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장성훈 국장]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한창 주가를 올리는 등 한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 필자는 미국에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미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말춤을 춰가며 친근감을 표시하던 바로 그 때였다. 직장에서의 인기 역시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한국인이란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들은 단지 필자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이 부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한국의 무엇이 그리 부러웠을까. 싸이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을 수 있다. 싸이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류 열풍 덕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류 스타들에게 역시 무엇으로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그런데 말이다. 정작 그들이 필자를 부러워한 이유는 한국이라는 브랜드 때문이었다. 그들은 놀랍게도 한국에 대해 필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면에서만 그랬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 남의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아야만 했던 나라에서 남의 나라를 원조해주고 있는 나라,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게 만드는 IT강국. 좀 과장해서 말하면, 그들은 한국을 신흥 선진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특히 한국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랬다.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쁜 점도 많은데 말이다. 이렇듯 외국에서 한국은 이미 잘 사는 나라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얼마 전 미국에서 온 한 지인을 만났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이른바 코리안-아메리칸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그는 내국인이 들으면 자칫 오해할 수도 있는 말을 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인은 그들이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가 그렇게 단언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생활이 너무 편해졌다는 게 첫째 이유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IT 강국답게 전자 기기의 발달로 모든 것이 편리해졌다는 말이다. 일일이 주차권을 뺄 필요도 없이 자동 인증시스템으로 편하게 주차할 수 있음은 물론, 교통카드 하나로 지하철과 버스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손가락 하나로 집이든 사무실이든 열고 닫을 수 있고 자동차 시동도 켜고 끌 수 있다.
그가 가장 크게 놀란 것은 그가 방문한 거의 모든 집에 비데가 설치되어 있고 심지어 공중 화장실에조차 비데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 미국에서는 부유층 집에서만 비데가 설치되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가 묵은 호텔 화장실에는 생애 처음 보는 최첨단 비데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인터넷은 또 어떤가. 초고속에다 언제 어디서든 와이파이가 터져 지하철은 물론이고 지하실, 산에서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원격조정을 이용, 전기를 켜고 끄거나 전기밥통과 에어컨디셔너도 마음대로 켜고 끌 수 있다. 거의 모든 차량에는 블랙박스가 장착되어 있다.
버스정류장에 가면 친절하게도 다음 차량 도착시간을 스크린에 표시해주거나 음성으로 알려주기까지 한다. 집에서는 400여 개의 위성 TV 채널이 있어 골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건강보험은 또 어떤가. 미국에 비해 10배나 싼 보험료에 그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한 달 렌트비로 200만 원에서 300만 원을 그냥 날려버리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전세 또는 반전세 제도가 있어 세입자들이 그리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융자대출이자 역시 2% 밖에 되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직장생활은 또 어떤가. 정년이 보장되어 있는 게 너무 부럽단다. 미국은 치열한 경쟁사회여서 직장에서도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한다. 실력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구조라는 말이다.
그의 한국비어천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금이 없어도 신용카드로 택시를 탈 수 있고, 식료품, 세탁물, 심지어 맥도날드까지 배달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 푼의 팁도 주지 않고서, 식당에서도 팁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음식 값의 20%를 팁으로 내야 하는 미국에 비해 얼마나 좋으냐며 감탄한다.
그렇게 한국찬가를 불러대던 그가 갑자기 한숨을 내쉰다. 2개월의 체류가 끝나고 곧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 미국에서는 이런 편리함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필자에게 묻는다. “그런데 왜 정작 한국인들은 불행하다고 말하면서 온갖 불만을 늘어놓느냐?” “왜 한국이 헬 조선이냐?”
그의 질문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분명 그는 우리나라의 긍정적인 면만 보고 그렇게 말했으리라. 그러나 우리나라에 어디 좋은 점만 있겠는가. 부정적인 면도 많지 않은가. 청년실업률은 증가하고 있고, 자살률은 세계적이고, 업무량도 세계적이고, 미세먼지도 세계적이다. 더욱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들 생각한다. 속으로는 ‘1년만 살아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질문 속에는 한국인을 향한 조언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 너희들은 왜 맨날 너희보다 나은 사람 또는 나은 나라와 비교하려 하는가?” “왜 너희들은 현재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려 하지 않는가?” “왜 너희들은 너희보다 못한 사람 또는 못한 나라와는 비교하지 않는가?”
사회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본성은 경쟁이고, 그 덕분에 인류는 발전해왔다며 나보다 더 나은 사람 또는 나은 나라와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 물어보자. 그래서, 인류가 발전했다고 해서, 인류가 발전하지 않았던 때보다 우리 인간이 더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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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훈 기자  seantlc@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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