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금융권력…지금은 눈치 보기 급급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이광구 우리은행장·이덕훈 수출입은행장·민유성 전 산업은행장·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등’ 이들 4인방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서강대 출신 금융인사라는 점이다.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멤버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권력으로 이들을 통하면 금융계에서는 못하는 일이 없다 했을 정도로 이들이 가진 파워는 막강했다.

하지만 이들의 최근 모습은 ‘한때’와 상반된다. 이광구 행장을 제외한 세 명은 대규모 부실과 구조조정 사태를 불러온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다.

서금회 출신 인사들 대다수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다.
서금회의 대표적 인사인 이덕훈 수출입은행장과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 등은 최근 조선해운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검찰수사 대상에 오르거나 청문회와 국감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궁지에 몰렸다.

이 중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초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한계기업을 엄정히 구조조정하고 부실여신과 파업효과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조선·해운업에 대한 부실관리로 산업은행과 함께 책임론에 휩싸여 지난 11일 국감에 출석해야만 했다.

이 자리에서 이 행장은 조선·해운업 부실관리를 비롯해 늦어진 혁신안 등에 대해 국회의원들로부터 따가운 질타를 받았다.

특히 성동조선의 주채권은행이자 최대주주로 경영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성동조선이 조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적자 수주 허용 물량을 과도하게 상향 조정해 적자 경영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달 열린 조선·해운 산업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 이른바 ‘서별관회의 청문회’에서 산업·수출입 등 국책은행의 부실한 내부통제 시스템이 지적되기도 했다.
또한 부실에 놓인 성동조선에 7200억 원대의 특혜 지원을 한 점도 논란이 됐다.

자금지원이 결정됐던 당시 성동조선은 7척의 배를 수주할 것으로 보고했지만 실제 4척에 불과했고, 올해는 24척을 예상했으나 1척도 수주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재무실사 보고서가 엉터리로 작성됐음에도 수출입은행이 ‘눈을 감아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다. 결국 외부 인사의 한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검찰 조사 이유로 불출석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과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도 한진해운과 대우조선해양 비리와 관련해 책임 추궁이 이어지고 있다.

홍기택 전 회장은 3년간 산은 회장으로 재임하며 산은 자회사인 대우조선이 5조 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산은 실적이 동반악화될 것을 우려해 분식을 묵인했다는 분석이 따른다. 지난해 10월 일명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에 4조여 원의 산은 자금을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도 그의 회장 재임 때다.

게다가 그는 한국 정부가 4조3000억 원을 부담하고 확보한 AIIB(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부총재 자리를 날리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AIIB 부총재로 근무하면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우조선 사태의 책임을 정부에 돌리거나, 휴직계를 내고 잠적한 뒤 AIIB 총회에 불참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으로 물의를 빚었다.

현재 홍 전 회장은 지난달 산은 국감과 기재위의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에서도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출석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6월 AIIB 부총재에서 사실상 경질된 이후 해외를 떠돌고 있다.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은 조만간 검찰이 소환할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민 전 행장에 대한 소환 일정이 잡히면 뉴스컴이 대우조선과 홍보 계약을 맺은 과정에 민 전 행장이 개입했는지, 박수환 뉴스컴 대표가 민 전 행장에게 남상태 전 사장 연임 관련 청탁을 했는지 등을 추궁할 예정이다.

앞서 박 전 대표는 민유성 전 산은 행장을 상대로 남 전 사장의 연임을 청탁하는 대가로 대우조선으로부터 홍보 컨설팅비 명목의 돈 21억3400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민 전 행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자금난을 해결해주겠다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11억 원 상당의 금품을 챙긴 혐의도 있다. 박 전 대표가 이끌던 뉴스커뮤니케이션이 산은과 맺은 컨설팅 계약이 민 전 행장 취임 직후 1년간 집중됐다는 의혹도 있다.

민 전 행장은 관련 의혹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서금회 출신의 이경로 한화생명 부사장은 지난 2015년 퇴임하고 고문으로 물러났으며, 김병헌 KB손해보험 대표이사 역시 2015년을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입지 좁아진 ‘서금회’

정은상 전 BNK 자산운영 전무도 2015년 퇴임했다. 채우석 우리은행 부행장은 9월 임기가 만료되는 등 다수의 서금회 인사들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다.

반면 이광구 우리은행장 정도만 제 역할을 하는 서금회 인사로 꼽힌다.
이 행장은 우리은행이 어려운 상황에 취임해 실적을 개선한 데다 우리은행 민영화도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연임 푸른 신호등을 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후반 레임덕을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금융인 모임인 ‘서금회’ 출신 인사들이 정권 초기 금융계 요직을 두루 차지했지만 정권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힘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덕훈 행장이나 홍 전 회장 등은 부임 초기 서금회 출신 낙하산이라는 논란에 ‘낙하산인지 아닌지 여부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낙하산 인사가 실패할 확률을 좀 더 높다는 점을 보여주고 말았다”며 “최근 금융권에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고 있는데 이런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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