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수“이젠 트렌스젠더가 아닌 ‘여자’로 불러달라”
‘특이한 연예인’이라는 시선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물론 ‘트랜스젠더’라는 독특한 타이틀로 인기 반열에 올랐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맘고생은 적지 않았다. 한번은 오락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과 게임을 하다가 비명을 질렀는데 여자들의 비명과는 좀 다른 거친(?) 소리가 튀어나와 한동안 네티즌들의 얄궂은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심한 콧소리는 언제나 개그 소재가 되거나 성대모사의 대표격으로 애용(?)됐다. 언론과의 인터뷰는 언제나 힘들었다. 자신을 ‘몸만 여자’라는 전제 하에 질문을 던지는 통에 서운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는 당당히 성공한 연예인으로 모든 트랜스젠더들의 우상이 됐지만 여전히 ‘하리수’를, 아니 나와 같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야릇한 시선에 부담감을 느낀다. “난 원래 여자였다. 남자에서 여자로 몸이 바뀐 게 아니라 원래 내 속에 있는 성정체성을 되찾은 것이다. 이제 나를 ‘트랜스젠더’가 아닌 ‘여자’로 불러달라!”

박유리 “단 한번도 남자로 산 적 없다”
‘제 2의 하리수’라 불리는 박유리. 173cm 큰 키에 35-24-35로 이어지는 완벽한 곡선. 덕분에 나는 패션계에서는 꽤 알아주는 모델이다. 하지만 아직 나를 보는 시선은 평범하진 않다. 처음에는 대부분 여자로 대해주다 결국은 색안경을 쓰고 만다. 어릴 적부터 소꿉놀이를 할 때면 언제나 엄마 역할을 맡았고 바지보다는 레이스가 잔뜩 달린 치마가 더 예쁘고 좋았다. 남자보다 여자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기까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나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짧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어 수술을 결심했다. 생각보다 많은 돈과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낮에는 미용학원, 밤에는 이태원 업소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고 99년 1월 일본에서 수술한 뒤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수술을 꿈꾸지만 금전적인 문제를 비롯 많은 제약 때문에 여자로 태어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로 사는 게 더 힘들었다. 그리고 난 단 한번도 남자였던 적이 없다. 난 내 정신에 맞춰 육체를 바꿨을 뿐이다.”

홍석천 커밍아우 이후 죄인취급…아직도 질겁하는 남자들 많아
지난 2000년 커밍아웃을 선언하고 나서 참으로 많은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던 것 같다. 동성애자라는 고백에 많은 사람들은 굉장한 충격이라도 받은 양 “어머나 세상에”를 연발했다. TV출연이 모두 정지됐고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무슨 병이라도 옮기는 사람처럼 나를 슬슬 피할 때는 정말 괴로웠다. 한번은 공원 벤치에 앉으려 하는데 아이와 함께 앉아있던 엄마가 아이를 꼭 끌어안고 허겁지겁 자리를 떠나더라. 눈치를 슬슬 보면서 말이다. 한국에서 산다는 게 힘들어 오랜 시간 외국을 전전하기도 했다. 외국은 한국보다 좀더 자유로우니까. 그리고 2001년 SBS 드라마 ‘완전한 사랑’에서 커밍아웃한 캐릭터를 맡으면서 조금씩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나를 향한 시선이 부드러워진 게 사실이지만 여전히 내가 다가가면 “제발 날 사랑하지 말아달라”는 표정으로 질겁하는 남자들이 많다. “나도 사랑할 수 있다. 다만 그 대상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일 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죄가 될 순 없지 않은가….”

인터뷰 “예쁜 여배우 되고파”
MBC‘떨리는 가슴’서 트랜스젠더 주인공 역“애환, 감동적 표현” 시청자들 격려어린 반응도하리수는 최근 MBC 드라마 ‘떨리는 가슴’에서 트랜스젠더 역의 실제 주인공으로 출연해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트랜스젠더를 다룬 것도 처음이지만 실제 성전환자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것도 이번이 처음. “섭외가 들어왔을 때만 해도 망설인 게 사실이에요. 단순히 ‘흥미’를 끌기 위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됐거든요. 하지만 제가 피한다면 다른 성적소수자들도 설 자리를 계속 잃어갈 거라 생각했어요.”평가는 대성공이었다. 연기력은 물론이고 실제 트랜스젠더들의 애환을 감동적으로 표현했다는 평이다. 시청자들 역시 그의 연기를 보면서 “편견을 접을 수 있었다”는 격려 어린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제 하리수는 어떤 선입견도 필요없는 ‘진정한’ 연기자에 대한 욕심과 자신감이 생겼다. 대만에서 미니시리즈 ‘안녕 내사랑’에 평범한 여배우로 출연한 후 “하리수는 더 이상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연기 잘하는 예쁜 여배우가 됐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얼마 전에는 트랜스젠더로 출연한 홍콩영화 ‘도색’으로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는 영광도 누렸다. “어릴 적 꿈이 ‘여자’였는데 이젠 ‘예쁜 여자 배우’가 되는 게 바람이에요. 내가 가진 장애를 해결하면 잘 한 일이고 칭찬해줘야 할 일 아닌가요? ‘여자’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