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남민심을 둘러싼 정치적 지형은 급변하면서 문재인, 안철수, 손학규 등 야권 유력주자들의 정치적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수도권 표심과 연동되는 호남 표심의 전략적 특성을 고려할 때 호남민심 확보는 야권주자의 제1 선결조건이다. 총선 결과로만 본다면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우위 현상이 뚜렷하다. 그러나 총선 이후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의 회복세도 만만치 않다. 또 정계복귀가 초읽기에 접어든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도 무시못할 다크호스다. 호남민심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예측불허의 신삼국지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 與 이정현·반기문 내세워 20% 다짐 野 ‘화들짝’
- ‘무주공산’된 호남, 文·安·孫 성적표 보니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새누리당은 대약진을 이뤘다. 불모지 호남에서 이정현·정운천 등 2명의 당선자를 배출하면 정치적 교두보를 확보한 것. 그러나 호남은 전통적으로 야권의 텃밭이다.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김대중·노무현 후보에게 90% 수준의 몰표를 던지며 수평적 정권교체와 정권재창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특히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기적적인 당선은 전략적 선택이라는 호남 민심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호남 민심은 2007년 정동영 후보를 내세워 대선에서 참패한 뒤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을 선택해 자존심 회복을 노렸지만 정권교체에는 실패했다. 절치부심해온 호남이 2017년 차기 대선에서는 누구를 최종 주자로 선택할까?

與, 이정현 효과에 野, 텃밭 잃을라 초비상

야권의 대선필승 공식은 간단하다. 호남의 대동단결, 여권의 영남표 분열, 수도권 선전이다. 과거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과 문재인 전 대표 역시 과거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호남에서의 압도적 지지는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호남민심을 둘러싼 여야 구도는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대 총선을 거치며 상황은 미묘해졌다. 새누리당의 호남 공략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 지역구에서 무려 2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1988년 13대 총선 이후 30년 가까이 호남을 독식해왔던 더민주가 3석(광주 0석·전남 1석·전북 2석)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대약진이다. 영광의 주인공은 전남 순천의 이정현 의원과 전북 전주울의 정운천 의원이 바로 주인공이다. 특히 두 의원은 칠천팔기의 오뚝이 정신으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최근 상황은 더 좋아졌다. 호남 출신의 ‘흙수저’로 불리는 이정현 의원이 지난달 새누리당의 전당대회에서 승리하며 당 대표에 오른 것. 보수정당 60년 역사상 호남 출신이 당 대표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표는 “대선에서 호남 20% 득표를 이뤄낼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 여야 차기 대선 지지도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호남 파괴력은 상당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안철수 전 대표를 제치고 호남에서 2위를 기록할 정도다.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역대 대선 호남 득표율은 보통 10% 안팎이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광주 8.59%, 전남 9.22%, 전북 9.04%를 얻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광주 7.76%, 전남 10%, 전북 13.22% 수준이었다.

여권은 이정현·반기문 투톱 체제를 내세워 호남에서 20% 득표라는 대이변을 다짐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이러한 서진 전략에 야권은 초비상이다.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20% 득표를 기록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더구나 문재인, 안철수, 손학규 등 기존 야권주자들이 단일화 없이 본선에 나선다면 호남민심은 사분오열 찢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호남 사정에 정통한 한 야권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20% 지지를 얻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며 “총선에서 이정현·정운천 의원이 당선된 것은 특수한 케이스로 봐야 한다. 총선과 대선은 다르다”고 반박했다. 

문재인, 총선 이후 회복세에는 다소 안도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에서 고전 중이다. 이른바 친노패권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이다. 대선 정국에서 이른바 ‘문재인 대세론’은 이어지고 있지만 호남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있다.

특히 20대 총선 참패 이후에는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에서 지지를 잃은 만큼 대선주자로서의 자격도 없다는 비판이 야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 “호남에서 지지를 철회할 경우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며 총선 직전 정치생명을 내걸었던 발언은 문 전 대표의 발목을 잡고 있다.

8.27 전당대회에서 지도체제 개편도 변수다. 영남 대선후보 문재인에 이어 영남 대표 추미애가 들어선 것은 물론 친문 일색의 지도부가 만들어지면서 호남홀대론이 재부상할 수 있는 토양도 만들어졌다.

실제 더민주 전대 이후 호남에서 더민주 지지율은 급락했다.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은 이와 관련, 한 라디오에 출연, “호남인들의 가슴 속에서  문재인 대표는 아마 거의 지워버린 상태”라면서 “호남만 가지고 정권교체는 안 되는 일이지만 호남 없이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문 전 대표로서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총선 이후 뿔난 호남민심이 다소 누그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갤럽의 9월 1주 여론조사에 따르면 호남지역 정당 지지율은 더민주 36%, 국민의당 17%로 각각 나타났다.  20대 총선 성적표와는 달리 상황이 역전된 것. 차기 지지율도 마찬가지다.

리얼미터의 8월 5주차 여론조사에 따르면, 호남 지역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18.1%, 안철수 전 대표는 14.9%로 나타났다. 문 전 대표로서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지지율을 바탕으로 호남민심 구애에 다시 한번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 아무리 친노 패권주의가 싫어도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미우나 고우나 문재인을 선택하는 게 최선이라는 공식이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안철수, 호남 뒤로 대선출마 선언하며 광폭행보

안철수 전 대표 역시 상황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국민의당이 호남을 기반으로 38석의 대승을 거뒀다. 호남지역 비례대표 정당투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광주 53.34%, 전남 47.73%, 전북 42.79%로 압도적이었다. 경쟁상대였던 더민주와는 비교 자체가 무의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더민주는 광주 28.59%, 전남 30.15%, 전북 32.26%였다. 야권의 심장인 광주에서 국민의당의 절반 수준의 지지를 얻은 점은 치욕에 가까운 것이었다. 뒤집어보면 총선 과정에서 호남 민심은 안철수 전 대표를 선택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을 내세워 실패한 만큼 차기 대선에서는 ‘안철수’라는 새로운 상품을 내세울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다만 총선 이후 호남민심의 변심에 애를 먹고 있다. 총선 홍보비 파동 등의 여파로 총선 직후만 해도 20%대 중반을 기록했던 지지율은 최근 10%대 초반까지 내려왔다. 반토막이 난 셈이다.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추경 편성 등의 이슈파이팅을 주도하며 거대 양당 사이에서도 존재감 부각을 위해 노력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안 전 대표의 차기 지지율 역시 문재인 전 대표에게 역전당한 지 오래다. 특히 반기문 총장이 대권경쟁에 뛰어들면서 지지율 회복은 좀처럼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안 전 대표가 띄운 반전의 승부수는 대선구도 조기 가시화다. 안 전 대표는 28일 “정치를 바꾸고 시대를 바꾸라는 명령을, 반드시 정권 교체하라는 명령을 가슴 깊이 새기고 제 모든 것을 바칠 것”이라며 사실상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특히 광주 무등산이라는 장소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한 것은 상징적이다. 아울러 호남에서의 전략적 우위 확보를 위해 최근 광폭행보에도 나서고 있다.

강원도 원주, 경기도 성남, 광주, 대전 등 전국 각지를 돌면서 지역기반을 다지는 것은 물론 약점으로 지적된 스킨십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특히 무등산 대권도전 선언 이후 손학규 전 상임고문화 비공개 회동을 가지며 러브콜도 보냈다. 2일에는 4차산업 혁명 구상을 위해 독일 방문에 나섰고 9일에는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냉면회동도 가진다.

손학규, “왜 전남 강진에서 2년 거주했나”

야권의 다크호스로 불리는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역시 호남은 애증의 대상이다. 손학규 전 고문은 새누리당을 탈당한 뒤 야권 합류에 나섰던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 본선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본선 경쟁력이 뛰어나고 외연확장이 용이하기 때문에 손학규가 나서면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여론이 없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정동영 후보에,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문재인 후보에 밀려 각각 쓴잔을 마셨다.

손 전 고문은 특히 20대 총선에 거리를 두면서 정치적 위상이 크게 추락했다. 일각에서는 차기주자로서의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섣부른 관측도 나왔다. 남은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더민주로 복귀해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는 것. 다만 문재인 대세론이 확고한 만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국민의당 입당도 쉽지 않다.

과거 한나라당 탈당의 트라우마가 여전한 데다 안철수 대세론을 뒤집기도 싶지 않다. 마지막은 남은 것은 제3지대에서 실력을 쌓은 것이다. 손 전 고문의 선택은 제3지대로 모아지고 있다. 더민주 당적을 가지고 있지만 4.13 총선이나 8.27 전당대회에서 거리를 둔 것처럼 제3지대에서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것.

결국 손 전 고문이 정치권 새판짜기 과정에서 어느 정도 역량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정치적 운명이 엇갈릴 수 있다. 특히 호남민심의 확보가 급선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이 정계은퇴 이후 2년 동안 왜 전남 강진의 토굴에서 칩거해왔겠느냐”면서 “호남 민심을 얻지 않고서는 차기 주자로서의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손 전 고문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약하지만 희망의 징조도 있다. 손 전 고문은 리얼미터의 8월 5주차 여론조사에서 호남 지역 지지율이 5.6%에서 10.4%로 급등했다. 전국 지지율은 0.8%p 오른 4.3%로 6위로 올랐다. 이는 최근 한 달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 7주기 추모행사 참석,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와의 회동, 박지원 비대위원장과 안 전 대표와의 만남 등을 통해 정치적 보폭을 넓혀온 것에 대한 호남민심의 화답이다.

손 전 고문이 정계복귀 이후 정치행보를 본격화한다면 지지율 상승세는 더 커질 수 있다. 다만 손 전 고문이 대선 독자노선이 힘들다고 최종 판단한다면 중국 고전 삼국지의 위·촉·오의 합종연횡 사례처럼 반(反)문재인 전선에서 권력분점을 고리로 안 전 대표와 손을 잡을 것이라는 상반된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희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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