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백동수, 불의여신정이, 대박 권순규 드라마 작가 인터뷰

[일요서울 | 박정민 기자] 드라마 ‘대박’은 권력의 정점 옥좌를 놓고 벌이는 권력 투쟁기다. 실록에서는 생후 두 달 만에 죽은 것으로 기록돼 있는 조선 21대 왕 영조의 형인 영수가 살아있다는 가정 하에 재구성된 퓨전 사극이다. 배우 장근석이 조선 최고의 타짜 백대길로 열연해 출신을 모른 채 성장해 훗날 영조, 이인좌, 숙종 등과 함께 권력의 정점인 옥좌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암투를 그렸다. 해당 드라마는 기존 역사에 대한 색다른 시각과 해석, 참신한 소재, 돋보이는 캐릭터 열전과 긴장을 놓지 않는 스토리 전개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권순규 작가는 2011년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무사 백동수로 데뷔했다. 드라마 작가의 입봉작이 미니시리즈인 것도 흔치 않지만 사극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대부분의 경우 기성 작가의 보조 문하생으로 몇 년 수련을 거쳐 공모전에 입상하거나, 입봉 후에도 단막극과 일일 등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는 경우가 많다. 권 작가는 히트 친 드라마 세 편을 필모그라피로 갖고 있다. 사실 대박이라는 드라마의 인물 중 이인좌(전광렬분)라는 인물의 대사 속에 권 작가의 생각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박의 이인좌라는 인물은 숙종으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원수를 갚기 위해 와신상담하고 절치부심하면서 내공을 쌓은, 세상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고 이치에 대한 생각이 날카로우며 복수를 향한 집념과 끊임없는 수련으로 괴물과 같은 내공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 대사를 녹여낸 작가야말로 극중의 이인좌 보다도 날카로운 눈빛과 상대를 꿰뚫어 보는 심안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권 작가는 예상과 달리 굉장히 평범하고 주변에 흔히 지나다니는 아재와 다름이 없어 보였다. 권순규 작가를 만나 드라마와 가치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이나 TV에서 접한 것보다 실물이 나은 것 같다. 원래 드라마 작가가 꿈이었는지, 작가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 보통 뭔가에 꽂히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이고, 경제학과 출신으로 증권회사를 다녔었다. 학창시절에는 작가보다 오히려 기자가 되고 싶었고 대학 때는 전공을 살려 좋은 기업에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숨 쉬고 있었다. 치기어린 시절 모자란 실력으로 몇 번 시도를 한 적도 있었지만, 내 손끝에서 나온 글들을 보면 실망이 컸다. 맘처럼 쉽지가 않아 좌절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글쓰기보다는 대학 생활과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던 중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운이 좋게도 처음 써본 작품이 SBS 소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작가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미르신화전기’라는 판타지 소설이다. 그 이후로도 갈릴레이 죽이기, 일곱 개의 열쇠 같은 장르 소설을 쉼 없이 썼다. 당시에는 일과 글을 병행했었다. 그러던 중 무사 백동수의 이현직 감독이 드라마 극본을 써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고 극본을 쓰게 됐다. 장르가 다를 뿐 글을 쓴다는 맥락은 똑같았지만. 소설과 달리 드라마라는 세계는 호흡도 길고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일과 병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던 일을 접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출연했던 배우들에 대한 작가로서의 생각을 말해 준다면.

▲ 최민수라는 명배우의 긴 연기 인생에서도 왕의 역할은 처음이다. 한데도 극중 숙종의 롤을 최 배우만큼 완벽히 소화해낼 배우는 없다고 생각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최민수라는 배우의 카리스마가 내가 그리려 했던 괴물과 같은 카리스마를 가진 숙종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다. 배우 장근석도 주인공 백대길이라는 역할에 굉장히 열심히 임해줬고 잘 소화했다. 뻘밭, 염전, 심지어 똥통에도 빠지는 배역인데, 그런 연기를 할 때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피하려 할 수도 있고 좀 더 편하게 가려 할 수도 있는데, 핑계 변명 하나 없이 열정적으로 배역을 소화해줬다. 초반엔 야외 촬영이 많아 아마도 두 세 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인데. 존경스럽다. 여진구 배우는 굉장히 차분한 친구다. 목소리가 중저음이라 나이는 어리지만 안정감이 있다. 예전 백동수를 집필할 때 아역으로 출연했던 여진구를 눈여겨봤는데, 그 당시에도 이 배우는 훗날 대배우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실제로 이후에 계속 승승장구하더라. 이번에 처음으로 완전한 성인 연기를 한 것인데 진구야 뭐 워낙 연기를 잘한다. 배우 전광렬도 참으로 위대한 배우라 생각한다. 사실 그간 방영됐던 사극 드라마 중에서 지난 99년도에 방영됐던 허준을 가장 감명 깊게 봤다. 그러니 배우 전광렬과의 인연은 그 드라마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사 백동수에도 김체건의 아들인 김광택으로 출연했는데 기대 이상의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고,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좋은 열연을 펼쳐줬다. 최민수씨와 전광렬씨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갖고 있다. 최민수 씨는 거칠고 카리스마 있고 뭔가 생각지 못했던 행동을 할 것 같은 사람이고, 전광렬씨는 정제되고 절제되고 정석의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면에서 두 사람은 정 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로의 연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인좌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이인좌라는 역사적 인물을 발굴하고 싶었다. 악역이냐 주인공이냐 등의 것들을 떠나서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이인좌의 난은 사실 지워져 버린 기록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20만 명이 거병을 한 역사상 가장 큰 난. 게다가 조선시대에 20만 명이라니, 사농공상이 다 들고 일어나고 선비며 무인이며 관료들까지 합세를 한 어마어마한 난이었는데 왜 기록이 몇 줄 남아 있지 않을까. 그것이 큰 의문이었다.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도 역사가 승자의 기록물이라 왕위에 오른 영조가 자신의 치적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상당 부분 가공하고 지웠을 것이라 여긴다. 역적 이인좌는 패가입진, 즉 ‘가짜왕을 몰아내고 진짜 왕을 세운다’ 라는 슬로건을 걸고 영조를 임금으로 인정치 않았다. 실제로 영조는 생김새가 이전의 왕들과는 조금 다른 면이 많다. 그러니 영조가 숙종의 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도 부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영조의 모친 숙빈 최씨의 존재 자체도 굉장히 미스테리하다. 그녀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병을 얻어 죽었다는 것이 기록의 끝일 정도이니. 대박의 주인공인 대길(가상의 인물)도 실제로 최 숙빈이 낳은 육삭둥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육삭둥이, 그러니까 성은을 입은 지 6개월 만에 낳았다는 것은 실제 실록의 기록에 존재한다. 육삭둥이는 거의 조그만 핏덩이로 태어나는데 그런데 그 육삭둥이가 건강했다고 하니 의심해볼만 한 정황은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인좌라는 인물은 난이 실패한 후 참형을 당했고, 난을 진압한 이들은 공신이 되었으니 역사를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이인좌를 그려낼 수밖에 없었고, 그는 결코 영웅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500년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임은 분명하며, 민중의 개혁가로 재해석해볼만 한 여지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그리고 과거의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서 극 중 이인좌처럼 우리나라를 개혁해 더 좋은 나라로 만들어냈다고 혹은 낼 수 있다고 여기는 인물이 있나.

▲ 이인좌의 삶과 그의 개혁 성향을 놓고 보자면 故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영웅이 지녀야 할 많은 자질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극중 주인공 백대길과도 상당 부분에서 비슷하다고 본다. 사실 많은 국민들이 노무현을 좋아하거나 그리워하는 이유는 흙수저로 태어나 정상에 오른, 오직 자신의 신념과 열정으로 한국 정치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은 감히 평가하기 어렵지만, 인간 노무현은 분명 그런 사람이라 여긴다. 물론 단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대박이라는 드라마는 백대길이라는 (역사에 기반한) 가상의 인물인데 세상을 바꿀만한 인물은 엄청난 시련과 고난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본인이 되돌아 본 삶에 비추어 어떠한지.

▲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지 않고는 영웅이 될 수 없다 믿는다. 작가라는 직업도 비슷하다. 돌이켜보면 공부보다는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고 형이 대학에 낙방하게 되면서 어머니가 우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때 본인이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겠다 다짐했었다. 철부지 였던 소년이 공부를 하게 된 건 효심이지만 그 효심의 시작은 결국 가문의 몰락과 어머니의 눈물, 즉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 결국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가 아물고 치유되는 과정의 연속이 인생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은가. 애초 어미의 고통에서 세상에 나왔으니. 본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가서도 주경야독으로 고군분투했다. 소위 말하는 막노동,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들만 골라 했다. 결국 이 모든 게 생존을 위한 투쟁인데. 지금에 와 돌아보면 벼랑 끝 인생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시대의 아픔을 동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엘리트 가문에서 반 지하 월세살이나 청년 백수의 아픔을 어찌 공감할 수 있겠는가. 결국 인간 삶에 곁가지마냥 피어나는 소소한 깨달음들도 이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는 현실의 극복에서, 상처가 아문 흔적마냥 생기는 것이 아닌가 여긴다.

▲ 작가의 삶에 대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만일 신이 존재하고 신이 내게 생명을 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글을 쓰라는 뜻이라 생각한다. 이것을 그저 믿는 것이 아니라 맹신한다. 글쟁이는 나의 운명이라 여긴다. 이는 신이 내게 준 축복이며 그리고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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