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경쟁력 확보... 2017 대선 파괴력은

- ‘정통성’ 복원, 호남에서 安과 선명성 경쟁
- 호남서 국민의당과의 경쟁에 반등의 계기 마련할까


‘민주당이 돌아왔다’ 한국 정치사의 주요 고비마다 등장과 퇴장을 반복했던 민주당이 차기 대선을 1년 3개월가량 남겨둔 시점에 현실정치의 한가운데로 진입한 것. ‘민주당’이라는 당명은 한국 정당사에서 각별하다. 4.19 혁명과 87년 6월항쟁 등 민주화운동의 계승은 물론 보수정권의 대항마라는 브랜드 탓에 정통야당의 상징으로 불린다.

87년 대선과 88년 13대 총선 당시 YS가 주도한 통일민주당이나 DJ가 주도한 평화민주당에 ‘민주’라는 이름이 포함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승리했다. 201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약칭으로 ‘민주당’을 사용하려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원외 민주당의 존재 때문이다. 상황이 급반전된 것은 추석연휴 마지막날인 지난 18일이다. 추미애 더민주 대표와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만나 더불어민주당과 원외 민주당의 전격 통합에 합의한 것. 더불어민주당은 앞으로 원외 민주당과의 통합 절차가 법적으로 마무리되면 ‘민주당’이라는 약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2017년 대선에서는 정통 야당을 상징하는 ‘민주당’ 대선후보의 등장도 현실화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집단 탈당 과정에서 만들어진 당명이다. 이른바 친노 패권주의에 반발한 호남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집단 탈당파가 국민의당 창당에 나서자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꾼 것. 그러나 민주당을 약칭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원외 민주당이 ‘유사당명 사용’이라며 강력 반발한 것. 민주당은 법원에 더불어민주당의 당명과 약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미 신고돼 사용 중인 명칭과 뚜렷이 구별되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규정한 정당법 41조 3항을 위배했다고 주장한 것.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이 아닌 ‘더민주’라는 약칭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공식적인 표기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혼란스러운 약칭이 사용됐다. 사람에 따라  ‘더불어당’ ‘더민주’ ‘민주당’ ‘더민주당’으로 혼용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더민주와 민주당의 통합은 윈윈 전략이다. 물론 원외 민주당이 현역 의원 한 명 없는 초미니 정당이라는 점에서 통합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다. 본질은 ‘민주당’이라는 이름값이다. 이번 통합으로 더민주는 약칭인 민주당을 대선정국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과 호남민심에 미치는 ‘민주당’이라는 당명의 상징성을 감안할 때 적잖은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더민주에 비판적인 호남 중장년층의 마음을 돌리고 야권통합도 주도할 수 있다. 추미애 대표가 “민주개혁세력이 더 큰 통합을 위해 지지층을 더 강력히 통합하고, 돌아오는 한 분 한 분을 분열 없이 품고 가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차기 대선에서 야권후보 단일화 없이 3자 이상의 다자구도로 치러질 경우에도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내세워 정통야당의 본류라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추미애·김민석 시너지에 문재인 환영

추미애 대표와 김민석 대표의 통합 선언은 상징성이 작지 않다.  특히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9월 18일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생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통합을 선언한 것도 이색적이다. 이 날은 해공 선생이 1955년 민주당을 창당한 지 꼭 6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해공 선생은 이후 1956년 대선에서 그 유명한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로 유석 조병옥 박사와 정·부통령 선거에 나섰다가 서거했다. 야권의 입장에서 보면 60년 전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민주당의 대선구호가 차기 대선에서 그대로 사용돼도 무방할 정도다. 추 대표는 이와 관련, “민주당과의 통합은 분열과 좌절을 딛고 일어나 정권교체로 나아가는 대장정의 출발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더민주의 입장에서는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전통적 지지층 복원의 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원외 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더민주의 주류인 친노·친문세력과는 구원이 적지 않다. 지난 2002년 대선 정국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한 가운데 김민석 의원이 정몽준 후보 진영에 합류하면서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 됐다.

특히 김 대표는 이후 김민새(김민석+철새)로 불리며 친노 진영과 화해할 수 없는 사이가 돼버렸다. 그런데도 통합을 이뤘다. 더민주의 입장에서는 국민의당과의 대통합을 앞두고 작지만 의미있는 소통합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통합을 주도한 추미애 대표와 김민석 대표는 정치적인 시너지 효과를 얻었다. 대표 취임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 논란으로 극심한 비난에 시달렸던 추 대표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성사시키는 정치력을 선보이며 정치적 주목을 받았다. 통합을 주도했던  추미애 대표는 “민주당은 이 나라 민주주의 산실”이라면서 “소나무 같은 느낌을 주는 당명을 우리가 회복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2002년 대선 정국에서 정몽준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이후 길고 긴 정치낭인의 길을 걸었던 김민석 대표 역시 이번 통합 선언을 기점으로 곧 중앙 정치무대에 복귀할 것으로 전망한다.

20대 총선에서 텃밭 호남에서 참패한 이후 호남민심 회복에 공을 들여왔던 문재인 전 대표 역시 ‘민주당’ 회복에 반색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호남공략에 도움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문 전 대표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도 확인된다. 문 전 대표는 “더민주와 원외 민주당의 통합 소식이 알려진 직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김민석 대표님 환영합니다.

이제 우리당은 뿌리깊은 전통야당의 당명이었던 ‘민주당’을 약칭당명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면서 “우리당의 뿌리인 민주당 창당 61주년을 맞는 날에 발표돼서 더 각별한 의미를 주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1955년 신익희 주도 탄생 60년 흥망성쇠

눈여겨볼 점은 ‘민주당’이라는 당명이 주요 정치적 고비마다 흥망성쇠를 거쳤다는 점이다. 야권통합과 분열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재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97년 대선 과정에서 만든 한나라당이라는 당명을 2012년 19대 총선 직전까지 무려 15년간 사용해온 점과 비교해 보면 뚜렷이 대비된다. 아울러 상당수 야권 정치인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때 야권의 당명이 민주당이 아닐 때에도 ‘민주당’이는 이름을 사용할 정도로 민주당은 야당 당명의 상징이다. 

민주당은 1955년 9월 18일 해공 신익희 선생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이승만 정권 시절 야당을 대표하는 명칭이 됐고 4.19 혁명 이후 의원내각제 하의 2공화국에서 집권당의 명칭이 됐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신민당이 야당을 대표하면서 잠깐 사라졌지만 87년 민주화 국면을 거치며 YS의 통일민주당과 DJ의 평화민주당으로 부활했다. 이후 3당합당에 따른 정치적 이합집산을 거쳐 김대중·이기택 공동대표 체제의 민주당이 탄생했다.

97년 대선에서 DJP 단일화로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새정치국민회의라는 당명을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약칭 민주당)으로 개편했다. 다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고 참여정부 집권 첫해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민주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2007년 대선국면에서는 열린우리당 집단 탈당과 해체 과정 속에서 대통합민주신당(약칭 민주신당)이 탄생했다. 대선 패배 이후 이듬해인 2008년 18대 총선 직전에는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치면서 ‘통합민주당’(약칭 민주당)이 출범했다. 그해 8월에는 아예 ‘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시민사회 세력과의 통합을 명분으로 민주통합당(약칭 민주당)이 만들어졌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2013년 5월 또다시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2014년 3월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세력이 주도한 새정치연합과의 통합을 거쳐 ‘새정치민주연합’(약칭 새정치연합)이 만들어지면서 ‘민주당’이라는 당명은 또 사라졌다.

20대 총선을 앞둔 올해 초 새정치연합 집단 탈당 사태 속에서 안철수 주도로 국민의당이 만들어졌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원외 민주당과의 통합을 거쳐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다시 찾았다. 2014년 3월 이후 약 2년 6개월 만이다. 

호남서 반전의 계기 마련할까

이제 관심사는 ‘민주당’이라는 당명의 파괴력이다. 더민주가 원외 민주당과의 통합을 선언한 것은 차기 대선을 겨냥한 야권 새판짜기의 일환이다. 더민주는 제1야당의 정통성을 복원해 정통야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다. 특히 대선후보 단일화는 물론 당대당 통합에 다소 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독자노선을 유지하고 있는 국민의당을 압박하는 효과도 적지 않다.

더민주는 20대 총선에서 호남 전체 지역구 의석 28석 중 고작 3석을 얻는 수모를 당하며 23석을 싹쓸이한 국민의당에 완패했다. 호남민심의 회복 없이는 차기 대권도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할 정도다. 더민주의 진군에 국민의당은 다소 불편한 기색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한강에 생수 한 병 쏟아 부었다고 한강물을 생수로 마실 수는 없다”고 비꼰 게 대표적이다. 주승용 의원도 ‘통합 자체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당의 통합은 어떻게 보면 도로민주당”이라고 혹평했다. 

문재인 전 대표도 큰 힘을 얻게 됐다. 문 전 대표는 20대 총선 당시 호남완패 문제로 정계은퇴 논란에 시달렸다. 특히 8.27 전당대회 이후에는 지속적인 호남구애에 나서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전국 지지도는 라이벌인 안철수 전 대표에 비해 우세하지만 호남에서는 여전히 약세다.

실제 문 전 대표는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9월 3주차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p,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위위 참고)에서 보면 호남 지역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20.7%)과 안철수 전 대표(14.1%)에 밀리면서 13.2%로 3위를 기록할 정도다. 이 때문에 민주당과의 통합을 계기로 호남에서 안철수 전 대표와의 경쟁에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통합이 독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특히 민주당이라는 당명 이외에는 통합의 원칙과 명분이 보이지 않은 야합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 특히 야권분열 구도 속에서도 총선에서 대약진한 국민의당이 통합논의가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없지 않다.

이번 통합이 오히려 국민의당을 자극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냉소적인 반응이다. 하태경 의원은 “김민석 전 의원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됐다”며 “현대판 봉이 김선달에 넘어간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수퍼 호갱인가요”라고 반문한 게 대표적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