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호남출신 당 대표를 탄생시킨 새누리당이 어제까지 이 땅 모두에게 영남당으로 불려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이 나라 정치의 지각변동은 영·호남당의 각축에 의한 산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반백년이 넘도록 영·호남의 지역갈등이 악령처럼 존재해 왔다. 이러한 지역감정을 결단코 지역민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몰표를 얻자면 지역감정에 매달려야 한다는 정치공학에 의해 양쪽 지역민들이 부추김 당하고 선동 당한 망국적 부산물이었다. 영남이 뭉쳐야 하고, 호남이 뭉쳐야 한다는 이따위 수식어가 어떻게 그 지역민들에 의한 것이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선거 때 실컷 지역갈등을 조장시켜 놓은 사람들이 지역감정 타파 주장은 또 앞장서서 한다.

이런 꼬락서니를 보다 못한 영·호남 지역민들의 민심 혁명이 지난 4.13 총선을 시작으로 불붙기 시작해서 이번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맞이해 절정을 나타냈다. 총선 이전까지는 그 누구도 새누리당에서 호남출신 당 대표가 선출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게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였다. 그런데 전라남도출신 이정현을 영남당이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이를 이변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분명히 역사의 변혁이 일어났는데도 생각만큼 크게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이미 영·호남 지역에 격하게 일고 있는 민심 변화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판 싸움에 몸서리치는 심리가 이정현을 통해 얻고자 한 건 ‘평정(平定)’의 가치였다.

제 살 뜯는 새누리당 집안싸움을 진정시키고, 피곤한 야권의 호남 중심 선명성 경쟁을 무디게 할 방편으로 특히 영남민심이 이정현 카드를 집어든 것이다. 결과는 해묵은 지역정서를 뛰어넘는 가시적 효과를 나타내며 정국을 안정시킬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그뿐 아니다. 새누리당이 명실공히 전국정당의 면모를 갖추는 염원의 성과를 맞이했다.

이로 해서 더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 더 이상 호남민심을 볼모로 할 수 없게 됐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진입을 지켜본 호남 유권자들이 “세상에 이런 일이…”를 외칠 만큼 환호했다고 한다. 왜 안 그랬겠나. 반세기 훨씬 지난 보수정당사에 첫 호남출신 대표 등단이었다. 그것도 집단지도체제를 단일지도체제로 바꾼 당헌 개정으로 어느 때보다 강력한 당권을 움켜잡은 대표 출현이다. 호남 유권자들의 감회가 이만저만하지 않았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영남당으로 일컫는 보수정당에 호남출신의 말단 사무처 직원이 ‘흙수저’의 고난을 딛고 당 최고직의 정점에까지 이른 성공신화는 호남 민심을 출렁이게 하기에 모자람 없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내년 연말 대선에 끼칠 영향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이 새누리당을 반대하는 호남 유권자들을 자극해 반사이익을 도모한 게 사실이다.

그런 호남민심이 이제 야권의 그 같은 볼모잡이를 거부하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신임 이정현 대표가 호언한데로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20% 득표를 한다면 새누리당은 또 한 번의 정권재창출을 이룰 수 있어 보인다. 지난 대선 때 호남에서 문재인 후보가 89.42%를 휩쓴 반면 박근혜 후보는 10.58%에 머물렀다. 이 9:1에 가까운 상황이 이정현 대표의 호남 챙기기 전략으로 무너질 수 있는 여건이 됐다는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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