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시아 없이 국제문제 해결 기대 말라”며 잇단 힘자랑
미국, 유럽 집단안보 비용 지불에 인색한 나토 회원국에 불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가 제각기 군비를 증강하며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 내부 문제에 대한 안팎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스스로를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한다. 이런 전략을 추진하는 러시아에 나토의 병력 증강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감히 청하지 못하지만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란다) 격이다. 나토는 최근 러시아와의 국경 지역에 냉전 이래 최대 규모의 군비 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2017년 루마니아에 전투기를 보낼 예정이다. 미국은 폴란드에 병력, 탱크, 중화기를 배치하고 있다. 독일, 캐나다, 그리고 다른 나토 회원국들 역시 지난 10월 2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 회담에서 군사력 증강을 약속했다. 이런 움직임은 러시아가 근래 무기 배치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지난 10월 초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있는 러시아 역외(域外) 영토인 발트해 연안의 칼리닌그라드에 탄도미사일 이스칸데르를 배치했으며, 10월 하순 순항 미사일로 무장한 러시아 전함 2척이 발트해에 진입했다. 그런 가운데 시리아로 향하던 러시아 항공모함 쿠즈네트소프 제독 호가 도버해협을 통과했다. 이 군함은 항해 도중 북아프리카 해안의 스페인 항구에서 급유를 받겠다고 요청했다가 그 요청을 스스로 철회했다. 서방국가들은 이 러시아 함대가 시리아의 분쟁지역인 알레포의 민간인을 압박하는 데 사용될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시리아 내전에 불쑥 개입한 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편에 서서 공습 등을 수행하고 있어 알 아사드 축출을 꾀하는 미국 등 서방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나토가 러시아 접경지역에서 군사력을 키우는 것은 실지(失地) 회복이라는 야망을 품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가 앞으로 유럽 영토를 침공할지 모른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유럽 침략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이 주도해 2차 대전 직후 창설한 나토는 오랜 기간 뚜렷한 중심축이 없이 느슨한 군사 동맹체로 지내 왔다. 그랬던 나토가 최근 들어 견고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애쉬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지난 10월 하순 최근의 나토 군사력 배치는 다름 아닌 전쟁 억지를 위한 것임을 명백히 했다. 특히 나토는 지리적으로 러시아의 군사 위협에 직접 노출된 발트 3국, 즉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방위할 태세가 돼 있음을 러시아에 알리려 한다. 2017년 5월 영국은 병력 800명 규모의 대대를 에스토니아에 파견할 예정이다. 프랑스와 덴마크 병력도 이에 가세한다. 2017년 여름이 되면 나토 회원국 병력 약 4000명이 모스크바 서쪽 국경에 주둔한 러시아 병력 33만 명과 대치하게 된다. 이런 최근의 상황 전개가 곧 동서(東西) 군사 분쟁의 임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는 오늘날 세계가 3차대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기우(杞憂)다. 푸틴도 이를 인정했다. 그는 지난 10월 27일 소치에서 열린 회의에서 서방 전문가들에게 러시아가 유럽에서 누군가를 공격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냉전을 연상케 하는 최근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장래에 러시아 탱크가 국경을 넘어 발트 3국으로 밀려들 전망은 희박하다. 러시아가 최근 보이고 있는 힘자랑은 이 나라가 구사하는 혼성(混成) 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분석가들에 따르면 이 전략은 해외에서 러시아의 군사력을 투영하는 것이다. 2000년 대통령이 된 이래 푸틴은 미국의 세계 패권에 맞먹는 초강대국 지위를 러시아가 회복한다는 결의를 다져 왔다. 푸틴은 러시아의 견해가 감안되지 않고서는 어떤 국제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외부에 인식시키려 한다. 이러한 푸틴의 의욕은 중동과 시리아에서 표현되고 있다. 러시아는 공산주의 출현 이래 처음 옛 소련 국경 바깥인 이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행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푸틴의 이런 의지가 적용되었다. 푸틴은 2014년 인접국 우크라이나를 은밀하게 침략했으며 그 해 3월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합병했다. 유럽에서 아무도 공격하지 않겠다는 푸틴의 공언과 달리, 러시아가 촉발했고 지금까지 끌고 있는 우크라이나 내전 때문에 동(東)우크라이나에서 약 1만 명이 사망했다.

푸틴이 러시아의 옛 영광을 되살리겠다며 밀어붙이는 팽창적인 전략에서 그 핵심역할을 맡는 것은 러시아 군대지만 텔레비전 또한 중요하다. 국내에서 러시아 국영 TV 채널들은 최근 러시아·미국 간 핵전쟁 가능성을 언급했다. 러시아의 군사력은 미국에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세이지만 핵무기만은 미국과 동급이다. 이런 언론의 선동 때문에 많은 러시아인은 이제 그들의 나라가 이미 서방과 준(準)전쟁 상태에 들어갔거나 전쟁을 앞두고 있다고 위험하게 믿는다. 이러한 전쟁 관련 여론 조성은 두말 할 것 없이 러시아 국내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것이다. 러시아는 현재 악화하는 경제, 서방에서 받는 각종 제재, 최근 드러난 러시아 국회의원 선거 부정, 심각한 국가 차원의 부패 등 숱한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부패에는 위로는 푸틴과 그의 억만장자 친구들까지 얽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 매체를 통한 정치 선전은 러시아 국내에서 광범하게 먹혀들고 있다. 푸틴 스스로는 나토를 그리 겁내지 않는다. 나토를 강력하게 결속된 전투적인 군사동맹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나토의 최근 동유럽 병력증강은 푸틴과 국영 텔레비전이 평소 러시아인들에게 주입해 온 이야기, 즉 “서방이 러시아를 포위해 굴복시키려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정치 선전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1990년대의 많은 시기에 나토는 그 존립 근거를 찾기 힘들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다. 그리고 근년 들어 나토는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나토에 대해 미국은 많은 회원국이 유럽 집단 안보 비용 지불에 인색하다고 불평해 왔다. 그런데 이제 나토를 푸틴이 역이용하고 있는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에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안보비용’ 지불을 망설이다 유럽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할’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음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곽상순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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