가했다는 후일담이 나오고 있다. 또 프루어 주중 미국대사도 이후 사적인 면담 기회에 홍 대사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면서 깊은 사의를 표했다고 한다.
 
홍 대사는 이를 두고 나의 관여나 의견 개진으로 사건이 신속히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나의 우정과 관심을 적절히 잘 표명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혹시라도 중국 정부가 원래부터 계획한 승무원 석방시기를 좀 앞당기는데 기여한 것은 아닌가 하고 희망적으로 혼자 생각하고는 있다고 자세를 낮췄다.
 
힘이나 위협이 아닌 협조와 설득으로 갈등을 풀어내는 소프트파워21세기 외교의 키워드가 되고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윤광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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