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계 양갑(兩甲)으로 불리는 DJ의 핵심측근 권노갑 전고문과 한화갑 의원이 벼랑끝에 서있다. 정치대변혁이란 명분으로 포장한 냉정한 권력의 법칙앞에서 이들 동교동 좌장은 속수무책이다. 권 의원은 이미 구속됐고 한화갑 의원도 지난 대선경선 때 불법자금 수수의혹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황이다. 국민의 정부를 열기까지 30년간 한국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던 동교동계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지난 몇 달간 치욕적이었다.”지난달 30일 동교동 좌장 한화갑 민주당 의원이 몰락의 위기 앞에서 토로한 심경이다. 검찰 소환에 불응하며 일부 의원들과 함께 당사에서 밤샘 농성을 하던 자리에서였다. 재야 출신인 심재권 의원이 “그동안 애타게 당을 지켜온 한 전대표에게 보복정치가 말이 되느냐”고 목청을 돋우자 침묵을 지키던 한 전대표가 자신도 모르게 울분을 내비친 것. 농성장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김옥두·박양수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도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한 의원은 본인이 살아온 삶의 방식이 이렇게 종말을 고하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며 그의 착잡한 심경을 전했다. 한 의원은 민주당 대선후보와 대표 경선 당시 10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29일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황. 공교롭게도 이날 권노갑 민주당 전 고문도 현대그룹에서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1심 공판에서 법정 최고형인 징역 5년에 추징금 200억원을 선고 받았다. 권 전 고문은 “이건 아니다. 하늘이 알 것”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미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였지만 그의 구속은 가뜩이나 불안한 동교동계를 자극할 수 있는 악재였다. 한 의원마저 구속되면 동교동계는 그야말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한 전 대표의 낙마는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민주당에도 심각한 위기다. 그동안 조순형 대표를 중심으로 청와대의 정치자금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 집중했던 전략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의 수도권 출마선언을 계기로 지지율 회복을 도모했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DJ 이후 호남맹주를 자처하던 그의 ‘상징성’ 때문에 그나마 결속이 유지됐던 호남지지층이 와해될 수도 있다. 현대건설로부터 3,000만원 수수 혐의를 받고 있던 박광태 광주시장은 이날 첫 공판에서 이례적으로 법정구속되는 등 호남이 벌써 흔들리고 있다. DJ 아들인 김홍일 의원이 탈당했다 복당한데 이어 정범구 의원도 복당한데는 이같은 배경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한 의원는 최근 앞날을 예상한 듯 “상인들이 자기자본을 지키면서 장사를 해야 이득을 남기는데, 민주당은 자본을 버리고 있다”며 호남 해체를 걱정했다. 이처럼 동교동계의 잇단 악재를 놓고 동교동계 인사들은 ‘음모론’을 제기한다. 신당의 등장과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어렵게 하는 정치 환경에서 음모론의 실체를 유추한다.

이른바 권력 핵심부의 ‘총선용’ 음모론이다. 노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문제에 대한 검찰 수사시점에 양갑을 전격 구속해 물타기를 시도하고 총선에 대비한 호남권 장악을 노리고 있다는 게 시나리오의 줄기다.이같은 음모의 근저에는 민주당 대선주자 경선을 거치며 동교동 신구파 등 여러 세력간에 벌어진 파워게임의 후유증이 자리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인제 전고문을 중심으로 한 세력을 형성했던 권 전고문과 측근들은 이 파워게임에서 결과적으로 완패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신주류 주변으로 이동했고, 나머지 인사들은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한 의원은 이들의 중심에 서서 재기를 노리다 끝내 신권력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운명에 직면했다.

권 전고문의 구속은 본인의 정치생명을 마감하는 계기로 작용할 듯하고 한 의원도 2선 후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권 전고문은 더 이상 재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측근들 주변의 평가다. 40여년 김 대통령의 자금관리인과 리틀DJ로 활동한 업보가 오늘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 의원의 경우 그냥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게 대체적 관측이다. 게다가 검찰이 작정하고 수사할 경우 여권도 강력한 후폭풍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관계자가 “검찰수사를 놓고 야당탄압 공방이 일면서 당시 경선에 참여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경선자금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은 2002년 3월부터 4월 28일까지 계속된 대선후보 경선을 완주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돈을 쓴 것으로 정치권에 소문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특히 돈을 가장 적게 쓴 것으로 알려진 김근태 의원이 그해 3월 말까지 쓴 비용이 6억원을 육박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경선자금의 하한치를 대충 추측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경선자금에 관한 제도가 없기 때문에 홍보, 기획비용 등 여러 가지 것들을 합법의 틀 속에서 할 수 없었다”고 시인한 바 있고, 정 의장도 2002년 김근태 당시 민주당 고문의 최고위원 경선자금 모금 고백과 관련해 ‘자신도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으로부터 2,000만원을 지원받았다’고 고백했다.

민주당 정오규 부산시지부장은 “노 대통령은 후보 경선을 앞두고 2001년 11월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1,800명의 전국 지구당 당직자를 모아 1박2일 연수를 했다”며 “당시 경비로 3,900만원이 들었고 겨울용 파카 1벌씩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동영 의장도 2000년 최고위원 경선, 2002년 대선후보 경선, 열린우리당 경선을 치르며 부산에서 초등학교 친구라는 K통신 대표 J씨가 정 의장을 위해 부산 원외지구당 위원장과 사무국장 등을 상대로 식사제공 등 지원활동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법조인 출신의 정치권 한 인사는 “현행 선거법에는 당내 경선비용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이 없지만, 한 전 대표처럼 신고되지 않은 정치자금을 받은 경우에는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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