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장성훈 국장]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술책 가운데 가장 하수로 치는 것이 바로 폭로다. 굴곡 많은 우리 정치사에서도 서로를 비방하기 위한 폭로전은 전가의 보도처럼 그동안 많은 정치인들에 의해 애용(?)돼왔다. 매력적인 폭로를 잘만 활용하면 뜨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사 그 폭로가 사실이 아닐지라도 상대가 입는 데미지를 고려하면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정치인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아니면 말고식 폭로다.

조응천 전 청와대 비서관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을 때 많은 국민들은 우려의 눈초리를 보냈다. 현 정권에 몸담고 있다가 반대에 서게 된 인사의 합류여서 폭로용 영입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조 전 비서관은 2014년 말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배후로 지목돼 기소된 바 있어 더욱 그랬다.
 
문재인 전 대표는 당시 조 전 비서관의 영입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최측근으로 알려진 Y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제안에 따라 질리도록 그를 찾았다. 왜 그랬을까. 청와대와 관련된 정보를 캐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이젠 정권의 내부 상황을 알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국정운영 기조가 아니면 하나씩 터뜨리겠다... ...조응천 당선자와 대화해보니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 기대해도 좋다는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의 말은 조 의원을 청와대 저격수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렇게 영입된 조 전 비서관은 불의한 권력과 잘못된 정치는 우리 모두를 절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절망의 늪에서 우리를 건져낼 수 있는 것도 정치일 수밖에 없다. 현실 정치가 아무리 욕을 먹어도 누군가는 그 진흙탕에 뛰어들어 희망의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이 잘못된 권력을 바로 세우고 국정을 바로 세우고 나라를 바로 가게 하는 길이라 확신한다. 희망을 일구고 싶다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리고 당선됐다. 그는 저격수이미지를 의식한 듯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폭로하고자 나를 영입하려고 했다면 (더민주)에 입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도 옛날 일은 건드리지 않겠다, 언급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과거 청와대 문건유출사건배후로 지목됐을 때 연루 의혹을 받았던 청와대 출신 인사와 박지만 EG 회장 측근 등을 보좌진으로 기용해 그가 박 대통령 측근들과 청와대에 대한 폭로전을 벌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을 때 나도 일 잘해야 할 것 아니냐. 같이 일해본 사람 중에 제일 능력 있고 믿을 만한 사람들을 쓰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조 의원은 또 나는 그 안(청와대)에서 있었던 얘기는 앞으로도 안 할 것이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진행되는 일은 내가 그 안에서 겪은 일이 아닌 한 당연히 얘기하겠지만 제가 나오기 전, 그 안에서 있던 것들과 연관된 것은 얘기 안 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조 의원은 다만, “저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일들은, 제가 그래도 명색이 민의를 대변해야 하니, 그것까지 입 다물고 있어라? 그건 아니지 않느냐제가 근무했던 것과 무관한 건 자유롭게 얘기할 것이다. 그게 무슨 폭로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청와대 관련은 아니지만, 어쨌든 폭로는 폭로였다. 국회 법사위 업무보고를 앞두고 보도자료를 통해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한 위원을 성추행 경력자라고 주장하며 실명과 직위까지 공개한 것이다. 조 의원 입장에서는 나름 야심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사실 확인 결과 허위 폭로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홈런을 친 줄 알았는데 헛스윙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조 의원은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자기를 영입해준 문 전 대표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한 건하려다 되레 양치기소년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조 의원은 이번 사태로 자신이 저격수라는 본색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번 사안이 자신의 공언대로 청와대와는 관계가 없었지만, 앞으로, 특히 내년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저격수로서의 본색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낼 것이 뻔하다.
 
문제는 이번 일로 많은 국민들이 조 의원 폭로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겠느냐 하는 것이다. 아마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양치기 소년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
 
국회의원들, 정말 정신 좀 차리자. 그렇지 않아도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적지 않은 의원들이 가족 채용 논란을 일으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실망시켰는가. 그것도 모자라 허위 폭로까지. “20대 국회는 좀 다르겠지하며 기대했던 국민들이 혹시나했던 마음이 역시나로 바뀌지는 않았는지 걱정이다.
 
의원들의 면책특권을 아예 없애라는 말이 아니다. ‘카더라수준의 폭로는 이제 그만하라는 말이다. 당사자와 국민들이 입을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만 하더라도 그렇다. 조 의원의 무책임한 폭로로 인해 실명과 직위가 공개된 당사자는 치명적인 명예훼손을 당했다. 그런데도 조 의원은 이를 하나의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려는, 그리고 면책특권 뒤로 숨어버리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정 보도 자료를 내 사과한 것으로 사태를 끝내겠다는 그의 발상이 아무리 초선 의원이라 해도 너무나 어이없다. 이러려고 국회의원이 되었는지 조 의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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