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지난 9일 전당대회를 열고 당 대표로 호남 출신의 친박계 이정현 의원을 선출했다. 당심과 민심은 이정현을 선택한 것이다. 이 대표는 비박계 단일 후보인 주호영 의원을 1만2600표차로 여유 있게 따돌리고 보수정당에서 첫 호남 출신 대표가 됐다.

17계단을 건너 뛴 세칭 ‘흙수저’ 출신의 성공 스토리를 넘어 정치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지역감정 완화와 새누리당의 호남으로의 외연 확대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들을 만하다.

경선 기간 내내 친박 패권을 비판해온 비박계 진영은 ‘2단계 단일화’(정병국-김용태/주호영-정병국)를 통해 주호영을 대표 후보로 내세웠고, 강석호-이은재를 최고위원 후보로 ‘오더 투표’ 했지만, 친박계는 대표와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4명을 차지해 당 지도부를 사실상 장악했다. 최연혜 여성 최고위원과 유창수 청년 최고위원도 이 대표를 뒷받침할 개혁성향 인물이다.

이로서 비박계 후보 단일화를 주도했던 김무성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대권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들은 변화된 당원과 국민의 마음을 읽는 데 실패했다. 34만 6천명이나 되는 선거인단(70%)과 국민여론조사(30%)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는 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구태의연하게 계파선거를 주도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어버리는 우(愚)를 범했다.

이번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함의(含意)는 총선 참패 후 분열·지리멸렬했던 당의 구태를 훌훌 털어내고 화합·결속해서 미래로 전진하라는 지상명령이었다. 또한 국민은 새 지도부에 국민행복과 국리민복을 위한 여당다운 여당을 재건할 것을 주문했다.

현재 새누리당에 가장 시급한 것은 주역 계사전(周易 繫辭傳)에 나오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라는 구절에 모두 녹아있다. “궁하면 변하라.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스스로 변하는 ‘자기 혁명’이 해법이라는 뜻이다.이 대표가 대표 수락연설에서 밝힌 “계파주의도, 패배주의도, 지역주의도 없고 민생만큼은 야당의 시각으로 접근하겠다”는 각오가 새누리당 운영의 기본이 되고 이것이 지켜진다면 이 대표는 성공한 대표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표는 먼저 “경제에 무능했고 안보에 소극적인 여당이었다”는 세간의 평가를 불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자랑스러운 보수정당으로서 헌법적 기본가치를 지키는 보수혁신을 주도해야 한다. 집권당 소속 의원들이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는 이념적 혼선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의원특권을 모두 내려놓는 정치혁신과 웰빙과 무사안일 체질을 깨뜨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현하는 애국정당으로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새누리당은 10년 동안 좌파정권 하에서 야당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16년 만의 여소야대로 고립무원의 상태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양극화해소와 저출산문제, 해운·조선산업 구조조정 등 산적한 현안들을 풀어나갈 수 없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소통하고 조정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으로 대야(野)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협치’를 이뤄 정치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이 대표가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지금 제로”라고 말했듯이, 새누리당은 당명만 빼고는 모두 다 바꿔야 산다. 뼛속까지 개혁해야 한다. 기득권 계층의 대변자라는 오명을 떨쳐버리지 않고는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이 대표는 비대한 국회권력을 제어해야 한다. 또한 당을 혁명적으로 쇄신하고 능력과 적재적소 인사로 계파를 초월한 포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하면 떠나간 민심이 다시 새누리당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 대표는 당·정·청 관계를 효율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또한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관계로 청와대에 종속된 여당 대표가 될 수 있다는 안팎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청와대와 원활한 소통을 통해 박 대통령의 성공과 국익을 위해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강단 있는 대표가 되어야 한다. THAAD(사드)를 둘러싼 논란이나 민정수석의 거취 등 당면 현안에서부터 단호한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경선 과정에서 “일하고 싶습니다”고 외친 이 대표는 내년 대선후보 경선과 대선전(大選戰)을 총괄하게 된다. 지금 거론되는 새누리당 당내 후보들로는 정권재창출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다.

이 대표는 당내·외를 불문하고 계파논리에 함몰돼 있지 않은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여 집권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안보 및 국론 분열 위기 해법과 안정적 성장과 단계적 복지 확대 등 여당다운 정체성의 재구성으로 국정 운영을 주도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성패와 보수정당의 존폐, 그리고 정권재창출 여부가 이 대표의 두 어깨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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