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장성훈 국장] “내 책임이다. 내가 죽인 것이야. 이 조선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자리. 그게 바로 조선의 임금이라는 자리다.”

TV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집현전 학사들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자 세종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는 대사 중 일부다. 실제로 조선시대 나라에 좋은 일이 생기면 신하들은 왕에게 홍복이라며 모든 공을 왕에게 돌렸고, 반면 가뭄이 계속되기라도 하면 왕은 이 모두가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며 자책했다. 잘 해도 자기 탓, 못해도 자기 탓으로 돌렸던 시대였다. 왕이 실질적인 나라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나라에 좋은 일이 생기면 왕을 잘 만나 그렇다고 생각했고, 나쁜 일이 발생하면 왕을 잘못 만나 그렇다고 여겼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우리 국민들은 나라의 주인인 왕이 다스렸던 왕정시대를 잊지 못한 채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에서 한낱 국민의 대리인역할만 하는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다. 무슨 사건만 터지면 대통령부터 찾는다. 그러고는 조금이라도 잘못한 점이 나오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나무란다. 여론조사 기관들도 긴급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의 국정수행평가를 한다. 이럴 경우 대통령 지지도는 우리나라 국민 정서상 대개 떨어지게 된다. 물론 긍정적인 사안에 대한 여론조사도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국민들은 대개 부정적인 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911 테러와 무차별적 총기난사 사건이 터진 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오히려 높아지는 미국과는 너무나 다르다.
문제는 이러한 여론조사가 때로는 결과를 잘못 해석하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신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대구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그 좋은 예다.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못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주민이 39.6%로 나타나 '잘하는 편'(30.1%)보다 9.5%포인트 높았다. '보통'30.3%이었다. 또 다른 여론조사 기관 역시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긍정적으로 본 대구 경북지역 주민은 34%였고 부정적인 반응은 52%였다고 밝혔다. 이들 여론조사 기관은 대구 경북지역 주민들의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는 주 원인을 신공항 건설의 백지화후폭풍으로 분석했다. 새누리당 지지도도 동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왜곡된 분석이다. 한 여론조사의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 이유를 보면, '경제 정책'(18%), '소통 미흡'(14%), '전반적으로 부족하다'(10%, 5%p), '국정 운영이 원활하지 않다'(7%), '공약 실천 미흡/공약에 대한 입장 바뀜'(7%, 4%p), '복지/서민 위한 정책 미흡'(5%), '독선/독단적'(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여론조사 기관이 분석한 신공항 선정 문제는 불과 1%에 불과했다. 1%짜리 이유를 주요 원인으로 왜곡한 것이다. 좋다. 백번 양보하여 신공항 선정 문제경제 정책에 포함시킨다 해도 부정적 이유 제1 순위는 여전히 경제 정책으로 총선 전의 비율과 별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대구 경북지역에서의 지지율 하락의 진실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론조사 질문으로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겠다.
첫째, 박 대통령이 언급한 배신의 정치에 대한 대구 경북지역 주민들의 오해가 그 하나다. ‘배신의 정치하면 사람들은 대개 박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 간의 인간적인 배신감을 연상한다. 박 대통령이 유 의원을 발탁해 대구 지역을 대표할만한 정치인으로 키워주었건만 유 의원은 이른바 비박편에 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정치 하수들이나 할 그 정도의 일로 유 의원을 멀리할 인물은 아니다. 대통령이 말한 배신의 정치의 핵심은 정치적 정체성이다. 이는 새누리당의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공천관리위원회도 언급한 내용이기도 하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가 원내대표 시절 새누리당 안에서 어떤 정치를 해왔는지를. 사정이 이러한데도 대구 경북지역 주민들은 유 의원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대통령이 그를 인간적으로탄압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유 의원 관련 이슈만 터지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대구 경북지역 주민들이 유 의원의 4·13 충선에서의 압승을 대통령의 정치적 탄압에 대한 역풍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선거 과정이나 선거 결과를 냉정하게 살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희대의 코미디극을 연출하며 경쟁자를 공천하지도 않고 새누리당 텃밭에서 새누리당 공천자 없이 선거해서 이겼다는 것 자체가 떳떳하지 않다. 또한 유 의원의 주장대로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이 잘못 됐다면 유 의원 지역구를 제외한 다른 곳 하나라도 자신과 뜻을 같이 한 후보가 당선됐어야 그나마 설득력을 갖게 되건만 실상은 그 누구도 당선하지 못했다.
서청원 의원의 국회의장 양보는 새누리당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명분과 실리를 다 챙긴 통 큰양보를 했다며 극찬했다. 그러나 대구 경북지역 주민들은 서 의원의 이상한 행보에 의문표를 던졌다. 의장직 출마를 피력하지도 않은 데다 한 달여 전에 의장직을 접어야 한다고 밝혔던 그가 느닷없이 왜 의장직 불출마를 선언했느냐는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박 대통령의 원할한 후반기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여당이 국회의장직을 맡았어야 했는데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채 후퇴한 것에 대해 대구 경북지역 주민들은 실망한 것이다. 혹시 적을 만들지 않아야 2년 뒤 후반기 국회 수장 자리에 무혈입성할 수 있을 것이란 속셈은 아닌지 의구심도 드는 대목이다.
공천이 내정되고도 억울하게 공천을 받지 못해 헌법이 보장한 참정권마저 박탈당한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에 대한 당 차원의 사과 한마디 없었던 점과 새누리당이 당선 무효 소송 중에 유승민 의원을 전격 복당시킨 사실에 대구 경북지역 주민들은 분개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당 정체성과도 부합하지 않은 유승민 의원을 살리기 위해 멀쩡한 자당 후보인 이재만 전 청장을 공천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헌정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정치적 탄압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 전 청장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태 발단의 주체인 유 의원의 복당을 위해 은밀히 야합하는 행태를 보이기까지 했다. 청와대도 모르는 사이에 전격적으로 그의 복당을 통과시킨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대구 경북지역 주민들이 이런 새누리당에 실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seantlc@ilyoseoul.co.kr

장성훈 국장  seantlc@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