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이대·서강대·중앙대…갈등 빚는 상아탑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본관 앞에 시흥캠퍼스 철회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학교와 학생 간 목소리 제각각…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지적

학생을 중요한 ‘협의 파트너’로 인식해야…과격 농성도 자제 필요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대학 내 캠퍼스가 학생과 학교 측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화여대 사태에서부터 서울대 시흥캠퍼스 추진 문제, 서강대 남양주캠퍼스 설립 갈등, 중앙대 학과 구조조정 문제 등 대학 곳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학교 측의 의사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촛불집회나 단식농성, 본관 점거까지 하고 나섰고, 학교 당국은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특히 서울대는 최근 ‘학생 사찰’ 논란까지 일면서 투쟁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추진에 반대하며 지난 10일 본관을 점거한 후 무기한 농성을 하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이 대학 본부를 점거한 것은 2011년 대학 법인화 반대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이들은 지난 8월 22일에 체결된 경기도 시흥시와 서울대 간의 시흥캠퍼스 실시협약에 반발하며 총장실 항의 방문과 천막농성을 벌이다 본관 점거에 돌입했다.

소수 인원만의 행동은 아니었다. 점거에 앞서 서울대 학생 2000여명이 참가한 학생총회에서 약 75%(1500여명)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설립에 반대했고,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본부 점거’를 하자고 뜻을 모았다. 현재 학생대책위원회는 매일 저녁 촛불집회를 열어 집단 반대의사를 표하고 있다.

시흥캠퍼스 조성 사업은 캠퍼스에 글로벌 복합 연구 단지를 만들어 AI(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 분야 등 첨단 벤처사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학생대책위원회 측은 이번 실시협약이 학생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체결됐다고 주장한다.

학생대책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에도 똑같은 사안으로 갈등을 빚으며 천막 농성을 벌였다. 그 때 농성을 해체하면서 합의한 것이 학교와 학생이 참여하는 대회협의체를 구성해 한 달에 한 번 대화를 갖겠다는 것이었다. 총학생회 출신 4학년 이동현씨는 “이후 간헐적으로 열리던 대화협의체는 최근 1년여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면서 “게다가 실시협약을 맺기 전 대화협의체를 열겠다고 약속했던 학교는 체결 당일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며 학교 측의 불통을 비판했다.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조성으로 인해 등록금 인상에 대한 우려도 제기한다. 이시헌 학생대책위원회 위원은 “1조 8000억 규모의 사업에서 현재 4500억 원 정도가 마련돼 학교가 나머지 금액을 충당하기 위해 등록금을 올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며 “또 산학협력을 통한 기부금을 받게 되면 기업 입맛에 맞는 학문만 육성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외부 세력 개입 의혹?

최근에는 ‘학생 사찰’ 논란도 있었다. 지난 8월 30일 학생들이 실시협약에 반대해 총장실 항의 방문 과정에서 내부 책상에 학생 명부가 발견된 것. 해당 명부에는 학생 11명의 소속 대학과 학과, 이름, 학번, 지도 교수 등이 적혀 있었다. 학생대책위원회 측은 “과거 ‘민간인 사찰’ 기억이 떠오른다”며 “학교가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단적으로 드러났다”며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학교 측에 따르면 지난 5월에 열린 이사회에서 일부 학생들이 난입해 총장에게 위협을 가하는 등 위험 행동을 했다. 당시 학생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 ‘사회변혁노동자당’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학내 대자보에도 사회변혁노동자당 서울대지회라는 이름이 있었다. 해당 명부는 이를 알아보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학교 관계자는 “처음 들어보는 정당인 데다 위협적인 행동을 보여 정체 파악 차원에서 알아봤던 것”이라며 “학생들의 개별 정치 성향을 알아보기 위한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우려에 대해 “시흥캠퍼스 조성은 부지 66만 2,009㎡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시설지원금 등 4,500억 원을 지원받을 예정이기 때문에 학교 측 부담은 거의 없다”며 “등록금 인상 계획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 학교 측은 시흥캠퍼스 조성 계획을 두고 학생들과 꾸준히 소통했다고 주장했다. 학교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진행된 추진위원회에서 총학 학생(이전 집행부)이 참여해 관련 내용을 공유해왔다”면서 “이 외에도 각종 간담회, 토론회 등을 통해 의견 수렴을 위한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업은 2007년부터 서울대의 ‘장기발전계획’에 따라 추진돼온 것”이라면서 “10여년 동안 서울대 주도로 진행해온 사업을 전면 철회하는 것은 서울대학교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에 전면 철회는 힘들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본관 앞에서 학생들이 남양주 캠퍼스 이전 문제 해결과 이사회 구조 개편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청년서강 비대위 페이스북)

이대, 서강대, 중앙대도…

최근 이화여대는 이슈의 중심에 섰다. 평생단과대학 설립 반대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투쟁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대 부정입학과 학사 특혜 의혹이 불거져 대규모로 번졌다. 지난 19일 최경희 총장은 사퇴했지만, 교수들과 학생들은 여전히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어 이로 인한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대 교수협의회 등은 학교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지난 17일 성명서를 냈다. 학교가 안성캠퍼스로 학생정원 이동을 원안대로 예술대학 정원 대신 생명공학대학에서 추진하려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학생정원 이동은 학교가 본·분교 통합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 교육부로부터 받은 행정지침에 따른 것이다. 교수협의회와 생공대 교수들은 인문사회계열을 축소하고, 공대를 키우겠다는 학교의 일방적인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서강대도 제2캠퍼스(남양주) 조성 사업을 두고 이사회와 학생들 간 의견이 충돌했다. 3년 전부터 계획해오던 남양주 프로젝트를 지난 7월 이사회가 돌연 사업을 보류시킨 것. 이사회는 재정 상황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이유로 들었지만, 학생들은 왜 이제야 재정 검토하느냐며, 근본 문제는 예수회가 이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상적 의사 구조에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유기풍 총장이 이사회의 전횡에 반발하며 사퇴하기도 했다. 단식 농성을 이어가던 학생들은 최근 이사회와 면담을 통해 이사회 구조 개편·캠퍼스 설립기획단 학생감사 추가 등을 협의하며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학이 중요한 사안을 협의하는 데 있어서 학생들을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 점이 학내 주요 갈등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배상훈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등교육이 보편화 단계에 들어서면 대학의 주인공이 교수에서 학생으로 바뀌는데 이를 대학 당국이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하지만 학생들의 의사 표현 방식이 ‘점거’여야 하느냐는 고민해봐야 한다”며 “서로 합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규칙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학교와 학생 모두 더 성숙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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