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러시아가 긴장 높이자 군에 전투태세 발령
푸틴은 올림픽에 즈음해 도발해 온 전력이 있어 주목돼

 

▲ <뉴시스>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크림반도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러시아는 지난 11일 흑해에서 해군 기동훈련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는 이에 맞서 군에 전투태세를 발령했다.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측에 자제를 촉구했다. 하루 전인 10일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우크라이나 공작원들이 크림반도에서 벌이려던 일련의 공격행위를 좌절시켰다고 발표했다. FSB의 발표가 나온 지 몇 분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친(親)서방 우크라이나 정부가 평화가 아니라 테러를 선택했다고 비난했다.

이런 러시아의 움직임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親)러시아 분리주의자들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무력분쟁의 판을 러시아가 키울 작정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엘리자베스 트뤼도 미 국무부 대변인은 가뜩이나 “매우 위험한 상황”을 악화시킬 어떤 행동도 피하라고 촉구했다.

자유유럽방송(RFE)에 따르면, 그녀는 “우리는 이것을 놓고 국제적 동반자들과 긴밀한 접촉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지금이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수사(修辭)를 줄이고 대화로 복귀할 때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의 일부이며 국제사회에서 그와 같이 인정받는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 방침을 다시금 천명한 것이다.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힘에 의한 현상변경’으로 보고 이를 일절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앞서 지오프리 프얏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는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에서 “테러”를 모의했으며 최근 공격자들과의 충돌 과정에서 러시아 보안요원 2명이 살해됐다는 러시아 측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증거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자신의 불법 행동으로부터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자주 우크라이나에 대해 거짓 주장을 일삼아온 기록을 러시아는 갖고 있다”고 RFE에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요청에 따라 유엔안보리는 크림반도의 긴장고조를 놓고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회의 후 볼로디미르 옐첸코 유엔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러시아가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4만 명 이상의 병력을 집결시켰다고 말했다. 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안보리 회의가 상황을 설명하는 데 “유용했다”면서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우리 군대의 수를 셀 것이 아니라 그들은 동부 우크라이나의 분쟁을 종식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푸틴 그리고 여러 서방 지도자들과 직접 대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2014년 봄 서방의 반대를 무릅쓰고 ‘주민투표’라는 형식을 통해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반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크렘린의 의중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푸틴이 크림반도를 유린하기 위해 러시아 특전사 병사들을 위장시켜 파견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군사공세의 가능성이 뚜렷해지고 있다. 크림반도 의회는 우크라이나가 이미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개시했다고 말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주장하는 크림반도 내 소요 기도는 FSB가 지어낸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크림반도 위기는 불쑥 불거졌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는 여느 때처럼 친(親)러시아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사이에 일상적인 충돌이 이어져오고 있으며 이는 최근 몇 주간 가열되었다. 하지만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남부의 케르손 주(州)를 가르는 페레코프 지협(地峽)은 평온을 유지해왔다. 이곳에서는 심지어 푸틴이 크림반도를 집어삼키던 2014년에도 아무런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것이 러시아가 다시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연결된다고 영국 가디언 신문은 지적한다. 이런 의심을 품는 사람들의 선두에는 칼 빌트 스웨덴 전 총리가 있다.

8월에 관한 한 푸틴에게는 공식이 있다. 그가 이전에 단행했던 침략들은 올림픽과 동시에 있었다. 올림픽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온통 쏠리는 세계적인 행사다. 그런데 푸틴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뒤 그루지야를 침공했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뒤에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그런데 올해 여름에는 다른 호조건이 있다. 대통령 선거가 미국을 온통 마비시키고 있는 데다,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당선되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인정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그런가 하면 유럽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의 후유증,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난민 위기 때문에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별 힘을 들이지 않고 크림반도를 차지한 것으로 보였다. 러시아 작가 레오니드 카가노프가 말했듯이, 하지만 그것은 값비싼 전화기를 훔치면서 충전기를 빼먹은 것과 같은 일이었다. 한때 반도였던 크림은 이제 사실상 섬이다. 푸틴은 케르치 해협에 다리를 놓아 크림을 러시아 본토와 연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는 그 일을 죽마고우인 아르카디 로텐베르크에게 맡겼다.

그런데 그 다리 건설 작업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그런 가운데 대부분이 여전히 러시아 지지자인 크림반도 주민은 정전을 비롯해 온갖 수모를 당해 왔다.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의 활동가들이 크림반도로 연결되는 에너지 파이프라인을 폭파해 크림반도를 어둠 속에 빠뜨렸다. 사람들은 촛불을 켠 채 저녁식사를 했고, 공장은 가동을 멈췄으며, 처음 며칠간은 심지어 교통 신호등마저 꺼졌다. 크림반도의 물 공급 또한 취약하다. 이곳은 물을 전량 북쪽의 운하를 통해 끌어다 쓰는데 그 운하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현 시점에서 가능한 시나리오는 3가지다. 하나는 푸틴이 현재 조성된 위기상황을 지렛대로 삼아 유럽연합을 설득해 우크라이나 분쟁 때문에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가한 제재를 풀려 시도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제한적인 군사적 침략을 감행해 일종의 안전 회랑(回廊)을 확보하려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랑은 인근 우크라이나 도시 케르손에 있는 발전소를 포함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그가 뭔가 더 큰 것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렘린의 관점에서 우크라이나를 놓고 추가적인 모험을 하는 것은 서방의 약함과 무능을 결정적으로 드러내며 그것은 푸틴에게는 크림반도에서 누가 대장인지를 외부에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가디언은 관측하고 있다.
ily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