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가수협회장 김흥국 인터뷰

[일요서울 | 박정민 기자] 한 연예인이 나와서 갑자기 뜨면 ‘혜성처럼 나타났다’고들 한다. 가수 김흥국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호랑나비’, ‘59년 왕십리’가 대표곡으로, 7080세대는 당시 김흥국이 주었던 신선한 충격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데뷔 후 이 두 곡으로 오랫동안 우려먹은(?) ‘날방송인’은 아닌 듯하다. 가끔 사고도 쳤지만 그는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대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 그가 요즘 ‘예능치트키’, ‘흥궈신’ 등의 별칭을 얻으며 또다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수일까. DJ일까. 축구인일까. 예능인일까. 가수협회장일까. 돌아온 흥부자 가수 김흥국을 만나 허심탄회한 생각을 들어봤다. 

 

-가수가 된 지 30년이 넘었는데 데뷔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

▲ 학창시절에는 축구선수였다. 고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에 밴드부에 들어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됐다. 그곳에서 드럼을 쳤다. 졸업 후 무교동 클럽 등지에서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연주하고 노래하고 팝 음악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스물두 살에 해병대에 입대를 했고 전역 후 ‘오대장성’이라는 록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솔로로 데뷔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88년도였던가. 나에게 음악을 전수했던 선배의 딸이 몸이 좋지 않았다. 불치병이었다. 그 때 나도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든 상황이었는데 선배의 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이 TV전파를 타게 됐고, 시청자들이 좋게 봐주셨다.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호랑나비가 당대 큰 인기를 끌었는데.

▲ 89년도에 ‘호랑나비’라는 곡을 발표하게 됐는데, 그 곡이 그야말로 ‘빵’ 떠버린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돼 있더라’라는 말이 있는데 말 그대로 그런 상황이었다. 10여년 무명의 설움이 그 한방으로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우리 가요 역사상 한 곡으로 그렇게 빠르게 가요계를 석권한 전례는 그 당시만 해도 없었다. 당시 상이라는 상을 모두 휩쓸었다.

-당시만 해도 굉장히 실험적인 노래였을 것 같은데.

▲ 지금도 전설적인 존재이지만, 조용필이라는 가수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그 형이 나에게 와서 직접 “정말 굿 아이디어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밝고 실험적인 노래가 없었는데, 나도 창밖의 여자 등의 노래를 불렀지만 너 정말 대단하다”라는 말을 했다. 그 전에는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니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가수보다는 만능엔터네이너로서의 면모가 더 큰데.

▲ 가수라고 해서 가수활동만 해서는 지금까지 이어오지 못했을 거다. 시대가 변하고 트렌드가 변하고 흐름이 변할 때마다 내가 그 시대의 흐름을 읽었던 거다. 호랑나비 이후 주병진이 진행하는 ‘일요일일요일밤에’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개그맨이 아닌 가수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웃긴 첫 번째 케이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만능엔터테이너 1호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노사연씨고 (웃음). 연예인으로서 롱런을 하기 위해서는 히트작 한 두개가 나와서 되는 게 아니고 계속해서 후속타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조세호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 난 사실 조세호에 대해 아주 잘 알지는 못한다. 친하고 가까워도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자세한 부분을 잘 모른다. 김구라씨가 조세호에 대해 ‘형님이 신경을 좀 쓰세요’ 하길래, ‘안재욱 결혼식에 왜 안 왔어?’ 한 거다. 조세호는 평소 인사 잘하고 싹싹하다. ‘열심히 하는데 왜 이렇게 안 되냐’라고 평상시에 말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방송에서 우연히 던진 말이 ‘프로불참러라’는 유행어가 생길 만큼 화제가 된 거다.

-혹시 평상시 후배들을 관찰하고 눈여겨보고 있는 건가.

▲ 아니, 잘 나가는 사람들은 상관이 없어요. 하지만 가끔 보면, 될 것 같은데 안 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깝다. 그럴 때 내가 한번씩 건드려 주면 뜨두만 (웃음). 지금은 탁재훈과 이천수, 박재정 등을 눈여겨보고 있다. 요즘에는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내 흥라인(털라인)에 많이 설려고 그러드만 (웃음). 지상렬같은 후배도 나를 만나야 다시 뜨는데 어디 가 있는거야? (웃음)

 

-한 인터뷰에서 ‘과거 처절한 고생 후 빛을 보고서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어느 정도 관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보면 고생 안한 사람들은 방송하는 자세가 다르다. 보면 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방송에서 꾸미질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하는 거다. 그러다가 하나씩 걸리는 거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다. PD나 작가들의 말도 잘 따르지 않는다. PD나 작가들 입장에서는 좀 피곤할 수도 있을 거다 (웃음).

-5년 전 MBC 라디오 하차 사태 때 1인 시위 당시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

▲ MBC 라디오 같은 경우는 나에게 처음으로 기회를 주고 키워준 친정집 같은 곳이다. 하지만 5년 전 MBC 사태는 MBC 사장과 노조의 싸움에 내가 말려들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 당시 상황으로 하차를 시켰으면 다시 복귀를 시켜줘야 하는데 복귀를 시켜주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SBS에서 봉만대 감독과 함께 ‘털어야 산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잘 진행하고 있다.

-가수협회 회장이기 때문에 가수협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가수 협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 1년 회비는 18만원이다. 무명 가수들에게는 안 받고 싶고 깎아주고 싶다. 그러나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가수들은 그거보다 더 내야지. 기부를 해야지. 회비로는 운영이 안 되니 공연해서 십시일반으로 모으고 지원 받기도 한다. 원로가수들 복지도 나름 신경을 쓰고 있고, 아픈 사람들 돕는 일도 하고 있다. 현재 목표는 3년 임기 내에 회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협회의 숙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잘나가는 가수나 기획사가 도와주면 더 좋을 것 같다.

 

-연예인들은 좋을 일을 했을 때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 어떤 분야든 간에 잘나가고 돈 있는 사람들이 이끌어 가면 쉬운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고생을 해봤지만 고생 안 해도 된다. 조금씩만 이끌어주고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잘나가는 사람만 잘나가고 있다. 이러면 안된다.

더 나아가서 사회에 갖가지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배운 사람들, 있는 사람들이 베풀지 않아서 그런 거다. 지도자들이나 각 부처 장관, 정치인들은 도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이 곳곳에 찾아 다녀야지. 노숙자가 있으면 찾아서 다독거려주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나 독거노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궁리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자를 도와주는 사회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의미에서 원로 가수들이나 무명 가수들을 돕는 건가.

▲ 전국의 많은 회원들이 나로 인해 희망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디든 어떤 사람이 리더가 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서 잘나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챙기고 다독거려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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