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꿈꿨던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미래라이프대학 무산’ ‘정유라 특혜제공 의혹’ 등으로 어수선했던 이화여대가 최경희 총장의 사퇴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2개월이 넘도록 계속된 재학생들의 시위에 졸업생, 교수들까지 참여하면서 사퇴불가로 맞섰던 최 총장이 결국 총장직을 내려놨다. 130년 전통을 가진 이화여대에 최연소 총장으로 ‘혁신’을 외치며 화려하게 부임했지만 뜻을 펼치기도 전에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미래라이프대학 사업 추진으로 시작된 학생 시위가 발목 
사퇴불가로 맞섰지만 제대로 된 능력 발휘 못하고 사퇴  
 

최경희 총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이화여대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템플대학교 대학원에서 물리학 석사와 과학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수로 이화여대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이다. 이후 2005년에는 학생처 처장, 2010년에는 연구처장, 산학협력단장을 맡았으며 2013년에는 사범대학 학장을 맡았다.

최 총장의 능력은 정치권에서도 인정받았다. 그는 노무현정권 시절 대통령 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고 2014년에는 박근혜 정부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통일교육자문단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총장이 된 뒤로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최경희 총장
정치적 희생양?

최경희 총장이 사퇴를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두 가지다. 재학생들의 시위를 촉발시킨 미래라이프대학 사업 추진과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특혜 의혹이다.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은 최종 포기를 선언해 문제가 어느 정도 봉합됐었다. 문제는 뒤이어 터진 정유라 씨 특혜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며 이화여대를 넘어 국내 사회·정치분야로까지 확대됐다. 

두 가지 사건이 최 총장 사퇴의 결정적인 이유지만 일각에서는 최 총장이 정치적인 희생양이라는 여론도 있다. 특히 정유라 씨 특혜 의혹에 대해서는 최 총장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정황도 아직 밝혀진 바는 없다. 

국감 등에서 정 씨 모친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와 K스포츠, 미르재단 등에 대한 야당의 집중공세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검찰 측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자 상대적으로 공격하기 쉬운 이화여대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불통 논란 사과
학생들 학업 복귀 요청

최경희 총장은 퇴진과 함께 19일 이화 구성원에게 보내는 글을 남겼다. 이화여대 홈페이지에 공개된 ‘총장직을 사임하면서 이화의 구성원께 드리는 글’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느낀 그의 소회를 알 수 있다. ‘이화여대의 혁신’을 꿈꿨던 최 총장의 아쉬움이 담겼다. 

최 총장은 공개된 글을 통해 “돌아보면 지난 2년여간의 시간은 이화를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제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힘들면서도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라며 “제가 최선을 다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학교만 바라보면서 힘든 대내외적인 환경을 이겨내며 함께 해주신 교직원 선생님들과 동문 여러분 덕분이었고 자랑스러운 우리 이화의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학생들 시위의 단초가 된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추진에 대해 “지난 7월 28일 평생교육단과대학(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추진으로 야기된 학생들의 본관 점거 및 시위가 아직까지 그치지 않고, 최근의 난무한 의혹들까지 개입되면서 어지러운 사태로 번져 이화의 구성원과 이화를 아끼시는 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 “‘미래라이프대학’은 4년제 정규 단과대학으로서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자 한 건학이념과 섬김과 나눔이라는 이화정신의 구현을 위해 추진했던 사업이었지만,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하고 소통에 부족함이 있었다”라며 불통 논란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아무런 준비와 계획 없이 추진한 사업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다만 구성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그러면서 최 총장은 “이제 총장직 사퇴를 표명하오니, 본관에서 아직 머물고 있는 학생과 졸업생들은 바로 나와서 본업으로 돌아가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린다”며 학생들의 학업 복귀를 요청했다. 

체육특기자 수업 관리
이화여대만의 문제 아냐

최경희 총장은 정치권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정씨 관련 체육특기자 특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 총장은 “입시와 학사관리에 있어서 특혜가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라고 밝혔다. 또 “지금까지 제기되어 왔던 여러 의혹들에 대해서 학교로서는 최대한 사실에 입각하여 해명해 드린 바 있다. 다만, 앞으로 체육특기자 등의 수업관리를 좀 더 체계적이고 철저히 하여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혜는 없었지만 체육특기자에 대한 수업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한 것이다.

사실 체육특기자에 대한 수업관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화여대뿐만 아니라 체육관련학과를 갖고 있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정도의 차이일 뿐 비슷한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체육특기자 수업관리에 대한 문제가 수차례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각 대학들과 교육부가 제대로 시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정 씨의 모친이 최순실 씨가 아니었다면 특혜의혹은 논란이 되지도 않았고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 최 총장이 정치적인 희생양이라는 여론이 등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기회에 교육부와 각 대학들은 체육특기자에 대한 수업관리 문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나의 이슈거리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이번 정유라 씨 특혜와 관련된 유사한 사례가 타 대학에서도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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