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2016년에도 여풍이 계속 불 것으로 보인다. 각계 분야에서 여성이 리더 자리에 오르는 일이 계속 늘고 있다.

그동안 여성들의 사회 활동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란 의미의 ‘유리천장’에 가로막히는 일이 많았다. 능력과 자격을 갖춰도 고위직으로의 승진이 차단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대통령, 여성 CEO, 여성 임원 등 유리천장을 깬 주인공들이 늘어나면서 ‘여풍당당(女風堂堂)’이란 신조어도 나타났다. 이에 일요서울은 여성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주인공들을 살펴봤다. 이번호 주인공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다.


꼼꼼함·치밀함 돋보인 기획력…평판 좋아
아버지 타계 후 가업 승계…앞날도 주목

정지이 전무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다. 업계는 정지이 전무를 사내 소통과 뛰어난 경영능력을 겸비한 인물로 꼽는다.

특히 정지이 전무는 직원들과의 격의 없는 소통을 통해 사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무에서는 꼼꼼함과 치밀함이 돋보인다. 기획력과 추진력, 우수한 어학 실력까지 겸비한 그는 릴레이 마라톤 대회, 경복궁 돌보기 운동 등 사내외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지이 전무는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연세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미국 광고회사를 다녔다. 당시 정 전무의 꿈은 ‘광고쟁이’였다.

‘광고쟁이’ 꿈 버리고
가업을 잇다

그러나 2003년 정지이 전무의 인생이 뒤바뀌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친 정몽헌 현대그룹 전 회장의 타계다. 정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그룹을 이어받은 현정은 회장마저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자 현 회장은 장녀인 지이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를 도와 현대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정지이 전무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광고쟁이’의 삶을 버리고 가업을 이어받아야 했다.
정 전무는 2004년 1월 현대상선 재정부 사원으로 입사해 첫 근무를 시작했다.

2005년 대리를 거쳐 회계부 과장을 지낸 뒤 2007년 현대상선 기획지원본부 부본부장(전무)으로 승진하며 현대상선 임원명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경영지원본부 부본부장을 거친 뒤 줄곧 사장실장 자리를 지키며 경영노하우를 배웠다.

경영승계를 위한 수업이 보직 중에 이뤄졌으리라는 분석도 나왔다. 2014년부터는 글로벌경영실장(전무)으로 보직을 옮겼다.
현 회장의 든든한 비서 역할을 도맡으며 정 전무는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과 만나도 기죽지 않는 담대함을 보였다.

정지이 전무의 존재감이 가장 돋보였던 것은 바로 ‘대북사업’이었다. 2005년 어머니와 함께 대북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면서 커다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방북을 통해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친분을 쌓으며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나 대북 관광사업과 개성공단마저 중단되면서 현대아산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해운업 불황 등으로 회사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11년여 만인 지난 6월 정 전무는 회사를 떠나게 됐다.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현대상선에서 몸담았던 현 회장의 장녀 정지이 현대상선 글로벌경영실장과 차녀 정영이 현대상선 차장이 최근 퇴사 절차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지이 전무는 그동안 겸직해 온 현대유앤아이 전무 자리만 지키게 됐다. 정영이 차장도 현대상선에서 현대유앤아이로 이동했다.
그에 앞서 현정은 회장은 지난 3월 현대상선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로써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은 현대상선과 현대그룹 오너가의 모든 인연은 끊어지게 됐다.

한편 정지이 전무는 2011년 9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비공식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은 외국계 투자금융그룹 맥커리 투자은행에서 근무하는 세살 연상의 신두식씨로 친구가 소개해 만난 것으로 알려진다.

신두식씨는 고 신현우 전 국제종합기계 대표와 신혜경 전 서강대 일본학과 교수의 차남으로 두 집안끼리는 이미 알던 사이였다.
범현대가 친인척과 정재계 관계자 등이 참석해 두 사람을 축복했다. 여느 재벌가의 결혼식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이 결혼식에는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다고 재계 호사가들은 말한다.

화합의 아이콘서
그룹 재건, 효녀될까

경영권 분쟁으로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며 관계가 소원해진 범현대가 일원이 결혼식에 집합해 재화합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그간 현대가는 계열 분리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형제간 복잡한 갈등관계가 형성돼 있었다.

특히 정 전무의 어머니 현정은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형제의 난’으로 이미 불편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설 인수와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을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여기에 정상영 KCC명예회장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노렸다.

현 회장이 뚝심으로 버텼고 이때 얻은 별명이 현다르크였다. 그러나 균열만이 계속됐던 현대가에 정지이 전무의 결혼을 기점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매각입찰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낸 소송을 모두 취하하면서 논란이 될 만한 사건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이에 재계는 정지이 전무가 또다시 현대에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견한다. 그에게 현대그룹 주력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그룹을 재건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게 주변의 목소리다. 따라서 정 전무의 앞으로의 행보에도 이목이 쏠린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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