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새누리당 불협화음의 단초가 된 건 친박계 핵심을 자처한 윤상현 의원의 막말 녹음파일 폭로 파문이었다. 당 수뇌부에서 공천 배제, 출당은 물론 정계은퇴까지 요구하는 마당이었다. 폭로된 녹취록에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김무성 당시 대표를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발언도 있었다. 윤 의원은 막말발언이 알려진 직후 곧바로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해명에 나섰다.

“있지도 않은 공천살생부 발언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알려져 취중에 격분한 상태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던 중 잘못된 말을 한 것 같다”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김 대표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싸늘한 당내 분위기에 그는 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공천 배제가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윤 의원은 “다시 인정받겠다”며 무소속 출마를 결행했다. 결과는 막말파문과 관계없이 압도적인 당선으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화려한 생환이었다. 그리고 큰 우여곡절 없이 복당에도 성공했다. 무소속 당선 직후 그의 당선 소감은 “20대 국회는 일하는 국회가 돼야한다”며 “생산적인 국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복당 후의 복귀식에서 그는 다른 복당의원들과 달리 30초도 채 안 되는 인사말을 한 뒤 조심 또 조심하며 극도로 몸을 사렸다. 당내 현안에 대한 언급은 물론 언론과의 접촉도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중에 최근 또 폭로된 김성회 녹취록 파문에 그가 휩싸였다. 다시 녹취록 폭로 파장에 휘말린 윤 의원도 윤 의원이지만 한국정치가 어쩌다가 이처럼 비열하고 천해졌는지 모르겠다.

군사정권 때의 공작정치는 차라리 깨끗한 측면이 있었다. 회유하고 압박하는 수단으로 변절을 유도해 소위 사쿠라로 불린 지조 없는 변절 정치인의 정치생명을 단축시킨 사례가 적지 않다. 역설적으로는 그러한 변절 인사들이 소신 있는 정치인의 선명성을 부각시킨 기여도 덕분에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긴 측면이 강하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그렇게 피 흘려 이룬 성과물이 87년 6월 민주화선언에 이은 93년 문민정부 출범이었음을 모르지 않는 터다. 이로부터 23년이 흐른 세월동안 민주주의를 만개 시킨 우리 정치판 모양은 더 설명할 필요 없이 ‘국회무용론’을 초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어지간히 뻔뻔하지 않고서는 정치한다는 말조차 꺼내기 부끄러운 나라가 돼버렸다.

단물 다 빨아 먹었다 싶으면 ‘형, 아우’ 하는 만만한 사이에 허물없이 주고받은 통화 내용을 녹음해 녹취록 파일로 저장했다가 결정적일 때 터뜨려 온 정치판을 흔들어 놓는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조폭세계에서도 이런 양아치 짓은 하지 않을 게다. 과거 군사정권의 공작정치는 타깃이 된 정치인을 국민 모르게 회유하고 협박하는 방법으로 변절을 강요하는 수법이었다. 협박에는 털이식으로 수집한 약점을 들이대며 ‘죽을래, 살래’하는 방식과 가족 등의 신변을 위협해 겁주는 수단이 동원됐고, 회유에는 물론 돈과 자리보장이 무기가 됐다.

그것이 과거 정보정치의 공작 실체였다. 그런데 오늘의 공작정치는 여론을 담보로 한 녹취록 폭로나 증권가 찌라시를 이용한 흠집 내기 같은 아주 치졸하고 비열한 형태다. 이런 것들이 민주정치의 산물이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 것이 아니라 더러운 오물을 마시며 추한 성장을 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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