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하지의 남침 우려 무시… 6·25 당일도 상황 잘못 봐

남한 자위력 부여 꺼려…美의 對한반도 전략 큰 차질 초래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韓國戰)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오판(誤判)해 미국(美國)의 대(對)한반도 정책(政策)에 큰 차질을 빚게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클린턴 전(前) 미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1994년 12월 중순 당시 공개된 한국전 관련 미 합참 극비문서 등에 의해 밝혀졌다. 이들 문서에 따르면 맥아더는 지난 1947년 5월 북한(北韓)의 남침(南侵) 가능성을 예견한 하지 장군의 보고를 무시했을 뿐아니라 심지어 6.25 발발 당일에도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맥아더는 또 지난 49년 1월 북한이 남침할 경우 한국군이 이를 저지하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남한(南韓)이 충분한 자위력(自衛力)을 갖도록 하는 게 미국의 정책 목표가 아님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미 합참은 지난 49년 6월 한국이 전략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현지에서 미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는 판단을 내리기까지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韓半島) 상황에 대한 맥아더의 오판은 지난 47년 5월 11일 그가 본국(本國)에 보낸 극비(極秘) 전문(全文)에 확실히 나타나 있다. 미 합참 및 국방부 핵심 지휘부 인사들에게 두루 읽힌 전문의 내용은 이렇다.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한 하지 장군의 우려에 공감하지 않는다…그가 북한군의 규모와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 했다는 판단이다…”

맥아더는 이어 두 사람 간의 판단이 이같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지 장군이 자신의 견해가 본국에 보고되길 원하는 이유 하나 때문에 전문을 보내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맥아더의 오판은 한국전 발발 한 해 전에도 계속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51년 2월 12일자 미 합참 극비문서는 이렇게 전한다.

“맥아더 장군은 49년 1월 19일자 전문에서 한국군이 남한 내 소요(騷擾)를 충분히 진정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강조했다…그러면서도 그는 북한이 남침할 경우 한국군이 대응하기 힘들 것으로 내심 판단함을 시인했다. 장군은 그러나 남한이 충분한 자위력을 갖도록 하는 게 미국의 정책 목표가 아님을 지적했다”

이 합참 문서는 또 맥아더가 당시 전문에 계속 이렇게 쓴 것으로 전한다.

“북한이 남한을 침략할 위험은 없다…남한이 북한에 위협스런 존재가 아닌 한 소련은 별 소득이 없을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남한이 북한 점령을 시도할 경우 보복 조치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맥아더의 이같은 판단은 49년 6월 21일 열린 미 하원 외교위 청문회에서도 미 합참 지휘부의 공통된 견해로 되풀이된다.

청문회에 출석한 미 육·해·공군 최고 지휘관들은 “현 시점에서 주한미군(駐韓美軍) 철수(撤收)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한결같이 “그렇다”고 대답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맥아더의 오판이 미 합참의 대(對)한반도 군사 전략 수립에 결정적인 차질을 빚게 했음이 확인된 순간이다.

맥아더는 6.25 발발 당일에도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있던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일본(日本)에 있던 미 정치 고문이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긴급 극비 전문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 시간으로 25일 밤 9시 발신된 전문에 따르면 맥아더는 이날 저녁 6시 도쿄에서 전문 발송자를 포함한 미국 인사 3명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군사 행동이 ▲전면전(全面戰)이 아니며 ▲소련이 배후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남한이 승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남침 개시 약 14시간 후의 일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전문 발송자가 맥아더의 이같은 판단을 전해 들었으면서도 상반된 내용을 보고했다는 점이다.

전문은 “…남한이 침략을 저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소련(蘇聯)의 군사 행동을 자극하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미군이 투입돼야만 할 것으로 믿어진다”고 전하고 있다.

당시 민간 외교관의 판단이 미 극동군사령부를 책임지고 있던 맥아더보다 훨씬 정확했던 것이다. 한편, 미 합참이 51년 4월 28일자로 미 극동군사령관에게 보낸 대외비 전문은 미국이 6.25 발발 직전 북한군의 병력 이동 내용을 담은 북한 작전 명령서 2건을 확보했음을 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문제의 북한군 비밀 문서는 북한 보병 4사단 참모장이 50년 6월 18일자로 낸 정찰 명령서이며 또 하나는 이 부대 사단장이 6월 22일자로 낸 것으로 나타나있다.

이 전문은 특히 “22일자 명령서의 경우 4사단이 의정부를 거쳐 서울로 진격할 것이라면서 23일까지 공격 준비를 완료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은 “한국어로 기록된 이들 2건의 명령서가 북한이 남침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의 명령서(命令書)들이 언제, 어떤 경로로 미군(美軍)에 입수(入手)됐으며 미 작전(作戰)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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