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최악의 총기 참사에도 규제 목소리는 약해
총기난사 있으면 범인이 사용한 총기 판매 늘어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지난 6월 12일(현지 시간) 새벽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게이 클럽 ‘펄스‘에서 발생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최소 50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다쳤다.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오마르 마틴(29)은 이날 소총과 권총, 폭발물 등으로 무장하고 클럽 앞을 지키던 경찰관과 교전한 뒤 안으로 들어가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에 사살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에도 총기 규제가 시급하다고 호소했지만, 총기난사 범인이 사용한 AR-15 소총이 사건 이후 오히려 더 잘 팔리는 등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시금 확인되고 있다. ‘총기 규제’는 ▲어떤 종류의 총기를 사고팔 수 있는지 ▲누가 총기를 소지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지 ▲어디서 어떻게 총기가 보관되거나 휴대될 수 있는지 ▲구매자를 심사하기 위해 판매자가 어떤 의무를 지는지 ▲판매자·구매자가 정부에 총기거래를 신고해야 하는 어떤 의무가 있는지에 관한 규제를 폭넓게 가리킨다.

 

개척민이 건설한 미국
헌법에 총기소지 명시

미국 연방 법률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의 총기 소유를 금한다. (1)특정한 범죄 전과나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 (2)법적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이민자 (3)불명예 전역한 예비역 군인 (4)파트너나 파트너의 자녀에게 영원히 접근하지 말라고 법원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사람 등이다. 연방 법률은 총을 사려는 고객이 이런 금지 부류에 속하는지 연방수사국(FBI)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총기 판매상이 점검하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이 점검 시스템은 범죄 사건을 전부 망라하지 못하는 등 허점이 있다.

대부분의 총기 규제는 주 수준에서 실시된다. 뉴욕, 뉴저지, 메릴랜드, 하와이, 로드아일랜드, 일리노이, 매사추세츠 주가 가장 엄격하다. 총기를 소유하려면 면허나 허가를 받으라고 요구하는 주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주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총기 휴대 관련 법률은 매우 다양하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합법적으로 총기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면허나 허가 없이도 공개적으로 총기를 휴대할 수 있게 허용한다. 교정(校庭)과 예배시설 같은 특정한 환경에서의 총기 소지에 관한 규칙 역시 주마다 다르다. 예컨대 로드아일랜드 주에서는 은닉 휴대 허가를 받은 사람은 총기를 공립학교 구내로 가져갈 수 있지만, 이웃한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그러려면 학교 간부로부터 서면 허가를 얻어야 하는데 학교에서 그런 허가를 내주는 일은 좀체 없다.

총기규제에 대해 미국 대중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총기난사 사건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엄격한 총기규제 법률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지난 25년에 걸쳐 오히려 약화돼 왔다.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 같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더라도 총기 규제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반짝하고 말 뿐이다. 총기규제는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극명하게 견해가 갈리는 이슈다. 최근의 여론조사들을 종합하면 민주당원의 다수와 집안에 총을 갖지 않고 있는 사람은 규제강화를, 공화당원의 다수와 총기 소유자들은 규제완화를 각각 선호한다. 그렇더라도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총기를 가진 사람이든 안 가진 사람이든, 대중의 압도적인 다수는 보편적인 신원조사를 지지하며, 정신질환자의 손에 총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조처를 지지한다. 다수는 또 총기 판매를 추적할 수 있는 연방 차원의 데이터베이스 창설, 그리고 공격용 무기 판매 금지를 선호한다.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논거는 원칙, 법률, 그리고 실현 가능성으로 귀착된다. 총기 권리 옹호자들은 무기 소유를 개인의 권리로 파악한다. 그들은 사냥, 자기방어, 스포츠를 위해 또는 단지 그렇게 하고 싶어서 사람들은 스스로 무장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토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미국 건국 초기인 18세기에 제정된 다음의 미국 수정헌법 제2조다. “잘 규제되는 민병대는 자유국가의 안전에 필수적이므로, 사람들이 무기를 유지하고 소지할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총기 옹호론자들은 이 조항이 총기 소유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며, 총기 반대론자들은 그 조항이 민병대를 통한 사람들의 집단적인 권리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2008년 미국 대법원은 사상 처음 찬성 5 반대 4의 결정을 통해 수정헌법 제2조가 총기소지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한다고 판단했다.

로비 막강 ‘전미총포협회’
정치인들조차 대항 못해

총기규제에 찬성하는 논거는 “미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총기소유가 훨씬 많으며 총기를 이용한 폭력사례도 훨씬 많다”는 점을 강조한다.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2013년 미국에서 3만3000건이 넘는 총기 관련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살인의 70%(1만1208건), 자살의 절반 이상(2만1175건), 그리고 사고사 및 미해결 사망 사건 수백 건이 총기로 인한 것이었다. 선량한 시민들에게 여전히 총기 소유를 허용하면서도 ▲총기 수 감축 ▲총기소유자에 관한 기록 개선 ▲구입·소지·보관에 대해 약간의 제한을 추진하면 총기로 인한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개인에게 바주카포나 기관총으로 무장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반의 공감대가 이루어져 있는 만큼, 이런 주장은 대중을 무장해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분별 있는 제한을 설정하자는 것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미국에서 총기규제를 매번 유야무야시키는 세력의 중심에는 막강한 전미총포협회(NRA)가 있다. NRA가 이끄는 총기 권리 옹호자들은 정치인들이 맞서기를 두려워하는 강력한 로비를 형성한다. 정치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에게 총기 권리는 핵심적인 표결 사안이며 감히 넘고 싶지 않은 선이다. 이들 옹호자는 대형 총기난사가 터져 총기를 규제하자는 여론이 높아지면 “지금은 그 문제를 놓고 토론할 때가 아니다”는 식의 주장을 펴서 물 타기를 시도한다. 총기 로비는 근년 들어 더 단호해졌다. NRA 간부들은 “총기를 든 악당을 막는 유일한 길은 착한 사람이 총을 드는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지난 수십년에 걸쳐 미국 정치의 당파성이 매우 심화되는 것과 동시에 지역적 분열도 더 공고해졌다. 그 결과, 총기규제는 갈수록 당파적 이슈가 되어 공화당은 반대 일색이다. 현재 공화당은 미국 연방하원과 대부분의 주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 총으로 무장한 개척민들이 건설했고 헌법에 무장할 권리가 명시된 미국에서 제대로 된 연방차원의 총기규제가 실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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