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큰 아들의 조기 유학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다. 정 의장의 큰 아들은 매년 수천만원이나 되는 수업료를 납부해야 하는 미국의 명문 사립고에 재학했던 것으로 확인돼, ‘위화감 조성’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 의장 큰 아들의 유학문제는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에도 잠깐 언급됐던 내용이다. 물론 정 의장 큰 아들의 유학이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지도자의 ‘도덕적’ 측면에선 이런 저런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일요서울>에선 정 의장 큰 아들의 유학 내막을 취재했다. 정동영 의장의 큰 아들은 D외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 2001년, 미국 보스턴의 명문 사립고인 브룩스 스쿨(Brooks School)로 유학을 떠났다.

브룩스 스쿨은 1926년 그로튼 스쿨(Groton School)의 설립자이자 교장인 리버렌드 에디코트 피바디(Reverend Endicott Peabody)에 의해 설립된 학교로 코치윅(Cochichwick) 호숫가에 위치, 251에이커의 캠퍼스에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싱글룸과 더블룸으로 구성된 12동의 기숙시설을 갖추고 있고 매주 3회 정도 담당 의사(School doctor)가 학교를 방문, 진료하는 등 학생들의 건강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350여명이 재학중인 이 학교의 유학생 비율은 12%정도이고 미국인 학생은 대다수 미국 동부지방 출신이다.특히 졸업생 대다수가 보스턴대(Boston University), 하버드대(Havard University) 등 미국내 유명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명문사학이다.문제는 미국에서도 사립 중·고등학교는 중상층의 자제들만 다닐 정도로 비싼 학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브룩스 스쿨의 수업료는 기숙학생의 경우 1년에 5만1,150달러, 통학생은 3만1,090달러에 달한다. 최소 연간 한화로 3,700만원에서 6,100만원 가량이 드는 셈.정 의장 큰 아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기숙사비를 포함해 수업료는 6,100여만원, 일반적인 생활비까지 송금했을 경우 대략 연간 7,000~ 8,000만원 정도의 교육비가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이와 관련 모 유학원 관계자는 “외국인은 미국 공립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며 “부모가 유학, 상사근무, 또는 공무로 파견 온 경우 주재기간 동안은 공립학교에 보낼 수 있지만, 그 체재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사립학교로 옮겨야 한다. 미국의 사립고등학교들의 대부분은 주립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보다 학비나 생활비가 훨씬 더 든다”고 말했다.

물론 정 의장은 큰 아들의 유학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당시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특파원으로 나가 있었는데 그래서 아이들이 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다”며 “그런 경험 때문에 고등학교를 진학한 뒤 유학 보내달라는 요구를 했는데, 끝까지 막지를 못 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정의장은 또 “전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정치적 짐이 된다는 점만 생각했다면 아들을 보내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아버지의 정치적인 입지 때문에 아들을 좌절시킬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그러나 이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다르다. 국내 공교육이 파탄 지경에 이르렀고, 국민들은 경제난으로 허덕이고 있는데 한 정당의 대표이며,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매년 수천만원을 써가며 아들을 유학 보냈다는 사실에 위화감이 든다는 게 요지다.

회사원 김모(36·서울시 마포구 상수동)씨는 “사회적 특권층이라는 위화감을 느낄 뿐”이라며 “아들은 외국에 유학을 보내놓고 교육문제에 대해 운운하고, 청년실업이 이렇네 저렇네 말한다는 것 자체가 웃을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또 대학생 이모(24·서울시 송파구 잠실동)씨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아들을 만류하지 못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정치인이기 때문에 아들을 설득하고 또 교육개선에 앞장섰어야 한다”며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국민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조기유학’을 앞장서서 홍보하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이밖에 정모(27·서울시 양천구 목동)씨는 “아들의 유학문제에 대해서 정후보는 차마 자신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아들의 뜻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하는데 언뜻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좀 더 넓게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며 “정 의장의 아들은 사회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조기유학을 간 셈인데 현재 교육이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대한민국 많은 고등학생이 유학을 가겠노라면 그때 정 의장은 무슨 근거로 이들을 달래겠나. 아들 한 명 설득하지 못한 후보가 어떻게 전국민을 이끌어 가겠나”라고 성토했다.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열린우리당이 개혁을 외치고, 서민층을 대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구성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며 “정 의장 아들의 조기유학 문제도 그런 시각에서 보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이 관계자는 또 “국회의원 봉급으로 어떻게 수천만원이나 되는 교육비를 감당하는지도 의문스럽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의장의 측근은 “정 의장 역시 큰 아들의 유학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불편해 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둘째아들 역시 유학을 가겠다고 해 난감했다고 한다”고 전했다.이 측근은 또 “큰 아들의 경우 정 의장이 미국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아들이 캘리포니아에서 학교를 다녔었기 때문에 그때의 좋았던 느낌이나 정서가 많이 남아 있었고, 더욱이 스스로 유학시험을 치르고 스카웃된 뒤 집에 알린 것이라 억지로 막진 못한 것으로 안다”며 “또 학비의 경우 정 의장이 18년간 방송인 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돈과 퇴직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 의장이 큰 아들의 유학문제에 있어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수년전부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조기유학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데 있다.현재 교육부의 규정상 중학교 졸업생에 한해 조기유학이 허용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유학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 일부지역에서는 중학생 자퇴자 수가 지난해에 비해 70%이상 증가했고 이 가운데 상당수의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등 중고생 유학붐은 그칠 줄 모르고 있다.우리나라 조기 유학 바람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미국 내 사립 중·고등학교 유학생 비율을 살펴보면 실감할 수 있다. 유학원 관계자 등 전문가들은 “미국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이 30명이라면 10~15명이 한국인인 것이 보통”이라며 “교육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이 유학 대상국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비교적 교육비가 미국보다 저렴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주요 유학 대상국”이라고 전했다.전문가들은 또 “한국 유학생이 몰려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나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등의 지역에서는 한 반에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한국인 학생이 워낙 많아서 수업 진행이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며 “또 현지로 유학 온 한국 학생들 중 탈선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곳 사람들은 한국인들을 ‘3등족’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 의장의 큰 아들은 ‘본인이 원했던 만큼’ 학업에 열중했고, 대학 진학 시 미국내 10개 대학에 합격할 정도로 수재인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정 의장의 큰아들이 다닌 브룩스 스쿨의 경우 SSAT 1,150점 이상을 받아야 하고 입학시 면접을 볼 정도로 입학규정이 까다롭다.또한 미국의 사립고는 교사진, 학과수, 특별 활동, 진학률, 학생 자체 평가, 입학 경쟁률 등의 기준에 따라 여러 등급 (tier) 으로 나뉘어 있는데 브룩스 스쿨은 그 중 최고 3등급 안에 속하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이공계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스탠퍼드대학 진학을 선택했다고 정의장 측은 전했다. 그러나 ‘아들의 뜻을 꺾을 순 없었다’고 토로했던 정 의장의 말은, ‘조기유학’이라는 치명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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