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내 말 잘 들으세요. 도덕적인 이유를 들어 황희를 잘라야 한다면 우리가 먼저 옷 다 벗어야 돼요. 젊은 날의 실수만 패륜이랍니까. 개인적 약점 악용해 정적을 자르려고 한 거, 이것도 관원으로서 저지르지 말아야할 패륜입니다. 그렇지 않소이까, 병판?…일이 터지기도 전에 먼저 술수부터 부리려고 하니 금상과 또한 젊은 관원들이 우리 중신들 모두를 꼰대 취급하는 겁니다. 위험천만하고 한 때 부도덕했다고 해도 난, 황희는 꼭 중용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대하드라마 ‘대왕세종’ 57회에서 예조판서 허조가 황희의 조정복귀를 막으려는 병조판서 조말생을 나무라는 장면이다. 비록 드라마적 요소가 많이 들어있긴 하지만, 개인적 약점을 악용해 정적을 자르려고 하는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그의 일갈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드라마에서 황희는 개인적 허물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청문회를 간신히 통과한 후 세종의 기대에 부응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실제로도 황희는 당시 각종 의혹에 시달렸으나 왕의 신임 덕에 18년간이나 영의정 자리에 있으면서 조선시대 명재상의 반열에 올랐다.


황희는 운이 좋았다. 그가 지금, 이 시대 청문회에 선다면 아마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도덕적 잣대가 조선시대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서, 황희와 같은 인재가 등용되지 못하고 낙마하게 된다면 국가로서는 참 안타깝지 않을까.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발전 좀 더뎌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안 된다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오해하지 마시라. 필자는 도덕적으로 흠이 좀 있다 해도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라면 중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을 따름이다.


도덕적 흠결 때문에 능력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재들은 참으로 많다. 이들이 세종시대에 있었다면 아마도 중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뇌물죄를 범한 조말생을 유배지로 보낸 뒤 2년 만에 불러올렸던 그가 아닌가. 골치 아픈 함길도 문제를 해결할 적격자로 조말생만한 인물이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미래라이프대학 사업 추진과 최순실의 딸 특혜제공 의혹 등으로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자리에서 물러난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의 경우도 그렇다. 정치권에서 능력을 인정받을 정도의 인재로 이대 역사상 최연소 총장이 되었지만  ‘혁신’의 큰 뜻을 펼쳐보기도 전에 낙마하고 말았다. 그에게서 딱히 지적할 만한 도덕적 흠결이 드러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또 어떤가. 야당, 특히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국정감사장에서 감사대상도 아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퇴임 후 대선 출마 관련 질문들을 쏟아냈다. 잠재적 정적의 대선 출마 여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질문 내용이 참으로 유치했다. 이들은 70년 전에 유엔총회가 결의한 내용을 들먹이면서 반 총장을 압박했다. S 의원은 “반 총장이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각국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설 것이다. 굳이 (반 총장이) 결의안을 무시하면서 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또 W 의원은 “이 규정이 유엔이 창설되고 1차 유엔총회에서 (나온) 결의이므로 너무 느슨하게 생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반 총장이) 재직 중 선거운동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행동을 실제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S 의원은 “반 총장의 대선 출마론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떤 인사는 결의안의 영어 단어까지 들먹이며 반 총장의 출마를 반대했다. 전직 외교관 출신이라는 J 씨는 ‘어쨌든 퇴임 직후(at any rate immediately on retirement)’라는 표현은 “퇴임 직후만 안 된다고 보는 것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공직 취임은) 안 되고, 특히 퇴임 직후에는 더더욱 안 된다는 의미로 보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반 총장의 대선 출마가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국가적 자산의 소유자가 큰 꿈을 펼쳐보려는 장마저 원천봉쇄하려는 이들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나라 교육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나이 17살에는 남을 밟아야 살 수 있다는 진리를 터득했다”는 어느 고교생의 독백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나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잠재적 경쟁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라야 한다는 세뇌교육을 하는 곳이 바로 이곳 대한민국이다.


왜 우리는 최경희 전 총장과 같은 인재를 저런 식으로 사장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반기문 총장과 같은 자산을 활용도 해보지 않으려고 하는가? 왜들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들을 끌어올리려고 하지는 않고 자꾸만 끌어내리려고만 하는가?

    
대통령도 그렇다. 5년간 나라 경영을 맡겼으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취임하자마자 끌어내리려는 궁리만 하는 부류가 있다. 진보 성향 대통령 때도 그랬고 보수 성향 대통령 때도 그랬다. 툭하면 ‘탄핵’이다.


얼마 전 집 근처에서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한 시민연대 소속원들이 대통령 탄핵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침몰하는 대한민국 탄핵하여 구해내자” “무너지는 민주주의 탄핵하여 살려내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물었다. “우리나라 지금 어떻게 침몰하고 있나요?” “우리나라의 어떤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나요?” 마지막으로 물었다. “대통령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적 있나요?” 진보 성향 정권 때도 그렇게 물었고 보수 성향 정권 때도 그렇게 물었다.  


허조는 드라마에서 조말생을 비롯한 중신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는 말이에요. 황희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서경의 자리입니다. 우리들은 적어도 능력 있는 인재를, 그것이 설령 정적이라고 할지라도 인정할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장성훈 기자  seantlc@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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