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청탁방지법) 위헌 논란이 헌재 합헌 결정으로 종지부를 찍었으나 문제점 논란은 더 뜨겁다. 김영란법이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근절키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하는 바다. 하지만 적용 대상기관이 4만개에 이르고 배우자까지 포함해 사실상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실정법이 윤리와 도덕의 최대한을 요구하는 형태엔 문제가 있다.

혼란과 부작용이 불 보듯 하다. 내수 위축 등 경제에 미칠 후폭풍도 걱정스러우나 유명무실해진 접대비 실명제처럼 법망을 빠져나가는 온갖 꼼수들이 판칠 게 뻔하다. 특히 막판에 언론이 포함되어 권력의 언론 통제에 악용될 소지 또한 크다. 수사기관의 자의적 법집행을 통한 언론 길들이기를 방지할 강구책이 없다.
당초 원안에 들어있던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 조항은 국회가 눈에 불을 켜고 빼버렸다. 국회의원 등 공직자가 4촌 이내 친족과 관련된 직무를 맡지 못하도록 하고 가족의 정부기관 특채를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여야 짝짜꿍으로 통째 삭제한 것이다. 명분이 아주 가관이다. 자기들에겐 정치자금법이 있어 이중적 법 제재가 된다는 논리였다.

현행 정치자금법이 적용되는 정치자금에는 당비, 후원금, 기탁금, 보조금, 정당의 부대수입 등이 있다. 그 밖에 정치활동을 위해 정당, 공직선거에 의하여 당선된 사람, 공직선거의 후보자 또는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 후원회, 정당의 간부와 유급사무직원을 포함한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제공되는 금전이나 정치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이 들어있다.

이런 정치자금법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것이다. 명절 때마다 의원회관에 산더미처럼 쌓인 고가의 택배 선물 꾸러미를 언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봤던 적이 있었던가. 여야 국회의원들이 어쩌면 김영란법에서는 그처럼 뻥 뚫리게 소통을 잘 이뤘는지 가소롭다는 표현이 이럴 때 필요할 것 같다.

지금 대기업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오는 9월 28일 이후의 골프 약속도 모두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공무원, 공기업, 언론사 직원들을 만나 골프 접대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김영란법이 이를 금지했다. 정치자금법엔 이런 금지조항이 없다. 국회의원을 필두로 선출직 공직자들, 정당, 시민단체 관계자들 앞으로 골프장 널널해서 좋겠다.

한편으론 김영란법 적용대상 국가 기관 4만에도 못 끼는 그들 처지가 꼭 정치인들에게 넌더리 내는 민심과 부합하는 듯해 보이기도 해서 실소가 절로 나온다. 법을 만드는 취지가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세부사항이 잘못되면 큰 혼란을 부르고 자칫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를 범할 수 있다.

합법과 불법 사이를 위태롭게 오갈 수많은 국민들을 생각 않는 정치는 정치 불신을 더 깊게 할 것이다. 법 시행 이전에 심도있게 보완책 논의를 해야 한다. 심의 과정에 반드시 국회의원이나 선출직 고위 공직자의 자녀와 친척 취업 청탁 등을 막기 위한 ‘이해충돌 방지 조항’부터 되살려 놓아야 한다.

우리는 지난 시대 고도의 압축 성장을 이루면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희생해온 게 사실이다. 그 결과가 사회 전반의 부패를 키운 것을 부인할 수 없는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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