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그대로 ‘경천동지’할만한 이변이 일어났다. 우리, 아니 전 세계인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설마’가 ‘현실’이 된 것이다.
 
트럼프의 당선은 내년에 실시될 우리나라 대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쾌승의 원인은 유권자들의 기성 정치인에 대한 환멸에서 찾을 수 있다. 김창준 전 미 하원 의원이 지적했듯이, 미국인들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지 실천한 게 없는 기존 정치세력에 실망했다. 이 점을 트럼프는 효과적으로 파고들었다. 바닥 민심을 정확하게 꿰뚫고, 이를 앞장서서 대변한 것이다. 유불리를 따지며 발언하는 기존의 정치인들과는 달리 트럼프는 그런 계산 없이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토해냈다. 기존 정치인들과 다른 말을 하는 트럼프에 대중들은 열광했고, 이는 결국 대통령 선거에까지 이어졌다. 그가 기성정치인 출신이 아닌 ‘아웃사이더’였기에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내년 대선 출마를 노리는 한국의 ‘잠룡’들이 바짝 긴장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 역시 기존의 정치권에 환멸을 느껴왔다.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리당략으로 허송세월만 보내는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이제 극에 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 국민들은 ‘트럼프 신드롬’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기업인 출신의 ‘순진한(?) 트럼프’가 ‘새정치’를 외치자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 역시 트럼프와 같이 기성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그는 단숨에 ‘사이다’같은 존재로 부각되며 국민적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런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철수의 미덕’만 보여주다 지금은 그저 그런 기성 정치인 중 한 명으로 남아있다. 뒤늦게 권력의 속성을 깨달아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4년 전과 같은 성원을 그에게 다시 보내줄지 미지수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잠룡’들 역시 국민들의 기대치에 한참 모자라 보인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약점’을 안고 있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정체성이 애매모호한 ‘잠룡’도 있다. 주군의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 읍견군폐(邑犬群吠-남을 비방하는 소인배들)같은 주자들도 눈에 띈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미국의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등장해주기를 더욱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정서와 맞지 않은 트럼프식 ‘막말’이나 ‘독설’ 말고, 진정 국민의 아픔을 달래주고 이들을 대변해줄 수 있는,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말을 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지 않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공약을 남발하지 않고 실천 가능한 정책을 내놓는 인물말이다.
 
국민들은 그러나 이 같은 인물의 당선 이후도 예상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승리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변화를 바라는 미국 유권자들의 강력한 바람의 결과다. 문제는 트럼프가 과연 임기 동안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는냐 하는 점이다. 경기 회복 둔화로 실망한 50대 이상과 저학력 블루칼라 백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또 가난한 백인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반(反) 이민정책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속을 수도 있고 속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제 아무리 ‘사이다’같은 말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 대선에서 당선된다 해도, 정말 그가 기대에 상응하는 대통령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속을 수도 있고 속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트럼프처럼 혜성같이 나타나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이 된 인물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개혁'을 외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재임 기간 내내 독선과 오만으로 집약되는 비판을 들어야 했고, 측근과 친인척의 비리까지 밝혀지면서 '도덕성'마저 송두리째 흔들려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트럼프와 같은 '아웃사이더' 또는 참신한 인물이 대통령 직을 잘 수행할 것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 예이다. 그렇다고 그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유권자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를 통한 '학습효과'는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은 트럼프와 같이 기존 정치질서나 경험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 '짠' 하고 등장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엘리트정치, 기성정치의 몰락을 이끄는 동시에 들끓는 국민 요구에 맞는 메세지를 내는 인물일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 인물이여야 한다.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도 선거 기간 내내 미국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내년 대선에서 기존의 '잠룡'들이 잠재적 '트럼프'의 거센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할 경우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이 크다.

장성훈 편집국장  seantlc@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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