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당의장 체제’ 출범 후 순항하던 열린우리당이 잇단 악재로 흔들리고 있다. 야권의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의 경선자금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또한 거부 의사를 뚜렷하게 나타내고는 있지만, 무차별 ‘폭로전’이 될 가능성이 큰 대선자금 청문회에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을 경우 우리당이 내세우는 ‘개혁’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당의 지지도는 지난 설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발표될 대통령 친인척비리 특검결과는 물론, 세간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 ‘민경찬 펀드’ 등으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커지면서 우리당 내부의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테일러넬슨소프레스(TNS)에 의뢰해 지난 2일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결과, 열린우리당이 여전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압도하며 계속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일 총선이 실시된다면 어느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겠는가’란 질문에 열린우리당 26.9%, 한나라당 19.5%, 민주당 15.1%, 민주노동당 7.9%, 자민련 1.8%, 무응답 28.8% 등이었다. 올해 들어 TNS는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의장이 선출된 다음날인 1월 12일을 비롯해, 1월 16일, 1월 27일, 2월 2일 등 4번에 걸쳐 총선 정당 지지도를 조사했다. TNS의 4차례 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은 25.8%, 25.2%, 27.7%, 26.9% 등이었고, 한나라당은 19.6%, 20.8%,20.6%, 19.5% 등으로, 두 정당의 지지도는 정체 상태였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9.3%, 13.3%, 12.7%, 15.1% 등으로 최근들어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를 보였다.그러나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세어 나오고 있다. 정체된 지지율도 문제지만, 자칫 우리당이 개혁정당이 아닌 ‘부패정당’으로 낙인찍힐 우려가 큰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사돈 민경찬씨의 사모 펀드 조성 의혹과 관련, 촉각을 곤두세우며 골치를 앓고 있다. 우리당 이미지 퇴색을 우려해 노 대통령의 입당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또한 참여정부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통해 청와대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정면돌파’의 승부수를 던질 것이란 관측도 그래서 나온다.실제 우리당은 이미 ‘민경찬 펀드’와 관련 ‘청와대 책임론’을 거론하며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선 상태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최근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대통령 사돈이라고 행동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히다”며 “민씨가 대통령 친·인척이라며 행세할 수 있는 상황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는지, 민정수석실에서 민씨의 행태를 사전에 알지 못했는지, 국민들은 궁금해 한다”며 청와대의 대통령 친·인척 관리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대통령 주변 의혹에 대해 감싸는 듯한 자세를 취해온 우리당이 오히려 이처럼 청와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은 사실 이례적인 일이다.분명 우리당으로서는, ‘한화갑 파동’을 계기로 민주당을 이탈했던 호남의 전통적 지지층이 재결집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실이나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가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우리당 앞에 놓인 난관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민주당은 지난 2일 “검찰이 노 대통령과 정의장의 경선자금 수사에 착수하지 않을 경우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청와대 민정수석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히는 등 경선자금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게다가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지난 5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지난해 11월28일 당대표 경선을 위해 본인이 쓴 경선자금은 기탁금 6,000만원을 포함해 모두 9,887만 2,030원이었다”고 전격 공개하기도 했다.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는 상황에서 조 대표가 스스로 3년여전의 경선자금까지 공개한 것은, 노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에 대해 도덕적 우위를 선점하고 이들의 경선자금 공개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뿐만 아니라 안상영시장 자살 파문도 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권 공략을 노려 온 우리당에는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노무현 정부와 우리당을 반신반의하는 영남민심에 역풍이 일 수도 있다.이에따라 우리당 안팎에선 “정쟁은 야당에 맡겨두고 오로지 민생과 경제만 챙기겠다”는 구호만으로는 떨어져나가는 민심을 붙잡기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더욱이 우리당의 불안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당내 일각에서는 김근태 원내대표의 우리당 탈당설까지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현재의 정의장 체제로 인해 우리당 내부에서 김대표의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견해다.결국 ‘대권의 꿈’을 품고 있는 김 대표로서는 ‘포스트 노무현’으로 굳어지고 있는 정의장이 자신의 행보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와 관련, 정치권 한 인사는 “최근 일련의 사태로 인해 김대표가 동요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며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결과나 청문회 상황 등을 지켜본 후 우리당 탈당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고, 탈당 후 민주당으로 복당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민주당 복당설’까지 제기했다. 이 인사는 “민주당 한 전대표 사태와 관련 김홍일, 정범구 의원이 잇따라 복당하는 등 좋은 여건이 조성되고 있고, 김대표 역시 민주당 복당의 경우 대권후보가 마땅치 않은 민주당에서 크게 잃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의 배경을 설명했다.이와 관련, 김대표의 한 측근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며 “여권을 분열시키기 위한 야권의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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