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를 찾아서… 튀김 고수 김설문 선생

[일요서울 | 박정민 기자] 북창동에 있는 한 작고 허름한 일식집을 찾았다. 원래 맛집은 규모도 작고 허름하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기자가 찾아간 김설문 일식의 김설문 선생은 ‘튀김의 전설’이라 불린다. 튀김만 자그마치 50년을 이어왔다. SBS ‘생활의 달인’에 출연한 것은 물론이고 각종 언론에서 그를 ‘숨은 고수’라 칭한다. 70년대에는 5년 간 해표 식용유의 광고 모델로 활동했다. 요즘은 스타 셰프가 많지만 당시만 해도 요리사로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김설문 선생은 원조 스타 셰프라 할 수 있다.

 

튀김은 가정집에서도 흔히들 해 먹는 음식 중 하나다. 그러나 간단하진 않지만 누구나 할 수는 있는 튀김이라는 요리도 온도와 속도, 재료의 묽기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김설문 선생은 아이스크림 튀김을 개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어떻게 아이스크림으로 튀김을 만들 생각을 했지?’, ‘그게 가능한가?’, ‘맛은 어떨까?’ 라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 튀김은 모 패스트푸드점인 대기업에서도 출시됐다.

아이스크림 튀김 개발자이기 때문에 특허를 낸다면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법을 공개할 생각도 전혀 없단다. 특유의 무소유 의식과 함께 은근한 고집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소박한 꿈에서 시작

김설문 선생이 튀김을 시작하게 된 것은 어떤 원대한 꿈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고 못 먹고 못 입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튀김이라는 한 길만 정해서 성실하게 일하다 보니 또 그렇게 인정을 받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설문 사장은 그렇게 ‘튀김’이라는 한 길만 팠고 예전에 꽤 명성을 날렸다고 하는 서린호텔에 들어가 일식 조리장으로 25년을 근무했다. 서린호텔은 5공 시절 정부 고위 관료들이나 지역 유지, 일본인 등이 일부러 예약해서 찾던 호텔 중 하나였다고 한다.

김설문 선생이 만든 튀김이 유명해지자 다른 호텔에서도 그를 스카우트 하기 위해서 러브콜을 보내왔다.

“신라호텔에서 급여나 지위 등 파격적인 조건으로 저를 스카우트 하려고 했죠. 당시 그곳으로 옮기지 못했던 건 다른 이유는 아니고, 서린호텔 사장이 ‘인생에 돈이 전부냐, 돈으로 어찌 인생을 살 수 있겠느냐’며 신라호텔로 출근하지 못하게 붙들고 있었던 것이 그냥 계속 거기 있게 된 거예요. 그렇게 세월이 흐른 거죠.”

 

독립 후 그는 ‘서린’이라는 일식집을 차리게 된다. 서린은 압구정, 청담동 등지에서 250평 규모에 28명의 직원들을 고용해 운영할 만큼 규모가 컸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유명한 일식집 중 하나였고 김설문 사장은 인기에 힘입어 식용유 CF까지 찍게 된다.

또한 일본 후지 TV에서 한국인삼 광고도 찍었다. 이곳에서 인삼 튀김을 맛본 일본 후지 TV관계자의 추천이 있었다. 그의 광고 출연료는 600만원. 그 때 돈 600만원이면 아파트 세 채를 살 수 있는 큰 돈이었다고 하니 당시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비움의 미학

그러던 어느 날 김설문 선생은 돌연 잘 나가던 강남 일식집을 모두 팔아버린다. 어떤 이유가 그의 심경 변화를 야기했을까.

“식당을 운영하던 어느 날 제 아내가 암이라는 큰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의사가 두 달이 남았다고 정리를 하라고 하니, 이거 뭐 돈 잘 버는 가게가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 전부터 한 사업가가 금액을 높게 쳐줄 테니 가게를 팔라고 계속 날 설득했었는데 팔지 않고 있다가 아내의 병 사실을 알고 난 후 헐값에 팔아버렸어요. 두 달 남았다는 아내와 함께 하기 위해서죠. 죽음 앞에 돈이고 명성이고 다 무슨 소용입니까.”

김 선생의 아내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엄청난 의지로 신앙생활에 매진했다. 매일 같이 새벽 기도를 가고 생약, 생식 등 식이요법을 병행했다. 마치 기적처럼 병이 낫기 시작했다. 진료했던 의사가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고 이해가 가지도 않는다고 했다. 현재는 일반인 못지않게 건강한 상태다.

김설문 선생은 그 이후에 돈이나 성공에 대한 욕심을 모두 버렸다고 한다.

“아무리 부자로 살고 주위에서 인정을 해 줘도 내가 아프고 죽을병에 걸리면 다 끝나는 거잖아요. 그런 일을 겪은 이후로 그런 것이 다 소용이 없다, 헛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저 찾아오시는 손님들을 최선을 다해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튀김으로 맺은 인연

50년이나 요리사로서 고객들을 만났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간접적으로나마 인연을 맺었을까. 김설문 선생은 고객으로 오는 많은 사람들과 간접 인연을 맺고 있다고 생각하며, 요리사와 고객의 만남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최호진 경제학 박사가 기억에 남아요. 그 분이 86세에 돌아가셨는데 일본 동경대를 나와서 일본에도 오래 사셨고 중앙대, 연세대 등에서 교편을 잡으셨죠. 그 분이 3일에 한 번꼴로 와서 튀김을 드시고 갈 정도로 정말 자주 오셨어요. 그 분이 지병으로 별세하기 전, 입원해 계셨던 병원에도 여러 번 찾아뵙고 어떻게 하다 보니 임종까지 제가 지키게 됐죠. 튀김으로 맺어진 인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욕심 없이 산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의 말 속에 그 어떤 순간에도 욕심이라는 것이 묻어나지 않았다.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웃으면서 말하는 그 말 속에도 욕심의 기운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계획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계획이요? 없어요. 그냥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계획 이에요”라고 짧게 답했다.

조용히 살고 있는 선생을 어떻게 알았는지 방송국이고 언론에서 숨은 대가, 숨은 장인이라고 찾아내서 취재를 해 갔다. 최근 몇 년 사이 요리 프로가 인기를 얻으면서 방송 출연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김설문 선생은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회색 바지에 흰색 와이셔츠. 디자인과 색상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의상이다. 그러나 그는 초야에 숨어 있는 고수다. 원래 고수들은 티를 내지 않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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