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끝났다!" 드디어 기지개 켜는 김 지사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17개시도 중에서 가장 바쁜 지방자치광역단체장이 누굴까. 천만 인구를 자랑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대권 도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안희정 지사, 남경필 광역단체장도 아닌 바로 김관용 경북도지사다. 김 지사는 올해 6월부터 경북 밀양 신공항 무산에 성주 사드배치 논란, 나아가 경주 지진사태까지 뉴스 지면을 ‘나홀로’ 장식하고 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수시로 연락하며 현안 관련 해법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모두 현 정권 지지기반인 TK지역 내 악재라는 점에서 친박계인 김 지사의 노련한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반기문의 ‘충청대망론’에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김무성 등의 ‘PK 대망론’에 맞설 대구경북에 마땅한 대권주자가 없다는 점도 호재다. 김 지사의 위기관리 리더십이 연이은 악재를 거치면서 ‘기회’로 삼을 경우 ‘TK 대망론’의 중심에 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 반기문 ‘충청 대망론’에 TK중심 대권 후보론
- 사드 배치 발표(7월)-경주 지진(9월) 위기관리능력 ‘주목’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박근혜 대통령 탄생의 든든한 지역적 기반은 영남이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TK)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으로 굳건하게 지지를 보내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난 총선 결과 영남권이 균열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TK에서 2석, PK에서 5석을 야권이 잠식했다. 그나마 대구·경북은 새누리당 탈당파들과 힘든 싸움을 했지만 그런대로 선전했다.

하지만 TK민심도 연이은 지역 악재로 현 정권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올해 6월에 터진 남부권 신공항 무산. 신공항 무산 이전에 TK, PK 두 지역은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당초 경북에 가까운 밀양 신공항이 우세했지만 정부는 경남 김해공항 확장을 신공항 건설이라고 밀어붙였다.

3災에 무너지는 TK 민심 ‘구심점’ 역할

TK민심은 신공항 건설이 경제적 논리가 아닌 정치적 논리로 변질됐다고 정부를 성토했다. 2007년 이명박 대선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백지화한 것을 지난 대선에서 재차 대선후보들이 영남권 표심을 노리고 약속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만 낭비했고 최대의 피해자는 결과적으로 대구경북이 됐다.

신공항 문제로 영남이 TK와 PK로 분열됐다면 사드문제는 온전히 대구·경북을 들끓게 만들었다. 지난 7월13일 정부는 사드 배치를 경북 성주에 하겠다고 밝혔다. 사드라는 날벼락을 맞은 성주 군민은 한 달여 동안 생업을 포기한 채 불볕더위 속에 반대 시위를 이어갔다. 군민 900여명이 삭발까지 감행하는 등 절박함도 내비쳤다.

급기야 박근혜 정부는 성주 인근지역인 성산포대를 대체할 제3부지를 검토해 금명간 발표할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직격탄을 맞은 TK민심은 사드배치 발표 후 조사한 박 대통령 직무수행평가에서 부정이 38%, 긍정이 52%였다.(한국갤럽, 9월22일)

이뿐만이 아니다. 9월12일 경주에서 발생한 진도 5.8의 지진 사태와 추석 전 진도 4.8의 지진에 추석 이후 연이은 여진으로 경북뿐만 아니라 대구지역까지 지진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신공항 무산과 사드 배치 등 연이은 정치권 악재에 설상가상으로 지진이라는 자연 재해가 TK지역에 발생하면서 민심을 더욱더 얼어붙게 만들었다. 9월22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 박 대통령은 TK지역에서 37.7%의 지지율을 기록해 전주 대비 11.9%로 폭락했다.

TK민심이 갈수록 악화되는 가운데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인사가 바로 김관용 경북지사다. 김 지사는 신공항이 무산된 다음날 “지역민들이 모두 허탈감에 빠졌다”며 “참으로 유감스럽다”고 정부 발표를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김 지사는 “김해공항 확장은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김해공항 확장이 국가 제2관문 공항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며 “앞으로 시도민의 여론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대응해 나가겠다”고 차분하게 대처했다.

반면 사드배치와 관련해선 ‘제3지대 공론화’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면서 정부가 제3지대를 검토할수 있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 김 지사는 8월16일 사드배치와 관련해 “정부는 더 이상 성산포대만을 고집해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며 “현장을 수차례 찾았던 저도 5만 군민의 삶이 지척에 있는 성산포대는 어렵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김 지사는 “이제부터는 주민 동의를 바탕으로 국가 안보를 지켜낼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을 찾는 일에 모두 나서 달라”며 그동안 수면 아래서만 거론돼 오던 성산포대가 아닌 제3후보지 검토 문제를 공론화해 관철시켰다. 현재 박 정부는 성주에서 제3후보지로 바꾸는 대체안을 마련중이다.

전국 17개시도단체장, 가장 바쁜 도지사

김 지사가 악화된 TK민심을 달래고 위기관리 능력이 빛나는 지점이 바로 경주 지진사태때다. 김 지사는 9월19일 기자회견을 갖고 ‘지진 대응 5개년 종합대책’을 발빠르게 발표했다. 지역 정가에서는 김 지사가 과거 구미시장 재임 시절 IMF 경제 위기로 붕괴되던 구미 경제를 살리고자 당적을 버리면서까지 시민들과 동고동락했고 시군 간 치열한 갈등으로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경북도청 이전을 큰 잡음없이 처리한 강한 추진력을 재가동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 지사는 이날 2021년까지 공공시설물 내진율을 현 35%에서 70%대로 대폭 끌어올리고 34%인 민간 건축물 내진율도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으로 50%까지 높인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또한 도내 지진 관측소를 23곳에서 40곳으로 확대키로 기상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도내 79곳에서 운영 중인 지진·해일 경보시스템을 150곳으로 확대하고 운동장, 공원, 공터 등을 대상으로 지정돼 있는 지진 대피소도 745곳에서 1000곳으로 확대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일회성 대책’, ‘전시성 대책’으로 전락하지 않게 하기 위해 김 지사는 ‘경북도 지진대응 포럼’, ‘경북도 지진대책위원회’를 상설화해 지진과 관련한 싱크탱크로 활용하겠다는 복안도 마련했다. 무엇보다 김 지사는 박 대통령에게 건의해 경주 지역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해 승인을 받았고 긴급 재난복구비용 30억도 경주시에 긴급 배정하는 등 신속하게 대응해 호평을 받고 있다.

사드배치 문제에 지진사태까지 연이은 지역 현안이 터지면서 김 지사가 전국에서 가장 바쁜 단체장이 된 배경이다. 김 지사는 추석 명절 당일에도 도청에 출근해 대책회의를 열고 다음날 16일에는 공무원 600명, 봉사단체 450명, 군장병 200명 등 민관군 1천250명을 데리고 현장 피해복구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또한 20일에는 경주 지진 현장을 방문한 박 대통령에게 피해 현황과 복구상황을 직접 브리핑했다. 지난 7월13일 성주 사드배치를 발표할 당시에도 성주군청으로 매일 출근하다시피했고 황교안 총리와 함께 미니버스에서 6시간30분 동안 갇혀 있기도 했다. 이에 지역 정가에서는 ‘현장에서 발로 뛰어 답을 찾는 도지사’로 평가 받고있다.

한편 TK지역의 연이은 악재 속에 김 지사의 위기관리 능력이 재평가받고 있지만 TK의 악화된 민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을 반드시 이뤄야 하는 집권 여당으로서 TK민심 악화는 여권에게 악재이자 야권에겐 호재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

현재 여권 내 유력한 대권 후보는 충청도가 고향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다. ‘충청대망론’을 등에 업고 내년 1월에 귀국하겠다고 밝히면서 ‘반기문 대망론’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주류 측에서는 반 총장의 대권 로드맵으로 ‘충청+TK구도’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반 총장 역시 지난해 5월 귀국할 당시 경북을 방문해 TK에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야권은 영남권 지역 출신 후보들뿐만 아니라 충청권 출신까지 즐비하다. 더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는 경남 거제 출신이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경남 창녕 출신 그리고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부산이 고향으로 3인 모두 PK출신이다. 충청도에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권 출마 선언을 사실상 한 상황이고 정운천 전 총리 역시 충청도가 고향으로 야권 잠룡군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TK지역은 ‘반기문 발 충청대망론’에 종속변수로 전락한데다 차기 대선에서 지지할 마땅한 인물이 없어 대권 소외감마저 느끼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세우는데 핵심 주류 세력이었던 대구·경북이지만 차기 대선에서 마땅한 후보도 내지 못하고 보조재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그나마 대구의 경우 유승민 의원이 ‘50대 기수론’으로 치고 나가고 있지만 비주류에 당내 세력이 전무하다. 김부겸 의원이 대구 출신이지만 더민주당 후보다. 부산의 경우 김무성 의원이 유일하고 역시 비주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TK민심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대권 후보를 내야 한다는 ‘TK 대망론’이 지역정가에서 확산되고 있다. 도지사에 내리 3번 당선됐고 사드 배치-지진 사태를 맞이해 보여준 김 지사의 ‘현장 중심의 위기관리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는 배경이다. 특히 반기문, 안희정 ‘충청 대망론’과 문재인·안철수·박원순·김무성 등 ‘PK 대망론’에 맞서 김 지사가 ‘TK대망론’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김관용, “국가, 국민 위해 어떤 역할도 맡을 것”

특히 사드배치, 지진사태 등이 장기적 악재로 갈 경우 내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전통적 텃밭인 TK마저 붕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고 TK지역 민심의 구심점 역할을 할 인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 지사 역시 동의하고 있다.

김 지사는 9월23일 <본지>와 가진 서면인터뷰에서 차기 대선에서 역할론이 나오고 있다고 하자 “저도 언론을 통해서 여러 차례 듣고 있다. 나라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고, 새누리당도 큰 위기를 맞다 보니 현장을 줄곧 지켜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보유했다고 보고 거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지금은 도지사 직분에 최선을 다하면서 대구·경북, 더 나아가 지방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김 지사는 “사회통합이라든지 갈등의 폭을 좁힌다든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고 에너지를 모을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이든지 피하지 않을 각오”라며 “그게 도민과 국민에 대한 도리이기도 한 것 같다”고 기회가 된다면 ‘TK 대망론’을 위해 대권 도전에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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