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살생부 검찰 전달설한화갑 민주당 전대표는 지난달 30일, 하이테크 하우징과 관련된 검찰수사가 ‘우라당 입당 거절에 대한 보복수사’라며 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다.검찰이 대선자금 유용에 대한 수사 고삐를 죄면서 여의도 정가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게다가 서울지검 특수2부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도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대우건설 비자금 조성사건과 관련 조사를 받았던 하이테크하우징 박문수 회장이 검찰조사 당시 대우건설과 하이테크하우징 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의원 90여명의 명단을 검찰에 제출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여기에 거명된 정치권 인사들의 줄소환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하이테크하우징 박문수 회장이 검찰에 ‘살생부’를 전달했다는 설과 관련, 전달시점을 두고 여러 가지 말이 나돌지만 대략적인 시점은 지난달 초로 추정된다.서울지검 특수2부(채동욱 부장검사)는 지난달 8일 대우건설이 하도급 업체를 통해 조성한 100억원 가량의 비자금중 일부를 정치권에 뿌린 단서를 포착하고 주상복합아파트인 하이테크하우징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한편 이 회사 실소유주인 박 회장을 긴급 체포해 조사를 벌였다.당시 검찰은 하이테크하우징이 1999년 국민은행과 대한석탄공사 등이 소유하고 있던 대우트럼프월드 부지를 수의계약으로 사들인 뒤 대우건설과 함께 아파트 분양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잡고 박 회장을 추궁했다.

이 과정에서 박 회장이 검찰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 혹은 자의적으로 자신과 대우건설로부터 돈을 받은 의원들의 명단을 검찰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이는 최근 서울지검 특수2부와 서울지검으로부터 대우건설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불법 대선자금과 연관된 사안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안대희 검사장)의 ‘거친’ 수사에서도 확인된다.서울지검특수2부는 지난달 30일 대우 트럼프월드 시행사인 하이테크하우징으로부터 6억여원을 수수하는 등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민주당 한화갑 전 대표를 전격 소환, 조사를 벌였다.물론 검찰의 한 전대표 전격 소환조사는 김원길 한나라당 의원의 진술을 바탕으로 했다는 정황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살생부’를 근거로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견해다.실제 이에 앞서 굿모닝시티 사건 등과 관련 이미 구속된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 역시 하이테크하우징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정의원은 지난 2002년 3월 민주당 대표 경선때 경선자금 명목으로 1억 5,000만원을 받고, 같은 해 10월 대선자금 명목으로 5,000만원을 받는 등 박씨로부터 모두 2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또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박상규 한나라당 의원의 경우 지난 2002년 대우건설과 하이테크하우징으로부터 모두 2억4,000만원을 건네 받은 뒤 이를 당에 입금하지 않고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이밖에 서정우 변호사(15억원), 송영진 의원(2억원) 등 여야를 막론한 인사들이 검찰의 대우건설 수사 과정에서 이미 구속됐다.하지만 검찰의 하이테크하우징과 대우건설 비자금 사건에 대한 ‘강도높은’ 수사는 이미 구속된 정 의원, 그리고 한 전대표 등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박 회장의 배경과 인맥은 90여명에 달하는 ‘살생부’ 명단에 대한 온갖 추측을 낳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은 전남 신안군 출신으로 DJ,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비롯, 동향인 한화갑 전대표 등 동교동계 인사들과 상당한 친분이 있다”며 “결국 그를 통해 정치자금을 전달받은 정치권 인사가 한 두명이 아니라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전했다.특히 특혜의혹 등을 불러왔던 트럼프월드 아파트와 강원랜드 공사 수주 및 시공 과정에서의 구여권 인사 개입 및 자금 수수설과 관련, 정치권에서는 박모 의원 뿐 아니라 아태재단 출신의 정치인들 역시 이 살생부에 포함돼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실제 박 회장은 1985년까지 20년 가까이 동교동을 드나들면서 동교동 인사들과 친분을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나 동교동계 출신인 박모 의원과도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더욱이 박모 의원의 부인이 하이테크하우징의 이사로 등재됐던 사실도 그 친분관계를 확인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

이 회사 등기부에는 박모 의원의 부인 윤모씨가 2000년 6월~2001년 2월 이사로 재직한 것으로 돼 있다.사실 박 회장을 둘러싼 의혹은 재력이 빈약했던 박 회장의 여의도 트럼프월드의 부지 매입과 1,300억원대의 트럼프월드 건설 과정에 특혜가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핵심이다.박 회장은 현재 트럼프월드가 들어선 200억원대의 대한석탄공사의 여의도 사옥 부지를 98년 11월 매입했는데, 당시 계약금만 낸 상태에서 분양을 완료해 분양대금으로 잔금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DJ정권 후반기 박 사장과 트럼프월드를 둘러싼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지난 2002년 국정감사 때 처음 하이테크하우징 관련 의혹을 제기한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은 당시 “국민은행과 대한석탄공사가 99년 대우트럼프월드 부지를 박 회장 쪽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각종 특혜를 줬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조희욱 자민련 의원은 “석탄공사 역시 시가 400억원의 아파트 부지를 박 회장 쪽에 215억원의 헐값에 팔았으며, 박 회장 쪽은 중도금을 치르기도 전에 분양을 하는 등의 특혜 속에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한 전대표와 같은 의혹을 사고 있는 한나라당 김원길 의원 역시 “2002년 4월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경선 당시 한 전대표와 호형호제하던 박모회장이 “경선자금을 대겠다”고 해 한 전 대표가 출마했다”고 한 전대표와 박회장의 관계를 설명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도 “박 회장이 한 전대표를 직접 만나 ‘돈을 줄 테니 뜻을 펴시라’고 경선 출마를 부추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또 “대표 경선 직후인 2002년 5월초 당 사무총장 재직 당시 재정난 타개를 위해 박 회장에게서 10억원을 빌렸다가 10여일 뒤 갚았다”고 밝혀 박 회장과 구 여권의 관계를 짐작케 하고 있다. 현재 검찰은 하이테크하우징이 지난 98년 말부터 석탄공사와 국민은행으로부터 트럼프월드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 등에서 김 의원 등 정치인을 상대로 금품 로비를 하고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의원은 국민회의 정책위의장과 보건복지부 장관,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2002년 대선 직전 민주당을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한편 박 회장의 ‘살생부’와 관련해 검찰 주변에서는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미뤄 하이테크하우징은 옛 여권의 ‘비자금 창구’ 구실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한 의원과 정 의원 외에 다른 여권 출신 의원들의 금품수수 혐의가 드러날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어찌 됐건 박회장이 검찰에 제출했다는 정치권 90여명의 살생부는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이에 대해 박 회장은 “검찰이 3개월 이상 조사해 자료를 다 가지고 있었고, 수표추적을 다 해 놓아 할 말이 없었다”며 “아는 의원들 후원회 할때 100만원 정도 준 것 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살생부’설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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