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중국, 고립 자초하는 대국…자국 기업의 대북 지원 사실 ‘몰랐다’?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중국이 또 한번 국제적 망신을 사게 됐다. 지난 7월 국제상설재판소(PUC)에서의 패소로 남중국해를 내해(內海)로 만든다는 야욕이 무산된 데 이어 중국내 기업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 개발을 도왔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들은 북한 핵 개발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온 중국으로서는 이번 사안으로 국제적 신용도에 더욱 큰 치명타를 입게 될 전망이다. 게다가 북한 핵실험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온 이유를 만천하에 드러낸 모양새여서 차후 운신의 폭 또한 대폭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더욱 가관인 것은 중국 정부가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발 빠르게 미국과 공조하며 수사하고 있다는 사실. 정부는 몰랐다는 것이다. 이를 믿을 국제사회는 없다. 교묘한 중국의 이중플레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일요서울은 마침내 드러난 중국의 이중성을 집중 분석하고 향후 전개될 동북아 정세를 진단했다.

 

중국의 북한 핵 개발 지원에 의혹을 제기한 주인공은 미국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과 중국이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물질을 북한에 수출한 중국의 기업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중국이 공조전상을 구축해 중국 내 한 여성기업가와 기업 집단의 돈줄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비영리 안보연구소인 C4ADS도 ‘중국의 그림자에서’라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 기업이 북한과 무역을 하면서 산화알루미늄 등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전용될 수 있는 품목을 수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미국의 수사망에 걸린 북한 핵 개발 지원

북한의 핵 개발을 지원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은 북한과 중국 국경 지대에 있는 랴오닝성 단둥시(丹東市) 무역회사 ‘훙샹(鴻祥)실업발전유한공사’.

WSJ에 따르면 이 회사는 우라늄 농축에 사용하는 원심분리기 개발에 필요한 금속을 북한에 제공해왔다.

훙샹이 북한과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무역 거래한 액수는 무려 5억3200만 달러(약 6000억 원). 2009년에는 북한의 국영 보험사인 조선민족보험총회사와 합작회사를 설립한 적도 있다.

훙샹의 대 북한 지원이 발각된 것은 미국 법무부 소속 검사들에 의해서다. 이들은 훙샹 그룹의 북한 지원 혐의를 포착한 뒤 지난 달 중국을 방문, 이 그룹의 여성 경영자 마샤오훙 회장의 범죄 사실을 중국 당국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마샤오훙과 훙샹그룹이 최근 5차 핵실험을 단행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유엔의 제재를 피할 수 있는 방법까지 북한에 제공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 나자 재빠르게 미국과 공조 수사

자국 기업이 북한을 돕고 있는데도 모른 척하고 있던 중국은 미국 측이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하자 마샤오훙과 그의 친척, 동료의 일부 자산을 동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고, 마샤오훙 등 11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 측이 요구한 이 회사의 자산 동결과 범죄 조사 관련 문서에 대해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이 실제로 북한의 핵개발에 연루된 중국 측 기업인들을 처벌할지 여부는 속단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중국의 예측 가능하지 않은 태도에 대비해 미 의회가 올 초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 조치 등이 포함된 법안을 근거로 해 훙샹을 자체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미국과 중국이 이처럼 공조 체제를 구축하며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 지원 기업을 단속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WSJ는 이번 조치가 북한 김정은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중국 기업들을 겨냥한 가장 진지한 대응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이 그동안 보여온 행태에 비추어볼 때 이번의 공조수사는 중국이 할 수 없이 수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중국이 훙샹 그룹의 대 북한 지원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지원한 국가는 중국이라는 설이 많았다.

미국의 핵폭탄 전문가 토마스 리드(reed)와 대니 스틸먼(stillman)은 공저 ‘핵특급’을 통해 “북한이 최첨단 농축시설을 자체 개발했을 리 없다”며 특정 집단 또는 정권이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적극 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드와 스틸먼은 그 특정 국가로 중국을 지목했다. 특히 스틸먼은 북한이 중국의 원폭 설계도를 개량한 설계도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수출용’으로 만들어진 중국 설계도가 북한을 비롯해 파키스탄, 리비아, 이란에 넘어갔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또 “중국이 파키스탄에 핵폭탄 설계에 대한 정보를 건네주고, 파키스탄은 북한과의 미사일-핵 기술 교환협정을 통해 북한의 노동 미사일을 수입하는 대가로 농축 우라늄 기술을 북한에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북한 제재 관련 이중 처신은 계속될 듯

결론적으로 말해 중국이 북한을 포기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중국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조치와 관련,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패권주의를 꿈꾸고 있는 중국은 그 동안 미국의 ‘중국 고립’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서진(西進)을 꿈꾸었으나 중동 지역으로의 길목에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복병이 가로막고 있어 좀처럼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을 계획한 미국이 최근 철군을 전격적으로 중단한 것은 중국의 서진을 막겠다는 전략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미국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는 세계 4위 군사대국 인도는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한 데 이어 최근에는 중국 국경 지역에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대거 배치했다. 또 지난달에는 미국에 군사기지를 개방하는 군수보급 협약까지 맺었다.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패권 확장을 막기 위함이다.

인도의 이 같은 움직임에 베트남과 필리핀도 동참하고 있다.

베트남은 지난해 6월부터 주요 항구에 미국 군함들이 정박할 수 있게 했으며 미 해군 탐사선의 다낭 항 탐사 활동도 허용했다. 미국, 베트남 군인과 해양경찰은 정례적으로 훈련과 작전을 같이 하기로 했다.

필리핀은 1993년 미군 기지를 철수시켰으나 올 1월 8개 군사기지를 미군이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고립 정책에 이들 국가들이 협조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 같은 주변국가들의 공조에 당황한 중국은 남중국해를 내해로 만들어 이 지역의 부존자원은 물론 핵잠수함의 태평양 진출로(進出路)를 확보하려 했다, 이른바 중국의 동진(東進) 정책이다.

그러나 PUC의 결정으로 그 의도가 꺾여 민족적 자존심에 큰 손상을 입고 말았다.

게다가 한국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 소식은 중국에 결정타로 작용했다. 사드는 북한 핵 미사일 방어용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군사전략에 대응한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계의 약점을 보완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의 사드배치에 극도로 민감하면서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중국의 동진 정책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북한이다. 북한마저 놓치게 될 경우 중국은 완전히 미국에 포위되는 형국을 맞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북한 제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최근 북-중 접경 지역을 돌며 무역 종사자들을 만나고 온 세종연구소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이 “유엔 제재로 잠시 주춤했던 북-중 교역은 제재 이전보다 더 왕성하며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엔 금지 품목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한 부분을 주목해 볼 때,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북한을 지원하는 중국의 이중적 처신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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