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발표는 짜 맞추기 수사다.” 청와대가 검찰의 노무현 대통령 대선자금수사를 놓고 불쾌한 반응을 드러냈다. 검찰이 한나라당과 형평성을 맞추려다보니 무리수를 두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수사를 받는 상대방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로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강경반응을 놓고 ‘특검수사에 앞서 대통령과 측근비리가 무관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등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강력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측근비리 특검으로 임명된 김진흥 특별검사는 노 대통령의 조사여부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말을 했다.

‘현직 대통령이 수사를 받는 헌정사상 초유의 전례를 남길 것인지’도 관건. 2004년 시작과 함께 정국을 휘몰아칠 측근비리 특검을 미리 전망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특검(특별검사 김진흥)이 5일 반포동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대북송금특검에 이어 참여정부 들어 두 번째 특검인 측근비리 특검은 국회 특검법 발의, 노무현 대통령의 거부권행사, 국회 재의결 과정을 거치며 우여곡절 끝에 실시하게 됐다. 그러나 특검법 처리과정에서 겪은 진통은 서막에 불과하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면 최도술, 이광재, 안희정, 강금원씨 등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잇따라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게 되고, 그 파장이 클 경우 자칫 정권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측근비리특검은 향후 정국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청와대, 검찰 측근비리수사 발표 이례적 강경반응

실제 검찰이 지난해 12월 29일 그 동안 진행된 썬앤문, 장수천 등 측근비리 수사를 발표하자 청와대 보좌진들이 직접 나서 “여론을 의식해 무리하게 짜 맞춘 수사”라고 공개적으로 반박하는 등 벌써부터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병완 홍보수석은 구랍 30일 기자회견을 갖고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뉘어놓고 사지를 맞춘다는 느낌”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이 수석은 또 한나라당을 향해 “온 사람이 온 말을 해도 한나라당은 입을 열 수 없다”고 비판한 뒤 “일방적으로 거짓말로 단정하고 사법처리를 재단하듯 하는 일부 언론도 글조심을 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특히 “대통령은 사실상 국민 앞에 벌거벗는 과정을 가고 있다”며 “과도한 비난공세나 정치공세 등 더 이상 대통령 흔들기는 자제해 달라”고 말했다.문재인 민정수석도 이날 별도의 논평자료를 통해 검찰수사발표를 반박했다.

문 수석은 “일부 내용에 있어 검찰이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해 억지로 형평을 맞추기 위한 무리한 수사라는 의혹이 있다”며 “다툼의 소지가 있어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만 확정될 피의 사실을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발표해 유감”이라고 지적했다.문 수석은 특히 강금원 회장이 이기명씨 소유의 용인 땅을 사준 것과 관련 “검찰이 이를 ‘매매형식을 빌린 무상대여’로 발표한 것은 의문이다”며 “돈의 지원에 주목적이 있었더라도 매매계약을 체결하면 돈을 돌려받지 못해도 땅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고 주장했다. 문 수석은 또 “마치 대통령이 은폐라도 해온 것처럼 ‘대통령이 사전보고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는 식으로 검찰이 발표하고 언론이 대서특필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도 “검찰이 오버한 것 같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청와대 보좌진들이 직접 나서 이처럼 강경하게 검찰을 비판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보좌진들의 강경발언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과 해석이 정치권에 난무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검찰수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은 측근들의 비리행위를 대통령과 연관시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냐”며 “청와대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측근비리 특검수사에 앞서 행한 사전정지작업 정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검찰의 불법대선자금수사는 대기업 회장, 핵심간부들이 소환되는 1월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며 “한나라당에 대한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에 야당의 반발을 막고 검찰 수사의 중립성을 강조한 측면으로 본다”고 말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조사 가능할까

그러나 청와대의 이같은 반응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특검 수사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들을 조사해야하는 특검은 청와대의 이같은 반응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진흥 특검이 최근 노 대통령에 대한 직접조사 여부에 대해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고 밝힌 점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이는 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김 특검이 원칙을 강조한 발언일 뿐 현직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의 조사에 응한 사례는 전례가 없다.

또 헌법 제84조에 따르면 대통령 재직중 내란,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 어떠한 불법사실이 드러나더라도 재직 중에는 사법처리가 불가능하며 형사 고발되지 않는다. 단 퇴임후 사법처리는 가능하다. 따라서 특검이 직접 소환조사나 서면조사를 의뢰해도 노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변수는 노 대통령은 이미 특검이 조사를 요청하면 응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는 점이다. 이 경우 노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재직 중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게되는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물론 노 대통령이 직접 조사에 응해 모든 의혹을 명확히 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혐의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이같은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에 대한 법조계 시각도 회의적이다.

일선의 한 변호사는 “대북송금특검에서도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해 소환조사, 서면조사 등 여러 이야기들이 거론됐지만, 실현되지 않았다”며 “비록 노 대통령이 수사에 협조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설령 측근비리 혐의에 개입돼 있더라도 현직 대통령을 조사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결국 오는 14일 예정된 노 대통령의 새해 연두기자회견으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노 대통령은 경제, 민생, 총선 등 국정현안에 대한 문제와 함께 어떤 식으로든 측근비리 특검과 대선자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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