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최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연이어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기업 총수들의 부동산 사랑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주택 임대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부영은 최근 1년 사이 1조5000억 원이 넘는 돈을 부동산에 투입했다. 원조 땅부자인 롯데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과거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부동산 매입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 결과 한 때 신 총괄회장은 세계 부호 4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부동산에 돈을 쏟아 붓는 이유는 뭘까. 여러모로 활용성이 높은 자산이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의 시각이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인천 송도 대우자동차판매 부지를 사들인데 이어 강원 태백 오투리조트, 경기 안성 마에스트로 CC 등을 차례로 매입했다. 특히 지난 1월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을 인수하더니, 급기야 지난달에는 을지로 삼성화재 본관까지 품에 안았다.

8개월 만에 부동산에 쏟아 부은 인수 금액만 1조 원을 넘어선다. 지난달 24일 삼성화재는 을지로 본관 사옥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부영을 선정, 매각 가격은 4000억 원대 중반으로 이달 중 최종 계약을 완료할 계획이다.

부영의 이 같은 부동산 매입에는 이중근 회장의 판단이 크게 작용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남다르며 자신이 목표로 삼은 부동산을 매입할 시기와 적절한 금액을 베팅하는 수준은 선수급으로 전해진다. 이는 수십년간 임대주택사업을 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라는 전언이다.

지난해 인천 송도 대우자동차판매 부지를 매입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3150억 원이다. 이 부지는 지난 2014년 말 감정가 1조481억 원에 경매가 시작됐지만 4차례 유찰을 거쳐 2516억 원까지 떨어졌다. 이는 10개월간 입찰 타이밍을 지켜보던 이중근 회장이 띄운 승부수가 적중한 사례로 꼽힌다. 이중근 회장은 이후 강원 태백 오투리조트와 경기 안성시에 위치한 18홀 규모 회원제 골프장인 마에스트로CC도 사들였다.

이번 삼성화재 을지로 사옥 인수는 이중근 회장이 벌이고 있는 부동산 매집의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부영이 규모와 공격적으로 부동산을 사들이는 게 향후 부메랑이 돼 돌아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부영은 이미 지난 1월 사들인 삼성생명 본사 사옥의 용도를 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부영은 지난해 10월 이후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1조5000억 원 넘는 돈을 부동산 매입에 쏟아 부었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어떻게든 현금성 자산을 팔아 유동성을 마련, 다시 재임대하는 세일 앤 리스백이 요즘 추세이지만 이 회장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면서 “주택 경기가 다소 가라앉은 상황에서 과감하게 투자하기보다는 보수적으로 경영해야 하는 것 아니냐” 지적했다.

신격호, 부동산 매입으로
세계 4대 부호 올라

10대 그룹 중 롯데는 서울 ‘롯데월드타워’ 부지의 75%를 소유한 롯데물산과 비상장 계열사까지 합치면 보유 부동산 가치에서 사실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재계 순위는 5위이지만, 부동산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 1등을 차지하는 셈이다.

이런 배경에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부동산에 대한 애착이 담겨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롯데의 토지 보유액은 10조7000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신 회장이 남다른 부동산 감각을 지녔다고 평가하고 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신 회장은 일본 롯데를 통해 일본에서 3000억 엔에 달하는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당시 환율로 따지면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넘는 규모다. 이 같은 투자 결과 신 회장은 1980년대 한때 세계 4대 부호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신 회장의 부동산 사랑은 그치지 않았다. 신 회장은 우리나라의 알짜배기 땅들을 매입해왔다. 지난 1967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롯데제과 사옥 부지를 시작으로, 1970년대 초반 서울 소공동의 반도호텔 부지를 사들여 현재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을 세웠다.

이어 74년에는 서울 서초동 롯데칠성 부지도 사들였고 1981년 잠실 땅을 구입해 롯데월드를 지었다. 1987년에는 그 옆의 땅도 사들인 뒤 보유하고 있다가 현재 이 자리에 제2롯데월드를 짓고 있다.

그러나 신 회장의 부동산 매입이 최근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제기된다. 현재 검찰은 일부 롯데 계열사가 신 회장이 가지고 있는 땅을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값에 사들인 것은 아닌지 수사를 벌이고 있어서다.

KT, 전 회장 줄줄이 매각
황 회장은 유지만…

국내 기업 가운데 손꼽히는 땅부자인 KT가 현재 보유한 부동산의 공시지가는 5조668억 원, 건물은 1조4436억 원에 달한다. KT가 보유한 토지 면적은 총 618만8077㎡(187만1893평), 건물 361만8705㎡(109만4658평)이다.

타 기업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의 부동산을 자랑하는 셈이다. 이마저도 줄어든 수치다. 불명예 퇴진한 이석채 전 회장 시절 KT는 250만 평에 육박하는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이 연임 직전과 연임 성공 이후 잇따라 부동산을 매각하면서 현재 규모로 축소됐다.

이 전 회장은 일부 부동산의 경우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매각하는 등 현금을 확보하는 한편, 배당잔치를 벌인다는 지적을 받았다.

현재 황창규 회장 부임 이후에는 부동산 매각이 일체 이뤄지지 않았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재 KT의 토지와 건물은 2014년 말 대비 변동이 없는 상황이다.

황 회장은 보유 부동산을 활용해 사업으로 승화시켰다. KT는 전화국 부지를 이용한 호텔사업이나 임대주택 사업, 지자체 등과 연계하는 등의 부동산 사업을 키우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재계도 빠지지 않는다”면서 “보유 부동산을 활용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거나 새로 사들여 재테크에 활용하기도 한다. 이는 부동산이 여전히 매력적인 자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h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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