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 때문인지 출마예정자들의 ‘동네 순회공연’이 잦아지고 있다. 또 저마다 지역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지역민의 관심을 끌어보려 애를 쓰는 모습이다.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들이 늘상 지금처럼 지역구를 돌며 지역민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지 않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선거 때만 ‘반짝’하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리 국회의원들의 현주소는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만 살펴봐도 대략 이해가 간다.현재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은 271명. 지난 2000년 4월 13일 치러진 제16대 국회의원의 전국 선거구는 서울 45곳, 부산 17곳, 대구 11곳, 인천 11곳, 광주 6곳, 대전 6곳, 울산 5곳, 경기 41곳, 강원 9곳, 충북 7곳, 충남 11곳, 전북 10곳, 전남 13곳, 경북 16곳, 경남 16곳, 제주 3곳 등 모두 227곳이었다.

여기에 비례대표 의원 44명을 포함한 숫자다.이 가운데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의원은 모두 160명으로 전체의 59%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2003년 9월에 발행한 <2003 국회수첩>과 각 정당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확인했으며, 거주지를 밝히지 않은 의원 3명은 제외됐다.160명의 서울 거주의원을 정당별로 살펴보면 한나라당 90명(146명 중 61.6%), 민주당 40명(62명 중 64.5%), 우리당 26명(47명 중 55.3%), 비교섭단체 14명(16명 중 87.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이들 의원들의 서울 내 자치구별 분포를 보면, 소위 ‘강남8학군’이라고 일컬어지는 강남·서초구 거주자가 57명(지역구의원 포함)으로 가장 많았다.물론 상당수 의원의 자녀들이 이미 대학에 재학중이거나 졸업한 상태지만, 이들의 ‘강남 선호현상’도 짚어볼 만한 대목이다.

이어 영등포 15명, 용산 10명, 서대문 9명, 양천 9명, 종로 8명, 광진 6명, 강서 5명, 송파 5명, 성북 5명, 마포 5명, 동대문 3명, 동작 3명, 중구 2명, 은평 2명, 금천 1명, 도봉 2명, 중랑 2명, 성동 2명, 강북 2명, 노원 2명, 구로 2명, 관악 2명, 강동 1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선거구가 서울지역인 45명과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44명 가운데 서울거주자 33명을 제외한다 해도, 서울 거주 의원은 총 82명(30%). 특히 자신의 지역구와 별개로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도에 살고 있는 의원까지 포함하면 전체의원 271명 중 90명(33.2%). 결국 국회의원 세 명 중 한 명은 지역구가 아닌 ‘엉뚱한 곳’에 산다는 이야기이다.이를 선거구별 분포로 보면, 경남이 15명(지역구 16명 중 93.7%)으로 ‘지역민을 버리고 상경한 의원’이 가장 많았다.이어 경북 12명, 전남 12명, 부산 10명, 충남 8명, 전북 6명, 광주 6명, 강원 5명, 충북 5명, 대구 2명, 제주 3명, 경기·인천 2명, 울산 2명, 대전 2명의 순이었다.

그러나 실제 비율로는, 선거구가 3곳임을 감안하면 100%가 ‘상경’한 제주 지역민들의 ‘실망’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이와 관련 모 정당 관계자는 “자신의 지역구를 벗어나 서울 혹은 경기도에 별도의 거주지를 마련해 두는 것은 오래된 일”이라며 “회기 때 원활한 출퇴근 등 업무를 목적으로 마련해 둔 사람도 있겠지만, 온 가족이 ‘상경’해 서울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문제”라고 꼬집었다.이에 대해 모 국회의원 보좌관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해서 지역구에 충실치 못한 것은 아니다”며 “수시로 지역에 내려가 지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의정활동과 지역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이 보좌관은 또 “업무의 편의성 때문이지, 자녀들의 교육문제 등과는 별개”라고 덧붙였다.반면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선거법상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이 제재를 받는 것과는 달리 국회의원은 출마 요건을 갖추기 위해 애써 지역에 적을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16조 피선거권 조항은 “선거일 현재 계속하여 60일이상(공무로 외국에 파견되어 선거일전 60일 후에 귀국한 자는 선거인명부작성기준일부터 계속하여 선거일까지)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구역안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주민으로서 25세이상의 국민은 그 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피선거권이 있다. 이 경우 60일의 기간은 그 지방자치단체의 설치·폐지·분할·합병 또는 구역변경[제28조(임기중 지방의회의 의원정수의 조정 등)의 규정에 의한 경우를 포함한다]에 의하여 중단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또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원에 한해서만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소 소재지가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구역안에 있어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주민등록이 그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구역안에 있게 된 때에는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구역안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는 등 국회의원에 관한 조항은 없다.더욱이 선거권을 가진 국민들은 선거만 다가오면 주민등록 정리 등 온갖 귀찮은 일을 겪어야 한다. 실제 행정자치부는 오는 4월15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오는 3월12일까지 전국 읍·면·동에서 주민등록 일제정리를 실시한다. 중점 대상은 거주지 변동 후 미신고자 및 허위신고자 정리, 화상자료 미입력자 등 새 주민등록증 미발급자 정리, 주민등록표 기재사항 누락·변경·오류 등 정정, 주민등록 전산시스템 및 전산자료 정리 등이다.

행자부는 이 기간 합동조사반을 편성,세대별 명부로 주민등록과 실제 거주여부 등을 조사해 무단 전출자와 허위 신고자 등에 대해서는 공고 등 절차를 거쳐 주민등록을 말소시키는 직권조치를 할 계획이다. 이에 반해 국회의원의 경우 거주요건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국회의원이 비록 지역구에서 선출되기는 하지만 국가의 입법기관의 구성원으로서 국민대표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데에 기인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례(1996. 6. 26 헌재결정 96헌마200) 때문.결국 선거 때만 ‘반짝 지역구 챙기기’를 하고, 당선된 이후에는 거들떠보지 않는 ‘구태정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이에 대해 회사원 정모(33·서울시 양천구 목동)씨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역의 대표를 뽑는 선거이다 보니 ‘엉뚱한’ 곳에 가서 투표를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엉뚱한’ 곳에 살며 ‘지역민을 대표하고 있다’고 외치는 일부 국회의원들은 누가 제재를 하냐”면서 “진정 지역발전을 위하고, 지역민의 의견을 듣겠다면 ‘특권의식’을 버리고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숨쉬는 의정을 펼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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