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미(美) 행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5천여 건의 문서를 토대로 해방 후 1965년까지의 한미(韓美)외교관계를 정리한 책이 지난 1992년 출간됐다. 국무부 한국과장을 역임한 도널드 맥도널드 미(美)조지타운대학 교수는 “해방에서 자립까지의 한미(韓美)관계 : 20년의 기록”이라는 제목의 이 저서(著書)에서 당시 비밀로 분류됐던 각종 문서를 통해 양국간의 외교비사를 소개한 바 있다.

“1953년 중반 존 덜레스 당시 국무장관은 국가안보회의(NSC)가 휴전협정후 한반도에서 미국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주의깊게 연구해야 된다”고 제의했다. 덜레스 장관의 재가를 얻은 53년 6월 16일자 국무부 정책 보고서는 “통일(統一)되고 중립화된 한반도를 확보하는 것이 미국의 국가이익에 부합되고 미국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보고서는 남한을 미국의 군사동맹으로 묶어두고 한반도를 무한정 분단을 유지하는 방안과 실질적으로 남한이 변하지 않은 채 한반도를 중립화하는 방안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후자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미국의 목표가 될 수 있다고 건의했다.

“독립적이고 통일된 한반도는 항상 미국의 정치적 목표였다. 이같은 목표는 한반도의 중립화를 통해 성취될 수 있다. 중립화의 결과로 초래될 한반도에서의 미군기지의 포기는 미국에 결정적인 이해관계가 되지 않는다. 전면전이 일어날 경우 한반도를 방어하려는 기도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내부 반란이나 간접적인 침략의 위험성은 적절히 한국군과 경제지원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일본(日本)의 안보는 압록강과 두만강 외부로 공산군이 철수함으로써 유리하게 된다. 또 한반도 철수로 인한 미국의 힘의 축적은 다른 지역에서 자유세계의 군사적 입장의 강화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국무부 극동국이 국무장관에게 보낸 비망록에서 언급됐듯이 이같은 조치는 “한반도에서 정치적, 군사적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이 보고서는 언급했다.(돌이켜 보면 중립적이든 아니든 간에 남한이 실질적으로 변치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의 통일이 현실적이라고 간주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러나 당시의 관점은 지금과 달랐다)

합참은 중립화를 목표로 설정하는 것에 반대했다. 6월 30일 국방장관을 대신해 국가안보회의에 보내는 비망록에서 합참은 미국의 대(對) 한반도 목표는 다음과 같이 달성될 수 있다고 건의했다.

“통일되고 자주적이고 반공적인 한반도를 통해 미국의 목표는 달성될 것이다. 이같은 목표가 실현될 때까지 미국은 극동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효과적이며 시의적절하게 한국을 지원할 수 있다. 이같은 자세는 적절한 한국군의 유지와 지원을 포함한다”

여기에다 합참은 미국의 계획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자유진영과의 유대를 통해 이점을 얻을 수 있는 본보기로 한국을 설정하는 데 기여해야 하며 북한주민들이 반공적인 한반도를 지지할 수 있도록, 북한에서의 불만과 불안을 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7월 2일 정책기획참모팀의 로버트가 국방차관에게 보내는 비망록에서 정리했듯이 합참이 중립화 목표에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논리였다.

1. 공산주의자들이 이를 수락하지 않을 것이다. 2. 공산주의자들이 중립 합의를 준수하지 않을 것이다. 3. 미국과 유엔의 위상이 손상을 입는다. 4. 독일, 오스트리아, 인도지나에 대한 위험한 전례가 될수 있다. 5. 미국의 전략적 불이익이 될 것이다. 6. 미국의 군사공약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53년 7월 7일 국가안보회의의 최종 보고서는 중립화된 한반도 통일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그 입장을 일부 변경시켰다.

“남한이 실질적으로 변화되지 않은 채 중립화된 한반도 통일을 확보하는 것은 미국의 국가이익에 합당하며 목표가 돼야 한다. 그 같은 목표는 미국 군대와 기지를 한국으로부터 철수하는 데 합의하고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지 않는 댓가로 공산주의자들이 한반도 통일에 합의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같은 목표는 통일된 한반도가 남한의 주도하에서 영토적,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고 한국의 유엔가입과 외부의 침략에 대해 한국이 방어를 할 수 있는 것들을 포함해야 한다.”

미국이 남한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휴전협정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미국의 양보안이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중립화 주장은 행정부의 승인을 받은 직후 모든 타당성을 잃은 것이 됐다. 이(李) 대통령 자신도 중립화에 반대했다.

7월 로버트슨 차관보와의 협상에서 李대통령은 만족할만한 정치적 해결을 위한 3개월간의 협상시한을 설정하고 이 시한 후에는 한국군의 북진을 명령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에따라 휴전 후의 두 가지 우려가 부상했다. 만약 한국군이 북진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공산군이 휴전협정을 위반하고 도발을 재개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국가안보회의는 10월 22일 보고서에서 한국군의 일방적인 군사조치 가능성에 대해 “모든 가능한 조치들이 너무나 위험해 한국군이 그 같은 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국무부와 국방부는 그같은 대전제에는 합의했으나 국무부는 필요할 경우 유엔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이(李) 대통령을 위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국방부는 그 정도의 태세는 갖추지 못했다.

국방부는 필요하면 한국 지도자들을 “보호 감금”할 것을 주장했으나 국무부는 필요한 근거 없이 그 같은 조치를 취할 경우 지도자들에 대한 지지만을 규합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은 당시 닉슨 부통령이 11월 한국을 방문하는 배경이 됐다. 이 방문을 통해 닉슨은 이(李) 대통령으로부터 “그가 전쟁을 일으키는 도박을 벌여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하는 데 우리를 개입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문서를 얻어내게 했다.

북한의 도발 재개에 관해서도 국무부와 국방부의 기본적인 의견차이가 드러났다.

합참은 그 같은 경우가 발생할 경우 원자탄과 대규모 공습, 지상군과 해군력의 공동 추가작전으로 공산군의 전력을 파괴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적이 공격력을 가질 수 없도록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국무부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 성명” 채택이 (참전 16개국 중의 하나인) 당시 영국의 처칠 총리와 그 내각에 의해 반대를 받아왔다고 주장하고 최종 결정된 대로 성명이 압록강 주변 만주 비행장에 대한 폭격 가능성과 적기에 대한 “적극적인 추적” 정도를 포함하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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