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에서 자민련 김종필(JP) 총재와 이인제(IJ) 총재권한대행의 재기여부는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10선에 도전하는 JP는 이번 총선을 끝으로 은퇴를 다짐하고 있고, IJ는 정치생명을 건 마지막 도박에 나섰다. 최근 JP와 IJ는 대선이후 얼어붙었던 관계를 다시 복원했다. 총선을 앞둔 두 사람의 밀월은 더 이상 물러설 수도, 물러날 곳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비롯됐다. 요즘 자민련 내부에서는 진로를 놓고 물밑 움직임이 활발하다. ‘자민련의 재건’에 대한 정치권의 무관심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JP를 넘어 재기를 노리던 IJ가 5개월만에 고개를 숙이면서 불씨를 지폈다. IJ는 “5개월전 출판물을 통해 김 총재님께 심려를 끼쳐드린데 대해 사죄하고, 내년총선에서 자민련의 승리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JP에게 꼬리를 내린 것.IJ는 얼마전까지 “경륜이 풍부한 세대는 당을 지키고, 젊은 세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며 JP의 2선 후퇴를 주장했었다.

IJ가 JP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유력한 여권의 대선주자 후보에서 총선마저 걱정해야 하는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비롯됐다. JP가 차제에 IJ와 결별하고 ‘뉴 자민련’으로서의 체제 개편을 이뤄낼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한나라당을 탈당해 국민신당으로, 다시 민주당에 입당한 뒤 지금의 자민련으로 둥지를 옮기며 ‘상처뿐인 영광’만을 안고 있는 IJ 입장으로서는 혼자 힘으로 고향인 충청권 수성도 힘들어지게 된 셈이다.왕따 신세를 면치 못했던 IJ는 그동안 두문불출했다.그의 측근들에게 IJ의 근황을 물어보면 “공부하고 계신다” 또는 “때를 기다리시지”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이 때문에 IJ가 나아갈 방향을 잃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IJ의 사과를 받은 JP는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인제 의원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당 발전을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겠다고 결의를 밝힌 만큼 과거에 대한 모든 일은 잊고 내년 총선승리를 위해 힘을 집결해주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복원이후 JP는 IJ가 지역구에서 개최한 논산·금산·계룡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 연대의지를 공식화했다. 이날 대회에는 JP가 IJ대타로 낙점했던 심대평 충남도지사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고, 신은숙 부총재, 이봉학 사무총장, 임성규 논산시장, 최홍묵 계룡시장, 송천영 전의원 등이 참석해 IJ의 재기를 지원했다.이날 대회를 기점으로 JP역시 자민련의 부활을 위한 ‘굳히기’ 작전태세에 들어갔다. JP는 이날 “이인제 의원은 비록 두번 실패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날 것을 확신한다”며 IJ를 격려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IJ의 당선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인 안희정씨가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측근비리로 구속된 안씨의 도전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지만, IJ의 총선 승리는 낙관하기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주역으로 참여정부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해온 안씨와의 대결구도는 노 대통령과의 대리전 성격까지 가미된 자존심 대결로 정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안희정씨가 주도한 논산·금산·계룡지구당 창당대회에는 장영달 국회 국방위원장, 정동채 우리당 홍보위원장, 박병석 의원 등 1,500명이 참석하는 등 총선전이 본격 점화된 상태다. 또한 JP도 이번 총선에서 호된 시련을 겪을 전망이다. 한나라당 김용환 지도위원장이 오는 충청도 총선에서 전면에 나설 것을 예고,‘텃밭 영광’을 재연하려는 JP와 또 한차례 일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 지도위원장은 지난 여름 병석을 털고 일어난 뒤 의정활동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얼마전 국회 본회의장 등원 길에 JP와 조우, 서로 건강걱정을 해주며 변함없는 인간적 관계를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적 노선차이로 사이가 벌어진 양자관계에서 이와 별개로 자존심을 앞세운 정치적 대격돌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JP는 총선준비 상황과 관련 이달 초 일부 당무위원과 중앙위원을 교체할 예정이나 김학원 원내총무, 정우택 정책위의장 등 핵심 당직자들이 총선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 출범한 17대 총선대책특위(위원장 김종기)와 현지도부는 총선 업무를 총괄지휘하고, 최근 JP 특보단장으로 임명된 성완종 충청포럼 대표를 비롯한 25명의 총재 보좌역들이 총선 `측면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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