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적자만 6조…분산 개최 거부한 평창도 예고된 빚더미에 고심

▲ <뉴시스>
급증하는 비용에 反 아베 진영 포문 열어…IOC 분산개최 카드로 압박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고심하는 가운데 최근 도쿄올림픽 분산개최설이 알려지면서 일본 현지를 비롯해 올림픽위원회(IOC) 내부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도쿄올림픽은 당초 계획보다 4배가량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최근 올림픽 개최 기피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제는 축복이 아닌 저주로 전락한 올림픽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지난 18일 일본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들은 일본이 도쿄만에 건설을 계획한 ‘우미노모리 수상 경기장’에서의 경기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를 고려해 IOC가 2020년 도쿄 하계 올림픽 조정·카누 경기를 한국에서 분산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는 취임 60일을 맞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지난달 공사비로 491억 엔(약 5333억 원)에 가까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우미노모리 수상 경기장 건설을 중단시키면서 촉발됐다.

고이케 지사는 조정·카누 경기장이 기존 69억 엔(약 749억 원)보다 7배 이상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며 약 300km 떨어진 미야기현의 나가누마 보트장을 활용하는 쪽으로 계획 변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이날 일본 도쿄를 방문해 고이케 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조정 경기를 한국 충주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흐 위원장은 2014년 12월 발표한 올림픽 개혁안인 ‘어젠다 2020’에 따라 막대한 비용 부담으로 올림픽 개최 신청을 철회하는 사태를 막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열기 위한 차원에서 개최국 밖에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에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조정·카누경기의 분산 개최지 후보로 한국이 떠오른 데는 충주 탄금호에 위치한 경기장은 국제조정연맹(FISA)의 규격을 충족한 국내 유일 국제 조정경기장으로 2013년 세계선수권을 비롯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 등 국제대화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도 갖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경기장 문제 등 올림픽 개최 문제 등에 대해 고이케 지사와 회담을 가졌다”면서 “양측의 협의에 난항이 생길 경우 한국 개최 방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 이들은 “후보지로 거론되는 탄금호국제조정경기장은 교통편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조정관계자들로부터 수개월만 여유가 있으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코스로 평가 받는다”고 전했다.
충주 탄금호국제조정경기장 <뉴시스>

막대한 소요 예산
분산 개최 촉발

물론 이 같은 분산 개최 움직임에 대해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한체육회 측은 “아직 이와 관련해 IOC나 도교올림픽조직위원회로부터 공식적인 협조 요청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나중에 공식 요청이 있다면 내부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2년 전 IOC가 평창동계올림픽 분산 개최를 언급했을 때 우리가 강력 반대한 적이 있다. 일본도 올림픽이라는 거대행사를 한국에 나눠주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지 여론도 분산 반대에 힘을 실으며 뜨거운 감자로 달궈지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20일 후지 TV의 아침정보 프로그램인 ‘메자마시TV'가 지난 19일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일본인들의 95%가 분산개최에 대해 반대한다고 보도했다.

또 일각에서는 일본 내에서 비용 문제를 이유로 IOC의 분산개최 안을 받아들일 경우 경제 대국이라는 일본의 체면을 구길 수 있다는 여론이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내 정치구도
불안감 부채질

 
이런 가운데 도쿄올림픽 분산 개최설은 일본 정치세력 간의 내부 대립이 한몫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지난 7월 31일 치러진 일본 도쿄도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고이케 신임 지사는 8선 의원을 지낸 저널리스트 출신 정치인으로 대표적 ‘고이즈미 키즈’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고이케 지사가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 때 다른 후보를 지지하면서 아베 신조 정권의 눈 밖에 난 상황이다. 이에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자민당은 다른 후보를 내세웠지만 홀로 출마한 고이케 현 지사가 승리하면서 껄끄러운 관계가 형성됐다.

일본의 중심부인 도쿄도를 반 아베 인물이 차지하면서 일본 중앙정부의 계획에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우선 고이케 지사는 ‘개혁과 공개’를 기치로 들고 나와 기본 올림픽 준비 방식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도쿄도 조사팀은 지난달 29일 “개최 비용을 추산한 결과 3조엔(약 32조 원)이 넘었다”며 비용 절감을 위해 시설 변경 등 계획의 대폭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개최 비용이 3조 엔을 넘어 도가 당초 계획했던 7340억 엔(약 8조 원)을 훨씬 초과한다”고 중앙정부에 맞서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올림픽조직위원회를 중심으로 대회를 준비하던 아베 정부에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아베 정부가 경비 절감을 목적으로 추진하던 정비 예정지 도쿄도 내 3개 경기장을 도교도 밖에 있는 시설로 변경하자는 수정안을 내놨다.
 
이 정비안에는 집권 자민당 주류파의 이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고이케 지사는 이를 빌미로 자민당 주류파에 대한 견제구를 날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욱이 그는 도쿄올림픽조직위원장인 모리 요시로가 “경기장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부정적으로 언급한 것에 대해 “조직위원회에 어떻게 보고할지는 지금부터 종합적으로 생각하겠지만 부채를 시민들에게 떠넘길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처럼 분산 개최를 두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결론을 내리기까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더불어 고이케 지사가 내놓은 미야기현 경기장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도쿄와 거리가 멀고 동일본 대지진 당시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지역과 가까워 IOC에서는 꺼리는 것도 변수로 남아 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뉴시스>
사라진 올림픽 특수
개최 신청도 줄어
일본 내부문제를 떠나 최근 불거지고 있는 올림픽 개최 저주도 한몫하고 있다. 올림픽 개최는 과거 개최 도시뿐만 아니라 개최국의 국력과 위상을 과시하는 무대로 평가받았다.

여기에 올림픽 특수를 통해 많은 개최지들이 실질적인 경제·문화적 혜택을 마련한 것도 큰 매력이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서 성공신화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

올림픽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1996년 미국 애틀란타올림픽 이후 많은 도시들이 올림픽 유치에 총력전을 펼치며 개최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최근 “리우올림픽을 치른 브라질이 60억 달러(약 6조7000억 원)에 이르는 적자를 봤다”고 보도했다. 또 2014 소치동계올림픽의 경우도 동계올림픽 최대 규모인 약 54조 원을 투입했지만 대부분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올림픽 얘기가 나오면 해당 도시, 국민들이 반기를 드는 ‘올림픽 포비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2024년 하계 올림픽 개최 후보였던 이탈리아 로마는 최근 시의회 투표로 개최 반대안을 통과시켰다.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은 “1960년 올림픽 개최로 진 빚을 아직도 갚고 있다. 올림픽 개최할 돈으로 대중교통이나 쓰레기 등 로마의 일상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로마뿐만 아니라 미국 보스턴, 독일 함부르크도 내부의 강한 반대로 개최 신청을 철회했다.

이에 따라 2017년 개최지가 결정되는 2024년 하계올림픽은 파리, 로스앤젤레스, 부다페스트 등 3곳만 후보에 올라 있다.

IOC 존립기반 흔들
원칙도 바꾼다

도쿄올림픽 분산 개최설도 이 같은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 평창동계올림픽 결정 당시만 하더라도 단일 도시 개최가 IOC 불변의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원칙을 버린 건 존립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다.

실제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대륙 순환 개최’라는 암묵적인 불문율을 깨고 평창과 같은 아시아인 베이징(중국)으로 결정된 것도 오슬로(노르웨이) 등 유럽 도시들이 환경 훼손과 막대한 비용 부담을 이유로 유치 의사를 철회하며 벌어진 결과다.

즉 IOC가 올림픽 유치 활동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바흐 위원장도 올림픽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개혁안인 ‘어젠다 2020’을 마련해 개최 도시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더욱이 IOC는 시기적으로 늦어 평창대회를 ‘어젠다 2020’ 시험 사례로 삼지 못했던 아쉬움을 최근 비용 문제가 불거진 도쿄올림픽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는 움직임도 관찰돼 어떤 결론을 이끌어낼 지에 체육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개최까지 2년여 남겨둔 평창올림픽도 대규모 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7월 20일 감사원이 공개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준비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평창올림픽조직위는 재정계획에서 총 수입과 총 지출을 각각 2조2731억 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 사업비는 적게 책정하고 수입을 늘려 잡은 것으로 드러나 실제 2244억 원의 사업비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평창올림픽도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적자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경기 후 경기장 활용방법을 놓고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해 평창군과 강원도에는 큰 부담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IOC가 당초 제시했던 평창 분산개최를 수용했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전해진다.

물론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지만 도쿄올림픽 한국 분산 개최로 물꼬를 튼다면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한 번 쓴 뒤 사용도가 떨어지는 슬라이딩 센터를 새로 짓는 대신 평창을 활용하는 등 한·중·일 모두 개최 부담을 줄이고 상생을 모색해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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