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의 대변인이 모두 여성으로 채워진데 이어 여성인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가 되었다. 아울러 최악의 위기에 처한 민주당에서 추미애 의원이 ‘전권’을 행사하는 선거대책위원장이 되었다. 또한 16대 국회까지 5.9%에 불과했던 여성 정치인이 다가오는 17대 국회에서는 질과 양적 측면에서 현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때가 다가왔다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과연 여성 대통령 탄생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그 ‘때’는 무르익었는가.지난 3월 2일 지은희 여성부 장관은 “시대적 변화는 반드시 누적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급격한 변화도 있을 수 있다”고 하여 사실상 여성대통령도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강금실 장관, 추미애 의원, 박근혜 의원 등을 볼 때 이제 그들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며 여성이 더 이상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일종의 ‘꽃’이 아니라 능력으로 당당하게 나설 수 있음을 강조했다. 지은희 장관이 장담한 것이 지금 현실태로 전환되고 있다.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의 대변인이 모두 여성으로 채워졌으며, 심지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표 얼굴이 여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여성 파워가 증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 판에서도 여성의 등장은 더 이상 거스르지 못하는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부에서 조심스럽거나 냉소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여성단체연합> 김미란 정책간사는 “박근혜, 추미애 의원 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탄핵 정국에서 추락한 당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꼼수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힘이 여성에게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며 환영을 표했다.

숙명여대 이남영 교수도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그 동안 남성들이 주도한 보수-수구 정쟁이라는 정치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가장 어려울 때 구원투수나 소방수로서 나타난 여성 정치인들이 이 위기를 잘 탈피하는가 여부에 따라서 향후 정국의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고, 따라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위기는 기회인 셈이다. 박순천 여사 이후로 경선을 통해 공당의 대표로 취임한 박근혜 의원은 이런 여성 대통령이라는 꿈에 가장 접근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박근혜 대표는 이미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한국미래연합>의 당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다시 한나라당으로 복귀해 당시 이회창 대선 후보를 도운 바 있다. 이런 박 대표의 행동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한나라당에서 박 대표를 최측근에서 돕고 있는 전여옥 대변인이 입당하기 전, 조선닷컴에서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박근혜 의원이 최병렬 이후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박근혜 의원은 스스로 벌고 쌓은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정치적 유산의 상속자로서 살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라는 여성 정치인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미래연합을 포기하고 다시 한나라당에 복당한 것에 대해서도 “아버지 어머니를 알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미래연합을 창당했지만 누구나 예측했던 대로 ‘미니 시한부 정당’으로 끝나고 말았다. 역시 따뜻한 온실에 있던 공주는 비바람과 냉골을 견디지 못하는구나 싶었다”고 지금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대변인으로서의 전여옥’이 아니라 ‘자연인 전여옥’이 현 박근혜 대표의 단점과 한계를 가장 정확하게 지적했다고 할 것이다. 박근혜 의원이 지금 한나라당의 대표가 된 것은 그 나름의 정치적 업적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한나라당의 뿌리와 박정희 향수에 젖어있는 보수 세력의 회귀성 탓이 크다.

따라서 그가 총선을 전후해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진정한 거물 정치인으로 거듭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박근혜 대표는 아버지 박정희 전대통령에게서 직간접적으로 정치 수업을 받았다고 하나 대중을 상대로, 동료 정치인을 상대로, 정적을 상대로 어떻게 타협하고 조정하는지 단 한 번도 훈련받은 적이 없다. 또한 그가 정당 정치인으로 들어가서 단 한 번도 책임있는 위치에서 정치력을 시험해 본 적도 없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비판처럼 어쩌면 토론과 설득이 없이 3공 시절의 일방통행식 ‘권위주의’ 정치 행태에 젖어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영남지역에서 ‘박근혜 효과’가 분명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이 그의 진정한 정치적 능력으로 평가될 수는 없다. 박근혜 대표가 여성대통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련과 검증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잔다르크와 비슷한 강력한 힘과 추진력을 발휘한다고 해서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추미애 의원 역시 차기 여성 대통령 후보로 꼽히고 있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을 꼽을 정도로 어느 면에서 ‘남성보다 더 남성다운’ 여성 정치인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 추 의원은 말하는 것에서도 선동적이고 매서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에서는 앞장서서 보수언론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발탁으로 15대 국회에 진출한 추미애 의원은 이제 민주당 최악의 위기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 매김했다. 선거대책위원장은 이미 따 놓은 당상이고 문제는 ‘전권’을 행사하느냐 여부로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결국 원래 그의 의도대로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모색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는 바닥으로 전락한 민주당 기사회생의 마지막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역시 판사 출신이라는 화려한 배경에다 김대중이라는 일당 보스에 의해 발탁되었고, 게다가 ‘대구 출신의 호남 며느리’라는 지역적 배경까지 안고 등장했기에 그가 앞으로 얼마나 독자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성장하여 최초의 여성대통령에 도전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 ‘전권’을 행사하는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올라섰지만 이 역시 탄핵 정국이라는 외부 요인과 여론재판에 의한 당지도부 해체라는 최대의 호재로 이룩한 것이기에 ‘추미애’ 개인의 진정한 능력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은 먼 것이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 초대 법무장관으로 취임한 강금실 장관은 작년 최고의 스타였다. 연예인 이효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강효리’라는 별명으로 세인의 입에 올랐다. 그는 탁월한 능력과 경력 못지 않게 패션이나 춤 솜씨 등의 예인적 기질로도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느냐가 최대의 관심사가 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가 어느 여론 조사 결과 박근혜, 추미애 의원 다음으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오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는 판사시절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형사 단독심 판사를 맡았고, 국내 최초로 법률 법인 회사인 <지평>의 대표를 지냈다. 또한 민변 첫 여성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되었고 작년 참여정부의 최악의 부진 속에서도 법무부와 검찰 개혁을 무난하게 이루어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여성 대통령으로 나서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듯하다. 우선 그 자신이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막상 정치에 나섰을 때 막강한 남성들의 파워와 견제를 이겨낼지도 의문이다. 이점은 박근혜 대표나 추미애 선대위장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이 정치의 중심으로 점점 접근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가운데 어느 순간 여성대통령이 나온다는 것도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박근혜나 추미애라는 특정 여성 하나가 ‘얼굴마담’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파워 전반이 정치계에서 자연스럽게 인정받을 때 여성대통령도 나오게 될 것이다. 설사 여성 하나가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실제 모든 정치권력을 남성이 지배한다면 그 역시 별 의미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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