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삶에 지칠 때면 가슴 속에 파도처럼 밀려드는 이름, 여행. 황홀한 풍경과 그림 같은 휴식이 펼쳐진 어딘가, 그곳에 일상의 익숙함과 편리함이 빠진다면 여행은 자칫 고행이 될 수도 있는 법. 그 모든 것이 갖춰진 여행에 품격까지 더해진다면 어떨까. 시애틀에서 누리는 상상체험.

‘씨.애.를’, 시애틀라이트들은 그들의 도시 이름을 말할 때, 아주 또렷하고 힘차게 발음했다. 넘치는 자부심과 자신감,  그리고 자존심이 한데 어우러져 내 귓속에 전해진 탓일까, 시애틀은 여행하는 내내 나로 하여금 낯선 도시의 가치와 품격을 더하게 했다.

시애틀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동안 눈앞에 선보인 풍경은 설렘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살포시 얹어 놓았고 그 풍경 속을 오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삶 속을 여행하고픈, 좀 더 크고 깊은 호기심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 값비싼 감정들은 짐을 풀고 숙소를 나오는 순간부터 마지막 짐을 싸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쉼 없이 이어져 이 도시를 처음 알게 해준 오래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속을 거닐다 온 것 같은 여운으로 남았다.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을 떠도는 시애틀에서의 나날들이 그립다.

시애틀에 대한 동경

뜻밖에도 시애틀은 아담한 도시였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보잉과 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본부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을 만큼, 시애틀 시내는 여유롭고 아기자기했다.

‘바르다’라는 표현마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도시의 분위기 속에서 거리거리를 걷는 순간은 산책이 돼버렸고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 식사는 휴가지에서의 황홀한 낭만을 맛보는 시간으로 기록됐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연스레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나 스스로에게 전하는 속삭임은 그렇게 ‘동경’이란 이름으로 남았다.

<Tip 시내 이동은 모노레일로>
시애틀 센터 모노레일은 미국 최초의 상업용 모노레일 시스템으로 매일 시애틀 센터에서 시애틀 다운타운까지 단 두 곳 정거장 사이만을 오가며 가장 빠른 여행을 선사한다. 시애틀 센터역은 스페이스니들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운타운에서는 백화점 등이 몰려 있는 5번가의 웨스트레이크 센터에서 모노레일을 탈 수 있다. 매 10분마다 출발.

레이크 유니온

시애틀은 도시 한가운데에 커다란 호수 하나를 품었다. 마치 잠자는 아기를 바라보기라도 하듯 도시는 포근한 얼굴로 호수를 감싸고 있다.

그 풍경 속에서 인자

한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려 하는 순간, 레이크 유니온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시애틀 여행자에게 손짓을 한다. 요트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호수의 풍경을 창 밖으로 감상하며 칵테일 한 잔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은 요트라는 이름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럼에도 요트의 화려함은 호수의 평온함과 그 호수를 감싸고 있는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보금자리로 조금은 외면당하고 있었다.

조정 경기가 열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팀을 이뤄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모습, 물 위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잃지 않는 이곳 사람들의 안식처들, 호수의 어느 다리 위에 말없이 떠있는 작은 구름들,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자꾸만 찾아보게 되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 나왔던 명소들과 어느 유명인의 요트까지. 호수 위에 시애틀의 역사가 스며 있고 그네들의 삶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호수를 즐기며 살아가는 시애틀라이트의 멋과 낭만이 일렁이는 곳. 다시 여행의 순간으로 돌아가 막 시애틀에 첫 발을 디딘다면, 지금 바로 달려가고 싶은 곳, 레이크 유니온.

<Tip 크루즈 투어>

시애틀의 명소인 레이크 유니온과 레이크 워싱턴, 그리고 퓨젓 사운드 등을 특별하게 돌아보려면 크루즈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 시애틀의 아름다운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달콤한 시간은 가족, 연인, 친구 등 어느 누구와 함께해도 좋다. 워터웨이크루즈 등의 에이전시에서 다이닝 크루즈, 맞춤형 이벤트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언젠가 스타벅스라는 유명 커피 기업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알게 된 이름이 있었다. 시애틀의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스타벅스가 이곳에서 탄생됐다는 사실 때문에 좀 더 관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파이크 플레이스에 여행자들이 넘쳐나는 건,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유명한 오래된 파머스 마켓이 있고,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하고 활기 넘치는 생선가게와 그곳의 상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들이 보고 싶어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으로 향했다.

시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거리에서 ‘퍼블릭 마켓 센터(PUBLIC MARKET CENTER)’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을 찾았고 그 곳이 찾고 있던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이라는 사실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켓 입구의 시애틀관광청 안내소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찾아보고 있을 때, 근방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켓 입구에 있는 생선가게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이미 구경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가게의 상인들이 호객하는 모습과 생선을 서로 던지고 받는 모습들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리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어 보이는 생선가게가 세계적으로 유명 여행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상인들의 재미있는 퍼포먼스와 입담 때문이었다.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에서 찾아냈다.

<info> 스타벅스 1호점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찾는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탄생한 곳이 바로 파이크 플레이스마켓이다. 1971년 제리 볼드윈, 제브 시글, 고든 바우커 세 명의 동업자에 의해 탄생한 이곳은 요즘 시애틀을 찾아온 수많은 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첫 번째 스타벅스라는 로고가 새겨진 머그 등의 기념품도 판매하며 문 앞에서 벌어지는 거리 음악가의 공연도 볼 수 있다.

스페이스 니들

시애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는 얼마나 될까? 시애틀에게 이미 마음을 빼앗겼음을 알게 됐을 때, 문득 떠오른 궁금증이었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시애틀의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곳에 어린 아이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정답, ‘스페이스 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총 180미터의 높이에 꼭대기 부분이 마치 UFO를 닮은 스페이스 니들의 전망대는 160미터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1960년 시애틀 세계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스페이스 니들의 전망대에 올라가는 건, 시애틀을 두 눈에 좀 더 또렷하게 담고 또 잘 이해하기 위한 필수 코스.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360도 둥근 원형으로 지어진 전망대 안은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서로의 피부 색깔은 다르지만 즐겁게 웃고 있는 얼굴 표정은 모두 같아 이곳이 진짜 시애틀의 랜드마크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전망대는 다행스럽게도 외부 출입이 가능해 시애틀의 바람을 맞으며 동그랗게 한 바퀴를 돌아봤다.

마음속에 흐릿하게 그려지고 있던 도시의 그림이 조금씩 완성돼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자 어느새 시애틀이 내 맘 속에 모두 들어와 있었다.

<info> 스페이스 니들에서는 시애틀의 스카이라인과 퓨젓 사운드, 캐스케이드 산맥, 올림픽 산맥, 마운틴 레이니어의 경치를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 아래에 있는 스카이시티 레스토랑은 매 시간 회전하며, 태평양 북서부의 요리를 즐기며 황홀 그 자체의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퀸앤힐의 케리파크와 함께 시애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셋 스폿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모노레일 시애틀센터 역에서 도보 5 분 거리에 있다.

치훌리가든 앤 글래스

스페이스 니들에서 나와 바로 앞에 위치한 치훌리 가든 앤 글래스로 자리를 옮겼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유리공예의 향연은 조금 전 두 눈에 담았던 시애틀의 아름다움을 잠시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시애틀에 머물고 있는 유리 조형의 거장 데일 치훌리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 이 공간들은 솜씨 좋은 마법사들이 모여 마치 마법 경연대회라도 펼쳐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오묘하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가득했다. 때로는 유명 박물관에 전시된 고귀한 보물을 마주하는 것 같기도 했고 너무나 섬세하고 세밀한 표현력에 작품들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기분도 종종 찾아들었다.

유리공예가 아닌, 유리건축이라는 말이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그곳, 예상치 못 했던 미지의 세계가 시애틀의 문화적 위상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다.

<info> 데일 치훌리 시애틀이 속해 있는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 출신의 세계적인 유리 조형 예술의 거장. 유리공예를 공업이 아닌 순수미술의 단계로 끌어올려 유리 조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나는 스스로를 미술가라고 부른다. 그것보다 내게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다’라는 말로 유명하기도 한 데일 치훌리의 작품은 전 세계 200개 이상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그는 현재 시애틀을 본거지로 삼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EMP(Experience Music Project) 박물관

스페이스 니들 주변에 모여 있는 여행지들 중,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EMP 박물관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록, 재즈, 그런지 등과 같은 모든 장르의 미국 대중음악들을 경험 할 수 있는 EMP 박물관은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 더욱 기대되는 곳이기도 했다.

   
   
 

학창시절 유명 밴드 너바나(Nirvana)의 광팬이기도 했기에 그들이 실제 사용했던 악기와 의상 그리고 앨범과 영상 등이 전시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은 절대 놓칠 수 없는 아이템이었던 셈.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음울한 표정을 오랜만에 마주한 순간, 가슴 속에 피어나는 먹먹함과 반가움은 이곳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감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그의 굵직한 목소리가 토해내는 격정적인 음악에 이제는 다시 나에게 없을 것만 같았던 추억 속의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info 시내 여행의 동반자, 시애틀  시티패스>

시애틀의 모든 명소를 다 둘러보고 싶은 관광객들이 비용을 생각한다면 시애틀 시티패스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 이 시티패스는 스페이스 니들, 시애틀 아쿠아리움, 아고시 크루즈 하버 투어, EMP 박물관 또는 우드랜드 파크 동물원 중 하나, 치훌리 가든 앤 글래스 또는 퍼시픽 사이언스 센터 중 하나의 입장권이 포함돼 있다. 각각의 어트렉션을 따로 이용하는 것에 비해 약 50%정도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사실. 시티패스 웹사이트에서 구매 가능하며 어른 $74에 판매한다.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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