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블로그>는 여행을 통한 세 남자의 성장담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내용 속에서 여행이 주는 낯섦, 이국적 질감은 잘 표현됐을까. <유럽블로그>는 연극적 자유로움과 여행의 자유로움을 만족스럽게 섞은 듯이 보인다. 분주한 수다, 유머, 몸 개그는 차분한 독백과 아름다운 풍경 사이사이로 흘러간다. 이 같은 가벼움과 진지함의 반복은 여행에서 마주하는 것에 대한 태도를 일러준다. 특히, 자기 성찰과 진중한 시선을 견지하는 여행의 방식 또한 그 테두리 안에서만 감정적 고양과 치유를 안겨줄 뿐 그게 여행 전부는 아니라는 것은 <유럽블로그>를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사실이다.
종일, 동욱, 석호중에서 관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인물은 재충전을 위해 대기업을 관두고 떠난 동욱으로, 계획을 빽빽하게 세우고 사진을 남기고 ‘여기 언제 또 오겠어’를 내뱉는 인물이다. 동욱은 여행에서조차 평소 틀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목표를 잡고 뭔가를 쥐고선 놓지 않고 돌발적이고도 즉흥적인 상황을 여행자로서 마주하기보다는 경계하고 일종의 장애물로 치부한다. 그러나 7년 차 여행 예찬자 종일과 헤어진 사랑을 위해 여행 아닌 여행을 온 석호를 통해 동욱은 변하고 이는 작품의 메시지가 된다.
혼자 떠날 때 느끼는 침묵, 풍경의 냄새와 소리는 여행이 주는 선물이지만 그 이외의 것을 모두 ‘소음’으로 여기는 태도는 ‘계획 속에서만 움직이는 여행’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유럽블로그>에서 비춰지는 여행의 추는 가벼움과 진지함이 운동처럼 반복된다. 단순히 코믹 극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여행 뒤에 남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은 순간의 편안함과 안정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사람은 오히려 여행에서 만나야 하고 계획은 무계획으로, 진중함은 경박함으로, 눈부신 풍경과 벅차오르는 감동은 짜증, 실없는 수다, 농담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 <유럽블로그>의 이 같은 흐름은 떠나고 싶은 자극을 주고 무엇보다 자유로워 보인다.
이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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