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논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과거 아홉 번의 헌법 개정 중에서 가장 잘된 헌법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87년 체제 헌법’이 이제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이 정치의 난맥상을 ‘헌법 탓’으로 돌리고 개헌을 전가의 보도(傳家寶刀)로 흔드는 것은 마치 목수가 연장을 나무라는 격이다.
선진 국가들도 우리와 똑같이 복지 문제, 저출산과 고령화, 청년실업과 양극화 등 국가적 난제들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당과 의회의 무능을 탓하지 헌법을 탓하지 않는다. 작금의 개헌논의는 풍전등화(風前燈火)의 대한민국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묘약(妙藥)으로 둔갑한 느낌이다. 그러나 개헌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인식은 위험하다. 87년 헌법의 결함보다는 낡은 정치구조를 깨지 못하는 정치권의 기득권 안주와 무능을 탓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때문에 개헌논의에는 대(大)전제 조건이 요구된다. 첫째, ‘제왕적인 국회 권한’의 축소와 남용방지가 선행돼야 한다. 둘째, 국민통합을 위한 선거제도 개편과 정치관계법을 정비하는 정치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셋째, 그 동안 켜켜이 쌓인 민주정치와 국가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요소들을 찾아내서 바로잡아야 한다. 이 후에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개헌의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형태는 대통령중심제임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누리는 의회정부제(議會政府制) 형태를 띠어가고 있다. 1987년 헌법은  당시 민주화 열기에 억눌려 국회에 인사 동의권, 예·결산 권한과 국정조사 및 국정감사 등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많은 견제 장치를 도입했다. 그러나 정작 국회 해산권 등 국회에 대한 감시와 견제 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상임위가 소관 사항에 대해 상시적으로 청문회를 열게 한 ‘365일 청문회법’ 등이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실패한 사례에서 나타났듯이 국회는 입법권을 남용해 국회의 권한을 더욱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위헌법률과 잘못된 정치 관례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지천에 깔려 있다. 
무엇보다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지 않으면 법률 하나 통과시킬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국회선진화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반민주화법’이고 ‘야당결재법’이다. 이러한 위헌 입법은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 또한 상임위원장직을 여야가 나누어 가지는 것은 독일 같은 연립정부제를 채택한 나라 외에는 없기 때문에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다수당의 책임정치를 위해 의석이 한 석이라도 많으면 상임위원장직을 독점하도록 바꿔야 한다. 
현행 헌법을 기초했고 한국헌법학회장을 역임한 원로 헌법학자 장석권 교수는 “의회가 정치적으로 권력을 독점하고 권력분립을 위한 견제권과 균형권을 남용함으로써 사회전체가 혼란에 빠진다”고 주장하며, “인사청문회제도는 연방제도에서 오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만든 미국에만 있는 특수한 제도이다. 의원내각제에서 국회가 선발하는 국무총리도 토론 없이 가부(可否)만으로 결정되는 것만 보아도, 우리의 인사청문회제도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특별검사제도도 미국을 제외하고는 시행 사례가 없는 것이다. 검찰제도를 고치려면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특별검사 제도를 검찰과 중첩적으로 두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정부조직법 제29조는 ‘행정각부의 수를 12부 이상 20부 이내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각부의 수와 구체적인 명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해야 새로 당선되는 대통령이 정책구상에 따라 행정각부의 명칭과 수를 자유롭게 정하고 신속하게 정부를 출범시킬 수 있다”고 문제점과 해법을 지적한다.
이처럼 개헌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그 대전제가 되는 잘못된 법률과 제도 및 관행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해소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해야 국민의 개헌 열망을 응집해낼 수 있다. 헌법의 목적인 기본권이나 수단인 권력구조 개편 논의는 그 다음 문제다. 
MIT 경제학과 교수 대런 애쓰모글루와 하바드대 정치학과 교수 제임스 A. 로빈슨은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부국으로 가는 결정적 요인은 지리적, 인종적, 기후적 조건이 아닌 바로 제도적 요인이었다’고 주장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화로 전진하느냐, 정체로 퇴보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향후에 논의되는 개헌은 대한민국이 진정한 부국이 되기 위한 조건인 ‘포용적인 제도’의 마련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개헌의 목적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통일실현, 국민행복 증진에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과 기득권층만을 위한 정치·경제·사회제도가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공평하고 합리적인 제도 마련을 위한 논의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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