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와 파우더 블루 그리고 비취와 파스텔 블루의 물이 태어난 곳, 지중해. 그 바다에 나풀거리는 꽃잎처럼 자그맣게 내려앉은 몰타. 몰타는 지중해 한가운데에 그렇게 고요하게 있다.
 
인류 비밀의 열쇠, 아저르 임 거석 신전
 
인류 탄생의 시원을 유추할 수 있는 영국의 스톤헨지. 유럽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문화유산 중 가장 많은 학설과 의문으로 뒤덮인 스톤헨지보다 무려 천 년 이상이 앞섰다는 거석 유적이 몰타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럽의 어떤 거석 유적지보다 보존 상태가 좋고 장식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는 아저르 임은 스톤헨지가 드넓은 평원 위에 있는 것과 달리 푸른 바다가 보이는 절벽 위에 마치 태양을 숭배하듯 또 신을 영접하듯 그렇게 서 있다.

아저르 임은 태양의 움직임을 간파해 춘분, 추분, 하지, 동지 때 태양의 빛이 어떤 경로를 통해 거석 내부로 정확히 들어오는지 예측해 건설한 거대 구조물이다. 

가장 큰 돌은 무려 20톤에 이르는데 어떻게 이 돌을 운반해 왔는지, 당시에 이미 이런 기술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마치 절벽에서 보는 지중해처럼 아찔하다.

아저르 임 주변에 보다 작은 크기의 임나이 드라 신전이 있으며 아저르 임에 대한 기록과 자료를 전시하는 충실한 컬렉션을 지니고 있는 박물관이 아저르 임 입구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블루 그로또에서 걸어서 2km. 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혹시 계속되는 지중해에 지쳤다면, 아자르 임은 또 다른 몰타, 가장 오래된 몰타를 보여주는 장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몰타에 와서 거석 신전을 보지 않고 간다면, 인류에 남은 가장 오래된 유적을 놓친 것과 다름 없다. 유적을 여행의 포인트로 삼는 사람에게 아저르 임은 사실상, 지중해보다 중요하다.

기적이 일어난 곳, 모스타 돔

사람들은 종종 기적은 일어나지 않기에 그렇게 불린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기적이 일어났다면 이미 그것은 기적인 아닌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일어났다.

유럽을 통틀어서 돔 형식으로는 네 번째로 크며 몰타 전역에 있는 365개의 성당 중, 유일하게 돔 모양을 한 모스타 돔에서의 일이다. 
 
1942년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많은 신자들이 모스타 돔에 모였다. 사람들은 함께 모여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도했고 그 뜨거운 열기가 성당 내부를 가득 채웠다.

그때 하늘에서 요란한 비행기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공습이 시작됐으며 곧, 무수한 포탄이 자신들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이라고 직감했다. 
 
실제로 성당 바깥 여기저기서 포탄들이 터지는 굉음이 울렸다. 사람들은 고개를 감싸고 더욱 더 기도에 열중했다. 갑자기 육중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지붕이 뚫리며 커다란 포탄 하나가 돔 안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200kg 무게의 포탄은 곧 커다란 폭발음을 울리며 터질 것이었고 이곳은 곧 무수한 사상자로 처참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탄은 몇 번을 바닥에서 구르더니 터지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오로지 이 모스타 돔에서만 벌어졌던 믿을 수 없는 광경, 사람들은 이것을 ‘기적의 포탄’이라 부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했다.

성당 안에 있는 포탄은 실제가 아닌 전시용이며 당시의 실제 포탄은 발레타에 있는 몰타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오로지 돌로만 만들어진 석조 건물인 성당 내부는 정교하고 또 웅장하다.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는 하늘색의 벽과 사실감 가득한 성화와의 조화는 마침 돔의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과 맞물려 이곳을 더욱 엄숙하게 묘사하고 있다. 
 
숨 막히게 정적이 흐르지만 그 숨 막힘은 경건하고 또 성스러운 호흡일 뿐이다.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나무 의자들이 빼곡하게 내부를 꾸미고 천장의 돔은 역시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벽 상층부에 있는 성화는 당시의 기술로는 혁신적인 현재의 3D형식을 그려낸 것이라 하며 건설 당시 모 스타 지역 인근의 주민들 거의 대부분인 1500여 명이 건설에 참여했다고 한다.
 
몰타 안에서 몰타 바라보기 발레타

발레타는 현재 몰타의 수도이자 7000년의 역사를 가진 성곽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역사 지구 중 하나이자 유럽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수도로 손꼽힌다. 르네상스시기에 만들어진 구도심은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역사 보존의 모범도시라고도 불린다. 

그간 몰타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 온 발레타는 도시 전체가 방어를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기에 성벽과 보루로 둘러싸여 있으며 항상 많은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그간 마사슬록과 엠디나에서 한적한 몰타를 느꼈다면 발레타에서는 조금 바빠진 몰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발레타를 구성하는 형식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드러운 라임스톤의 벽은 그대로 따사로운 온기를 머금고 있고, 집 밖으로 나온 테라스의 모습에는 또한 여유가 묻어 있다. 

골목의 폭은 넓으며 양쪽으로 차들이 다니고 오토바이 뒷바퀴의 회전 속도도 제법 난다. 많은 상점과 레스토랑 그 리고 쇼핑을 위한 고급 상점들과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 이것은 발레타가 가지고 있는 유쾌한 북적임이고 그 생동감은 중앙광장 앞에 있는 커다란 야외 레스토랑들로 이어진다. 

유쾌함이란, 이 야외 레스토랑들이 펼쳐진 장소가 바로 몰타도서관 바로 앞이라는 데에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특별한 치장이나 화려한 차림 없이 그저 평범하게 시간을 보낼 뿐이다. 도서관마저 그들 삶 속으로 끌어들인 이 몰타인들만의 여유. 이런 것이 진짜 몰타 사람들의 모습이다.

만일 당신에게 몰타에서의 단 하루가 주어진다면, 성 요한 대성당으로 가보리라.
고백하자면, 몰타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지중해가 아니었다. 

마사슬록의 한적한 바닷가 풍경도 아니었으며 엠디나 골목에서의 느린 산책도 조금 뒷전이었다. 몰타에서 당신에게 단 하루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이곳으로 와야 한다. 이곳의 이름은 성 요한 대성당.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최근 한 해외 매체가 발표한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세계의 성당 21’에도 선정된 바 있는 성 요한 대성당은 리처드 카벤디쉬 등이 지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에서도 적극 추천되고 있는 몰타 최고의 성당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화려하며 장엄한 성 요한 대성당은 세상의 모든 긍정적인 수식어를 부여해도 모자랄 만큼이곳 발레타에서 몰타를 성스럽게 지키고 있다. 성당은 1573년에 몰타 기사단의 수장이었던 장드라 카시에르에 의해 지어졌다. 
 
이 엄청난 구조물을 단 5년 만에 지었다는 것 자체가 성스러운 결과였다. 외부의 수수한 모습에 비해 내부는 당시엔 이토록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지는 않았다. 바로크 시대에 들어선 이후 17세기 이탈리아 예술가 마티아 프레티가 5년여에 걸쳐 세례 요한의 일생을 그린 성화를 완성해 지금까지 이 작은 천국의 세계를 이어 오게 했다고 한다. 입장한 사람들은 모두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고쳐 메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세심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는 혹시 모를 부딪힘으로 인해 내부 장식으로 조각된 금도금에 대한 손상과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라고 한다. 바닥은 온통 대리석으로 마감돼 있다. 여러 가지 색들로 표현된,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지는 대리석은 그러나 하나하나 채색을 한 것이 아닌 각기 다른 색의 천연 대리석을 일일이 조합해서 맞춘 것이었다. 

성 요한 대성당의 바닥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바닥 장식으로도 평가받는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모두 가이드의 안내는 뒤로한 채, 고개를 들어 천장의 성화와 사실적으로 새겨진 내부의 조각들을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다. 이곳에 들어설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왔던 탄성은 엄숙한 경의로 바뀌어 있다.

여덟 개의 예배당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곳은 카라바조가 남긴 그림이 있는 방이다. 1608년 당시 제작됐던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는 ‘세례 요한의 참수’는 이 성 요한 대성당의 명성에 정점을 찍는 부분일 것이다. 그가 남긴 그림 중 크기가 가장 큰 작품이며 전 생애를 통틀어 유일하게 카라바조가 직접 서명을 남긴 그림이기도 해 이 그림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미술 역사상 명암의 대비를 화폭의 프레임으로 최초로 들여온 그의 그림 세계에서도 가장 완벽하다고 평가받는 ‘세례 요한의 참수’. 이토록 귀중한 문화유산이기에 이 방은 사진 촬영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성 제롬 2’ 역시 같은 공간에 전시돼 있다. 성 요한 대성당과 카라바조라는 두 거장의 만남. 어째서 나는 몰타를 아직 이렇게도 몰랐던 것일까. 몰타를 떠날 때까지 잔상에 남았던 것은, 성 요한 대성당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할 뿐이다.

<infor> 성 요한 대성당의 비밀
 
바닥에 촘촘히 이어진 각 대리석 판은 기사단 무덤의 뚜껑이라고 한다. 이곳 지하에는 기사단 멤버들을 포함, 역사적 인물들 378명이 안장돼 있으며 사람들은 기사단의 무덤 위를 걷고 있는 셈이어서 어느 곳보다 조심스럽게 성당을 대한다.
 
어퍼 바라카 가든

어퍼 바라카 가든은 오페라 하우스 너머 발레타의 입구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큰 정원은 아니지만 가든에 들어서면 바로 바다가 보인다. 
 
발레타 성벽의 가장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반대편의 쓰리 시티즈와 그랑항, 슬레이마 선착장 등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몰타 안에서 몰타를 바라보는 셈. 
1775년에 이탈리아 기사단들의 휴식공간으로 지어진 어퍼 바라카 가든은 말티즈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휴식공간이자 최고의 힐링 장소이며 관광객들에겐 최적의 포토 존이자 뷰포인트이기도 하다. 
 
이런 뷰를 매일 볼 수 있는 몰타라는 나라의 축복은 사실 이곳에서 정점을 찍는 셈이다. 물론 지중해를 빼놓고 본다면 말이다. 앞에 전시돼 있는 대포는 실제 아직도 사용 중인 대포라고 한다. 매일 12시와 4시 정각에 복식을 갖춘 군인들이 두 번씩 포를 쏜다.
 
대 기사단 궁전
 
과거 성 요한 기사단장들의 거처이자 영국의 지배 당시 주지사의 공관이었으나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과 몰타 의회로 사용한다는 대 기사단 궁전. 먼저 몰타를 이야기할 때 그동안 몰타가 침략당한 역사를 빼놓을 수는 없다.

이 지중해 외딴 곳의 조그만 나라는 수천 년 동안 페니키아와 그리스, 카르타고와 비잔틴 그리고 로마와 아랍 등 수많은 이민족의 거센 침략과 지배를 받아야 했다. 현세에는 프랑스와 영국, 독일과 터키 등이 몰타를 거쳐갔다. 
 
때문에 다시 이렇게 몰타라는 이름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한 이 나라는 지중해의 작열하는 빛만큼이나 뜨겁게 커튼콜을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그런 이유에선지 궁전 내부로 연결되는 무기고라 불리는 전시실에는 유난히 무기 관련 전시물들이 많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로 구성된 컬렉션이었지만 몰타는 그런 자신들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기에 애써 예술로 포장하지 않는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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